<시가 있는 풍경> 홍어 / 원무현
☛서울일보 / 2010.3.24.(수요일)자
詩가 있는 풍경
홍어
원무현
시집간 동생에게서 편지가 왔다
오라버니 이제는 가세가 조금은 일어서서
가끔 산에도 올라간답니다
작년 겨울에는 눈 구경 갔다가 팔이 부러졌어요
걱정 마세요 오라버니
놀다가 부러질 팔도 있다 생각하니
그저 꿈만 같아서
실실 웃음이 다 나옵디다
그건 그렇고 오라버니
팔이 뼛속까지 가려운 걸 보니
이제 깁스를 풀 때가 다 되어 가는 모양이네요
그때면 홍어가 제법 삭혀져서 먹을 만 할거네요
……
이제 밥걱정은 없으니 한 번 다녀가라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코가 맵다
눈이 맵다
입 줄인다고
열 네 살 나던 그 해 남의 집에 던져졌던 동생의 편지는
◆시 읽기◆
홍어는 볏짚 톱밥을 섞어서 가마니에 넣고 숙성시키거나 막걸리와 함께 푹 삭혀 먹는 전라도
지방의 독특한 음식이다. 푹 삭힌 홍어는 아리고 싸한 맛이다. 코도 맵고 눈도 맵게 자극하는
미묘한 맛의 독특한 별미이다.
시집간 여동생의 편지는 잘 삭은 홍어의 맛처럼 코가 맵고, 눈이 매웠다. 가난한 시골살림에
입을 줄이기 위해 남의 집으로 보내져야 했던 여동생, 딸로 태어 났기 때문에 가족과 헤어져
살아야 했던 시대에 가난의 피해자다. 가히 짐작 할 수 있는 갖은 고생을 다 겪어내고도 원망
한마디 없이 이제 살만해졌노라 홍어가 익었으니 한번 오라는 편지를 보내 온 것이다. 쓰디 쓴
속에, 뼈 아린 아픔에 어찌 코가 맵고 눈이 맵지 않을까?
원무현시인은 '거미집' '폐광(廢鑛)' '해바라기' '징검다리' 등 많은 시편들에서 보여주었듯이,
자신의 어려웠던 가정사를 조금도 가리지 않고 드러내는 정직한 사람이다.
팍팍하고 암울한 처지에 있는 마음들을 헤아릴 줄 아는 따숩고 진솔한 사람이다.
특히 두드러진 진정성으로 진한 감동을 자아내게 하는 시인다운 시인이다.
잘 삭힌 홍어가 제대로의 맛을 내듯이, 사람도 어려움을 통해 긍정과 순응을 배우고 터득한
잘 익은 사람이 진정 사람 맛을 낸다.
시인은 푹 삭혀야 제 맛을 낸다는 홍어의 이미지를 들어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삶의
힘이 되는 또 하나의 길을 제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유 진/ 시인, 첼리스트<선린대학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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