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석 송편 솥에 넣을 솔잎을 따려고
떵거미가 질 때 발소리 죽이고
뒷산에 올라가는 할머니 얼굴은
손자놈 콧물보다 진한 생의 때
잿빛 머리칼은 한줌도 안되지만
소나무의 아픔은 옛 짐작으로도 안다
해 넘어가고 첫잠 든 소나무가
은하수 멀리까지 단꿈 꿀 때
살며시 솔잎 따야 아프지 않다고
솥에 들어가도 뜨거운지 모른다
말없이 솔잎이 숨을 거둘 때마다
젊은날의 사랑처럼 송편이 익는다
소나무의 슬픔과 솔잎의 아픔을
헤아리며 발소리 죽이시는 할머니는
그 옛날 단군 할아버지의 예쁜 애인
노루피 조금 마시고도 시셈만 하여
큰 꿈 이루는 단군 할아버지 애태우다가
이제는 훨훨 타는 마음도 식은 재 되어
수숫대처럼 가벼운 사랑만 남아서
당신의 옛날 애인 제사상에 올릴
손가락 자국 선명한 그리움 빚는다
가만가만 발소리 죽이며 솔잎이나 따는
다 저문 가을 들녁 홀로 바람에 흔들리는
수숫대 같은 서러움의 눈빛에는
푸르고 싱싱한 까칠까칠한 솔잎이
할아버지 한창 때의 수염과도 같고
골이나서 일어서던 비밀의 가장자리
서로 맞부비며 엉킨 그것과도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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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오탁번 교수님의 제4시집, 겨울강 에서
나의 할머니는 내 기억에 없으시다.
내가 두어살 때 돌아가셨는데 애린 나를 업고 아랫돔 윗돔 마실 다니며,
우리 손자 손자하고 자랑하시던 할머님이셨다는 데...,
그런데 내 아이들은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