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탑 가는길
최 순 호
계룡산에 새벽이 올 무렵이면 갑사의 염불소리가 적막을 깨운다. 밤새 선방에서 참선 수도 하였거나 사하 촌에 잠들었던 사부대중이라도 맑고 깨끗한 새벽의 기운을 안고 일어난다. 웅장한 범종소리는 중생들의 한을 풀고 미혹에서 깨어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때 목탁 소리는 약한 음에서 높은 음으로 올라갔다가 내려가기를 반복한다. 이것은 일체 중생이 갑자기 놀라지 않고 천천히 깨어나게 하기 위한 배려이다.
절 아래 마을에서 살아온 내게, 오랜만에 대전에서 죽마고우 둘이서 찾아와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들을 하느라 밤새는 줄도 몰랐다. 아침에 간단한 등산복 차림으로 남매탑까지 다녀오기로 의견을 모았다. 밖에는 함박눈이 소록소록 내리고 천지는 온통 눈꽃 세상이다. 갑사 입구 오리숲에는 마을 번영회에서 장승촌을 새로이 조성했다. 장승들의 표정이 기이하고 익살스럽다. 이름만큼이나 서로 다른 특징이 있는 장승들을 보면 세상의 모든 희로애락을 다 보는 느낌이 든다. 경내에 들어서니 이른 아침인지라 경건함이 더했다. 대충 절 주변을 살펴보고 갑사구곡에 이르니 조선시대에 순정왕후 윤비의 삼촌인 윤덕영이 이곳에 머물면서 소요 할 때, 갑사 계곡에 흐르는 물의 수려한 승경을, 계룡산 동쪽 상봉인 수정봉에서 갑사의 우측으로 흘러 내려오는 계곡수와 울창한 숲 그리고 희한한 바위로 이루어진 계곡에 흐르는 정경을 아홉마디로 끊어서 찬한 곳이다. 그 아홉 마디는 용유소, 이일천, 백룡강, 달문택, 군자대, 명월담, 계명암, 용문폭, 수정봉이다.
용유소는 용추교 아래에 있는 못으로 옛날에 용이 놀던 곳이라고 한다. 달이 뜬 겨울밤이나 여름밤에 그 달빛에 절경을 이룬다는 명월담과 미륵불 위쪽 골짜기에서 물이 떨어지는 용문폭과 산봉이 수정처럼 맑고 깨끗한 암석으로 이루어진 수정봉 등을 예찬했다.
우리는 신흥암에 잠시 들러 배낭을 풀고 숨을 돌렸다. 이제부터는 가파른 언덕길이다. 산령을 넘어 동학사로 넘어가는 고개를 진달래 고개라고 한다. 이 고개의 원명은 백운이 고개다. 즉 하얀 구름이 계룡산 을 넘어다닌다는 고개다.
삼불봉에 도착하니 부처님 세 분이 나란히 서있는 형상이다. 갑사에서 지난 새해맞이 행사 때에는 새벽 예불을 마친 후 떡국을 먹고 모두 계룡산 삼불봉 해맞이에 나섰다. 해마다 눈이 오는 등 날씨 때문에 해가 뜨는 것을 제대로 보지 못했었는데 올해는 쾌청한 날씨 덕분에 붉은 태양이 힘차게 떠오르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새해는 모든 사람들이 소망하는 바가 잘 이루어지겠다는 느낌이었다. 산 위에서 기도법회를 마친 신도들이 덕담을 나누었다. “부자 되세요” “건강 하세요” 덕담도 현대식으로 변화의 물결을 탄다고 한다. “몸짱, 맘짱, 실업타파!” 등 다양하다. 계룡산의 8경중 2경은 삼불봉의 설화이다. 겨울에 이곳에 들어서면 하얀 눈이 내려 나뭇가지에 소복하게 앉은 그 절경으로 해서이다. 삼불봉 아래에서 눈을 맞으며 서 있는 남매탑이 그 옛날을 이야기 해 준다.
옛날 남매탑 바로 옆에서 젊은 남자 스님 하나가 살고 있었다. 그 스님은 청정한 수행자였다. 하루는 커다란 호랑이가 스님을 찾아왔다. 호랑이는 아주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스님한테 뭔가 호소 하는듯 했다. 스님이 다가가니 호랑이가 입을 떡 벌렸다. 스님은 호랑이 목에 뭐가 걸려 있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호랑이 입에 손을 들이 밀어 보았다. 스님이 짐작한 대로 손에 잡히는 것이 있었다. 꺼내보니 짐승의 뼈였다. 호랑이는 감사의 표시로 몇 번이나 머리를 꾸벅인 다음 어디론가 떠났다. 그런데 얼마 후에 그 호랑이가 또 스님을 찾아 왔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호랑이 등에 예쁘게 생긴 처녀가 업혀 있었다. 호랑이는 처녀를 내려놓고 바로 떠났다. 처녀는 깊은 병이 들어 있었다. 스님은 처녀를 자신의 초막에 살게 하며 극진히 돌봐주었다. 어느덧 처녀는 병이 다 나았다. 그 사이 처녀의 가슴에는 스님을 향한 깊은 사랑이 싹트고 있었다. 연모의 정은 날이 갈수록 깊어졌다. 처녀는 자신의 심정을 솔직하게 밝힐 수도 없어 괴롭고 고통스러웠다. 스님은 처녀가 연모의 정 때문에 괴로워 한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래서 스님은 처녀에게 이성간의 애욕은 허망하고 부질없는 것이고 사람을 윤희의 업보에 잡아 가두는 독이라며 오로지 수행에 전념하자고 설득했다. 처녀는 스님의 제안을 기쁘게 받아드였다. 스님 곁을 떠나지 않고 함께 지낼 수 있는 것만도 크나큰 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열심히 정진했다. 처녀는 어느새 애욕의 굴레에서 해방 되었다. 애욕을 떨치고 나니 마음에 걸림이 없었다. 푸른 하늘에서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기분이었다. 온갖 번뇌가 애욕과 함께 사라졌다. 얼마 후 스님과 처녀는 함께 찬란한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갔다. 그리고 자유자재한 삶을 누리다가 열반에 들었다. 남매탑은 이 두 성자를 기려 후세 사람들이 세운 것이다. 부처님께 참배하고 나오면서 계곡의 맑은 물소리를 들으니 마음마저 정갈해지는 듯 했다. 얼음장 같이 차야만 했던 대덕의 부동심과 백설인 양 순결한 처자의 발원력, 그리고 비록 금수라 할지라도 결초보은을 한 산중호걸의 기연이 한데 조화를 이루어 지나는 등산객들의 심금을 붙잡으니 “나도 여기 며칠 동안이라도 머물고 싶다” 고 친구가 말했다. 출가란 집을 나선다는 의미가 아니라 애욕의 굴레와 집착에서 벗어나 시비를 초월하고 아집과 재색에서 떠나 무소유 무집착으로 사는 일이다. 구도자는 일체를 벗어버리고 한 생각 접어두고 다스릴 줄 알아야 하며 정신적 육체적 물질적으로 남을 도와주는 삶을 살아야 하며 그렇게 남을 도와주는 것을 불공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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