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갚은 소
최 순 호
계룡산 갑사 가는 길은 신록의 푸르름을 한껏 자랑하는 오리 숲을 지나면서 야생화가 산야의 정취를 한껏 더해준다. 일상의 짐을 훌훌 벗어 던지고 어디로 떠나고 싶은 계절에 산사를 찾아 맑고 시원한 향기를 맡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계곡의 물도 소리를 내며 흐르고 새들의 합창소리도 너무 멋진데 산바람까지 활기차게 분다. 이처럼 산중의 삶은 자연과 공존하며 항상 기쁘고 나날이 새롭다. 계룡산도 자연의 섭리대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옷을 갈아입는다. 봄은 봄대로 꽃이 피어 좋고 여름에는 녹음이 우거져 좋고 가을은 단풍이 있어 좋으며 겨울은 눈꽃이 피어 아름답다.
지금은 성하의 계절이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온몸에 땀이 흠뻑 젖는다. 누가 조금만 건드려도 짜증이 난다. 무더위만큼 인간의 한계를 자각시키는 것도 없는 듯하다. 그런 만큼 오히려 마음공부를 하기에 적합하기도 하다. 밖으로만 나돌려는 마음을 붙들어 매서 내면의 흐름을 응시하고 부채를 부쳐가며 독서삼매에 빠져들어 무더위를 나는 것이야말로 육신에 청량국토를 건설하는 피서법이다. 나는 오늘도 약사여래상까지 산행의 유혹을 떨칠 수가 없다. 등산이 마냥 즐겁고, 약사여래의 후덕하고 안온한 공덕이 내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기 때문이다. 갑사 앞에 서있는 삼층 석탑인 공우탑은 정신적 가치를 잃고 물질만능으로 치닫는 현대인들에게 교훈이 될 만한 전설이 전해온다.
임진왜란 때는 화를 입지 않은 갑사가 정유년에 다시 침입해 온 왜적들에게 끝내는 모두 불태워져 버리고 말았다. 정유왜란이 평정된 후 뿔뿔이 흩어졌던 스님들은 폐허가 된 절을 찾아 모여들기 시작했다. “여보게 학인들이 이렇게 찾아드니 아무래도 중창불사를 시작해야 할것 같네” “사중살림도 살림이지만 마을 신도들도 난리에 시달려 모두 생활이 어려운데 불사가 여의 할까?” 피난을 가지 않고 절을 지킨 스님들은 갑사를 다시 중창하여 지난날처럼 많은 학인 스님 들이 공부 할 수 있는 도량을 이루기로 의견을 모으고 모두 탁발에 나섰다. 어느 날 해질 무렵 동쪽으로 길을 떠난 인호 스님은 어디선가 절박한 듯 울어대는 소 울음소리를 들었다. “저 울음소리가 아무래도 예사롭지 않군.” 인호스님은 울음소리가 나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가까이 가보니 고삐가 소나무에 칭칭 감긴 어미 소가 거의 숨이 넘어갈 지경에 이르렀고 옆에는 송아지 한 마리가 어미 소의 아픔을 안타까워하는 듯 음 메에~ 울며 소나무 주위를 맴 돌고 있었다. 스님은 소의 고삐를 잘라서 소를 구해 주었다. “ 자 이제 시원하지? 마음 놓고 풀을 뜯어 먹어라 ” 소를 구해준 후 스님은 다시 길을 재촉 했다. 어느덧 그들이 일을 시작한지 칠년이란 세월 속에는 흉년이 든 해도 많았다. 그들은 다리가 부르트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배가 고플 때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물을 마셨다. 그런 피 땀이 보람이 됐던지 칠년을 모은 돈이 결국 대웅전을 하나 서울만 했다. 그래서 그들은 합의 끝에 일을 시작 했다. 많은 인부가 모여들고 집은 척척 지어져 갔다. 헌데 시작 할 때와는 다르게 돈이 많이 들어 계획대로 대웅전을 완성 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때부터 주지스님 격인 인호스님은 걱정이 태산 같았다. 그는 잠을 잘 때도 대웅전 생각만 했다. 어떻게 완성할 수 있을까? 하고 여러 가지로 궁리를 하고 있는데 하루 저녁엔 꿈에 소 한 마리가 집을 짓고 있는 들로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다. 그 소는 일꾼들이 이리저리 몰아내도 들은 척도 않고 가까이 오더니 머리를 숙인 채 이렇게 말했다. “스님, 스님으로서는 참으로 어려운 일을 시작 하였습니다. 그러나 일을 시작 하셨으면 끝을 맺어야지요. 스님 너무 걱정 하지 마십시요” 하곤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었다. 인호스님은 꿈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문을 열어봤다. “아니 저 소가 ......”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번했다. 스님이 소를 발견하자 소는 어디론가 뛰어갔다. 그 이튿날 인호스님이 새벽에 눈을 뜨자 소가 지붕 위에 올릴 나무를 어디선가 운반 해다가 가득히 쌓아 놓곤 다시 어디로 뛰어가곤 했다. 집을 완성 하려면 나무와 기와가 필요 했다. 나무를 가득 채워 놓은 소는 이번엔 기와장을 나르기 시작 했다. 그 많은 기와장을 사흘이 안 되어 마당에 꽉 채워 놓았다. 그래도 소는 뛰어다녔다. 스님 네 사람이 앉아서 “무엇이 없는데......” 하는 말이 나오기가 바쁘게 물건을 구해 왔다. “마루에 깔 나무가 쉬 상할 것 같아서 두터운 나무를 깔아야겠다” 고 한 스님이 말했다. “마루만 깔면 이젠 단청을 하기가 쉽지 않겠습니까? 마루에 향나무를 서너 줄에 하나씩 끼워서 마루만 놓으면 천하에 없는 절간이 되겠습니다만......” 이 말을 어찌 들었는지 소는 마루에 깔 나무를 날라왔다. 그러다가 며칠 뜸하더니 향나무를 운반해오기기 시작했다. 향나무를 운반하는데 소는 몇 번이나 쓰러지곤 했다. 소가 지친 것이다. 게다가 향나무를 백두산 근처에서 베어 왔으니 오죽이나 피곤했을까?! 그래도 소는 마루에 깔 향나무 까지를 모두가져다 놓더니 그 자리에 쓰러져 죽고 말았다.
그래서 여기 스님들은 대웅전이 완성될 때 그 소의 노고에 감사하며 탑을 하나 세웠다. 그 탑이 공우탑인데 지금도 갑사 앞 계곡에 가면 쉽게 볼 수가 있다. 동물에게도 은혜를 베풀면 보답을 받는다는 이야기들이 세상엔 많이 전해져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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