良寬
쑨치 선생님의 책을 보게 되었다.
중국과 일본의 스님들의 글씨였다.
순박한 글씨들이 많이 보였다.
잘 쓸려는 욕심을 버리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획이었다.
良寬 Ryokan 야마모토 에이조 1758~1831
료칸은 일본의 승려이다.
일본 도쿠가와 시대(德川時代 1603~1867)후기의 선승.
본명은 山本榮藏 (야마모토 에이조) 이다.
시인이자 서예가로 크게 이름을 떨쳤다.
촌장의 장남으로 태어나 17세경에 출가하여
大愚(다이구료칸)이라는 법명을 얻어 승려가 되었다.
21세 때 순회 승려인 國仙(고쿠센)을 따라
備中國(비추 구니)의 玉島(다마시마)에 있는 圓通寺(엔쓰 사)라는 그의 사찰로 갔다.
거기서 12년 동안 엄격한 수도생활을 했으며
고쿠센이 죽은 뒤에는 탁발승으로 일본 전역을 돌아다녔다.
노년에 고향인 에치고 구니로 돌아와 萬葉集(만요슈)와 고대 서예를 연구했다.
그는 젊은 여승 貞心(데이신)과 깊은 사제관계를 이루었는데,
이 여승은 료칸이 죽은 후 그의 俳句(하이쿠)와 和歌(와카)들을 모아
〈연꽃 위의 이슬 蓮の露〉(1835)을 편찬했다.
그는 또한 우아한 필치로 높이 평가되는 여러 편의 서예문을 쓰기도 했다.
1758 일본 出雲崎(이즈모자키)~1831. 2. 18 越後國(에치고 구니)
료칸 良寬에 관한 고사
선사는 에도시대 후기의 고승이며, 가인(歌人). 화가로도 이름이 높다.
22세 때 출가하여 승려생활을 시작했다. 철저한 청빈주의, 고행주의로 일생을 살았지만
한편으로는 자유분방하고 시와 그림에 능통한 활달한 면도 지니고 있었다.
료칸 선사가 산깃슭에 조그마한 오두막을 짓고 살 때였다.
어느 날 밤 도둑이 들었으나 가난한 선사에게서 훔쳐갈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실망한 도둑을 붙잡고 료칸 선사는 말했다.
"그대는 우리 집까지 먼길을 왔는데 빈손으로 가서야 되겠는가?
이 옷을 벗어 줄 터이니 가져 가시게."
도둑은 선사가 벗어 주는 옷을 들고 뒤도 돌아 보지 않고 뛰었다.
벌거숭이가 된 료칸 선사는 뜨락에 앉아 달을 바라보며 중얼거렷다.
"저 아름다운 달까지 줄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달은 줄 수도 훔칠 수도 없구나."
료칸 선사에게는 조카가 있었다.
그는 친척들의 권고도 무시한 채 고급 창녀에게 미쳐 재산을 탕진하고 있었다.
원래 료칸 선사는 세속에서 가문을 통솔하고 재산을 관리했어야 할 입장이었다.
그래서 친척들은 료칸의 찾아가 조카의 방탕한 생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재산 관리인인 조카의 버릇을 고쳐 놓으라고 강권하였다.
료칸 선사는 이 말을 듣고 조카를 만나러 먼 길을 떠났다.
조카 역시 료칸 선사가 온다는 말을 듣고 기뻤다.
선사는 조카와 함께 옛이야기를 하다가 나머지 밤을 좌선으로 지새고 아침을 맞았다.
료칸 선사는 조카에게 떠나야겠다는 작별 인사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세월은 어쩔 수 없구나. 옛날엔 안 그랬는데
이제 나이가 들어 그런지 손도 떨리고 아무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구나.
얘야. 나를 좀 도와서 내 짚신의 끈을 매주련."
조카는 료칸 선사를 도왔다. 이때 료칸 선사가 다시 말했다.
"고맙다. 나를 보면 알겠지만 인생이란 하루가 다르게 늙고 약해 진다.
너도 나와 같이 되기 전에 할 일이 있으면 어서 하도록 해라."
료칸 선사는 단지 이 말 외에는 어떤 충고나 설교도 하지 않았다.
료칸 선사가 떠난 그날부터 조카에겐 변화가 왔다.
자신의 삶을 참회하며 지금까지의 방탕한 생활을 말끔히 청산했다.
한번은 그 지방의 번주(藩主)가 료칸 선사를 초청하기 위해 심부름하는 사람을 보냈다.
마침 료칸 선사는 탁발을 하러 나가고 없었다.
심부름꾼은 선사를 기다리는 동안 암자 주위의 무성한 잡초를 뽑고 깨끗하게 청소를 했다.
이윽고 돌아온 료칸 선사는 주위를 돌아보면서 탄식했다.
"풀은 다 뽑아 버렸으니 이제는 풀벌레 소리도 듣지 못하겠군."
심부름꾼이 돌아가 료칸 선사의 궁핍한 생활을 전하자 번주는
다시 심부름꾼에게 선사를 돕겠다는 뜻을 전하게 했다.
이에 선사는 다음과 같은 하이쿠(俳句)*로 답하여 이를 사양했다.
"땔 정도의 낙엽은 바람이 가져다 주네."
료칸과 산적
료칸은 어느 누구도 꾸짖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비록 선(禪)불교의 대가였지만 결코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제자 한 사람이 그에게 간청하기를, 자신의 남동생이 마을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산적인데,
스승께서 자기 동생에게 가서 그의 행동을 바로잡아달라고 했다.
료칸은 그 산적의 소굴로 가서 함게 밤을 보냈다.
두 사람은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아침이 되자 산적은 허리를 굽혀 료칸이 신발끈 매는 일을 도와주었다.
그때 산적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려 스승의 발을 적셨다. 산적이 흐느끼면서 말했다.
"저는 한 번도 지혜로운 사람과 함께 있어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아는 사람은 저 같은 산적이거나 저를 붙잡아 벌을 주려고 하는 포졸들뿐이었습니다.
료칸께서 저와 함께 하룻밤을 지내주신 것은 제가 여전히 가치 있는 사람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날 이후로 그 사람은 다시는 죄를 짓지 않았다.
弘一法師가 쓴 三省
하늘위의 큰 바람같은 스승
공자, 군자와 함께 스승에 대해 논하다
공자가 잠시 쉬기 위해 앉았다.
그러자 곧이어 제자들이 스승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그날 공자는 기분이 좋았기 때문에 제자들의 질문에 일일이 대답해주기로 했다.
"스승님께서는 느끼는 것을 전부 설명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셨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왕을 찾아가 그 훌륭한 말씀을 펼쳐놓지 않는 것입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뛰어난 언변이라면 우리 군주 역시 갖추고 있다.
그런데 그 뛰어난 언변이란 단지 말솜씨의 문제일 뿐이다.
언변이 훌륭하다고 해서 그 속에 덕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스승님께서 편찬하신 <시경>을 왕에게 보내서 읽어보게 하십시오."
"그 책에 있는 삼백 편의 시는 단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즉 '바르게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핵심이다."
"'바르게 생각하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머리와 가슴, 즉 엄정한 사고와 본래의 마음을 활용할 줄 아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것을 간절히 원할 때, 그것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은 본연의 삶 속에 있다.
뜻밖의 방법이나 순간적으로 선택한 길을 통해서는 그것에 도달할 수 없다.
우리는 종종 고난을 겪는데, 그러면 우리는 길을 잘못 들었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다.
즉, 마음 가는 대로 행하라. 하지만 한 걸음 넘어서기 위해서는 엄정한 생각을 지녀라."
"스승님께서 행해오신 바가 그것입니까?"
"나는 열다섯 살에 배움에 뜻을 두었다.
나이 서른에 내가 바라는 바에 대한 확신을 얻었고,
마흔에는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게 되었다.
쉰이 되자 나는 하늘이 나를 비롯한 세상 사람들에 대해
각각 어떤 계획을 마련해놓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순에 나는 그 계획이 무엇인지 이해했고,
그것을 따르며 마음의 평정을 얻게 되었다.
그렇게 일흔이 되고 보니 나는 이제 내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행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면 스승님처럼 하늘의 뜻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어떤 점이 다릅니까?"
"내가 너희들과 함께 그 하늘의 뜻을 나누고자 하듯이, 옛 진리를 새 세대와 더불어 논하려는
사람은 가르침을 펼치게 된다. 이처럼 내 유일한 자랑은 내가 좋은 스승이라는 점이다."
항주 서호에서 전당강으로 나가는 길옆 산속에 조용하게 자리잡은 호포사에서
출가한 弘一법사가 일생을 마감하면서 남긴 필적이다.
중국 신문화운동의선구자, 중국 근대에 예술가 교육가 사상가 혁신가로 유명한 스님이다.
"'좋은 스승'이란 어떤 사람을 말합니까?"
"자신이 가르치고자 하는 바를 빠짐없이 검토하는 사람이다.
옛 성현의 가르침은 시대가 변하여 새로운 모습이 되어도 인간을 속박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우리는 과거의 정신적 풍요로움을 배우면서도
현재가 우리에게 내미는 도전을 잊지 않게 되는 것이다."
"좋은 제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 말에 귀기울이되, 나의 가르침을 자신의 삶에 맞추어 적용해야 한다.
글자 그대로 따르려 해서는 안 된다. 명예가 따르는 지위를 추구할 것이 아니라,
그 지위에 오를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 공부에 정진해야 한다.
이름을 떨치려 하지 말고 이름을 빛낼 어떤 일을 완수하려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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