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자아 글.사진 인경 가을날 맑은 하늘 아래 국화 꽃이 활짝 피어있습니다. 이곳에는 고요함과 깨어있음이 있습니다. 침묵은 단순하게 말없음이 아닙니다. 마음속으로부터 사유작용이 멈추어진 거룩한 행복감입니다. 번뇌에서 벗어난 자리, 이것을 우리는 '본래면목', '참된 자기', '본질자아'라고도 부릅니다. 이것을 무엇이라고 부르든지, 인간의 근본적인 본성, 신령한 앎으로서의 영성, 모든 현상의 바탕으로 이해됩니다. 마치 꽃과 나무가 커다란 대지에 의지하듯이, 감정, 생각, 갈망 등의 모든 마음현상은 바로 근원적인 바탕, 침묵에서 발생됩니다. 텅 빈 그릇이 그 무엇을 담을 수가 있듯이, 침묵은 모든 현상을 허용하고, 수용하는 근본마음의 자리, 본질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인식할 수가 있을까요? 나의 스승은 자주 말했습니다. 너의 이름을 부르면, '네!' 대답하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대답하라고 요구했습니다.
혜능은 대유령까지 뒤쫒아와서 진리를 설해주길 바라는 혜명에게 질문하였습니다. '선도 생각하지 않고, 악도 생각하지 않을 때, 너의 본래면목은 무엇인가?' 대혜선사는 이참정과 조대제가 바둑하는 것을 보고 흑백을 쓸어버리고 물었습니다. “자, 바둑돌이 흑백으로 나누어지기 전에 한 수를 놓아보라. 어디에 놓겠는가?” 개념자아, 선과 악, 흑과 백은 나의 마음현상입니다. 착하고 나쁘고, 옳고 그르고, 예쁘고 추하고, 긍정과 부정의 감정이나 생각들은 끊임없이 싸우고, 서로의 영역을 확장하고자 치열하게 경쟁합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마음현상이지, 마음 그 자체는 아닙니다. 여기서 변하지 않는 진실한 나는 무엇일까요? 가을날 숲속 산새가 날아오르자 , 낙엽이 침묵처럼 떨어져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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