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소태후에 의해 궁에서 쫓겨난 미실은, 그러나 궁을 나와 일생의 사랑이라 할 수 있는 사다함을 만나게 된다. 중학교 국사시간에 배우는 바로 그 사다함이다.
원래 사다함은 내물마립간의 7세손으로 진골의 신분이었다. 아버지는 급찬 구리지, 어려서부터 용모가 아름답고 행동이 단정하여 일찌기 화랑으로 추대되어 당시 이미 5대 풍월주에 올라 있었는데, 그러나 아직 15,6세에 불과했던 어린 소년의 순수함은 이내 미실의 성숙한 아름다움에 빠져들고 만다. 미실 또한 복마전같은 궁과는 다른 소년다운 풋풋한 열정에 마음이 끌리게 되었고.
다행히 미실 또한 진골이며 2대 풍월주였던 미진부랑의 딸이었다. 신분상으로도 결격사유가 없었고, 한때 세종 전군을 모셨다고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 묘도의 예에서 보듯 당시 신라사회는 그런 것에 대해 별다른 터부가 없었다. 자연스레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고 운명처럼 서로 부부가 될 것을 약속하며, 미실은 궁에서 쫓겨난 억울함을 사랑으로 보상받는 듯 보였다. 아마 그렇게 되었다면 미실의 운명도 크게 바뀌었겠지만,
그러나 진흥왕 23년 신라 조정이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던 대가야를 정벌하기 위한 군대를 일으키게 되면서 사정은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다. 무엇보다 화랑이었고 풍월주였던 사다함으로써는 나라의 중요한 원정에 기꺼이 자원하여 낭도를 이끌고 참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 사다함은 결혼을 앞두고 미실과 헤어지게 된다.
바람이 분다고 하되 임 앞에 불지 말고,
물결이 친다고 하되 임 앞에 치지 말고,
빨리빨리 돌아오라 다시 만나 안고 보고,
아아, 임이여 잡은 손을 차마 물리치려뇨.
사다함을 떠나보내면서 미실이 지어 부른 <출정가>의 내용이다.
그리고 모두가 아는 그대로 사다함은 미실을 두고 떠난 그 전쟁에서, 귀당의 비장으로 찬전하여 대가야의 요충인 전단량을 함락시키는 등 큰 공을 세워 300명의 포로와 많은 토지를 하사받게 된다. 바야흐로 큰 공을 세우고 모든 이들의 인정과 축복 속에 자랑스레 개선하여 미실과 가시버시가 되어 평생을 행복하게 살 일만 남은 것 같았다. 그러나,
참으로 박복한 미실의 운명은 이번에도 그녀에게 그러한 행복을 허락지 않았다. 그만 사다함이 원정을 떠나 있는 사이 미실을 잊지 못한 세종 전군이 상사병에 걸리고 만 것이었다.
아무리 지소태후라도 아들이 죽을 병에 걸리고 난 다음에야 도리가 없었다. 밉디 미운 사도왕후의 조카라도 아들이 죽자고 못 잊고 있는데 불러들이지 않을 수 없었고, 태후의 명을 거역할 수 없었던 미실 역시 궁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사다함이 전장에 나가 있는 사이 미실은 그만 지소태후에 의해 다시 세종을 섬기도록 강요받게 되었던 것이었다.
물론 미실도 처음에는 저항했다. 아무래도 사다함에 대한 정을 잊을 수 없었던 미실은 처음 세종에게 용명이라는 부인이 있음을 핑계로 그를 섬기기를 거절했다. 그러나 이미 미실에게 깊이 빠져 있던 세종은 미실로 하여금 용명 앞에 1부인이 되도록 했고, 용명이 그를 시기하자 아예 내쫓기에 이르렀다. 정부인을 이부인으로 삼고, 마침내 내쫓기까지 하는데야 더 이상 미실로써도 어떻게 거부할 도리가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결국 마침내 사다함이 전장에서 돌아왔을 때 그를 맞은 것은 미실과의 행복한 결혼생활이 아닌, 이미 사랑하는 여인이 남의 아내가 되어 버린 믿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파랑새야 파랑새야 저 구름 위의 파랑새야,
어찌하여 나의 콩밭에 머무는가,
파랑새야 파랑새야 나의 콩밭에 파랑새야,
어찌하여 다시 날아들어 구름 위로 가는가,
이미 왔으면 가지 말지 또 갈 것을 어찌 왔는가.
부질없이 눈물짓게 하며 창자가 문드러져 말라 죽게 하는가,
나는 죽어 무슨 귀신이 돌까, 나는 죽어 신병이 되리,
날아들어 호신 되어,
매일 아침저녁 전군부처 보호하리,
만년 천년 죽지 않게 하리.
"내용이 너무 구슬퍼 당시 사람들이 다투어 서로 외워 전했다."고 하는 사다함의 비통한 심정이 담긴 <청조가>다. 절망스러운 현실에 사다함은 이 노래를 지어 부르며 그리 애통해 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천년 만년 죽지 않게 하리."라던 노래가사와는 달리 그로부터 얼마 안 있어 마음의 병이 원인이 되어 요절하니 그의 나이 17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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