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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경스님의 명상편지 - 머물러 충분하게 느끼기

맑은물56 2009. 8. 5. 11:12
인경스님의 명상편지

 

 

  

 

머물러 충분하게 느끼기

                                                                                                                         글.사진 인경

                                 

             

불안이나 우울과 같은 감정이 떠올라오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명치끝이 아파옵니다.

이런 종류의 혐오스런 자극은 결코 유쾌하지가 않습니다.

십중팔구 이런 때에 우리는 도피를 선택합니다.

쓴 약을 먹지 않으려는 아이처럼, 어떻게 해서든지 피하려 합니다.

하지만 피하면 피할수록 더욱 불안해집니다.

이것이 '불안의 불안', '두려움의 두려움'이란 것입니다.

또 몰려오면 어떻게 하지 걱정하면서

밖으로 나갈 수가 없고, 사람 만나는 일을 미리 피합니다.

 

이럴 때 어떻게 행동하세요.

"어쩔지 몰라해요. 머리가 새하얗게 되요.

...참, 큰 사고가 날 것 같은 공포감이 밀려와요.

그때 숨을 쉴수가 없어요.

네,...약을 찾아요...약에 많이 의존해요.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요.

이때 할 수 있는 일은 빨리 여기서 벗어나서, 도망가는 일을 생각합니다.

이러는 내가 참 부끄럽습니다.

바보같고 수치스럽고 자존감이 한없이 추락합니다.

이러는 나를 누가 알까봐 전전긍긍합니다."

 

이렇게 어둠속에 감추어진 불안감이 밖으로 드러난 순간이 노출입니다.

달빛처럼, 잠재된 충동이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르면,

나는 어찌 할 수 없는 무방비상태가 됩니다.

하지만 이 순간은 매우 중요하고 귀중한 순간입니다.

바로 이때가 명상하기 좋은 적당한 시간입니다.

 

거친 바람과 함께 파도가 무섭게 밀려옵니다.

이것을 바라보는 일 자체가 두렵습니다.

여기에 압도당하여 나를 잃어버릴 것같은 공포입니다.

하지만 도망갈 궁리를 하지 말고, 침착하게 이 순간에 잠깐 멈추어 서서

온 몸의 느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자신을 꾸중하지 말고, 어떤 판단도 하지 말고

그냥 밀려오는 폭풍의 그 끝자락을 붙잡고

호흡과 함께

몸의 구석구석을 휩쓸고 지나가는 그 물결을 그대로 느껴봅니다.

 

그러는 어느 순간에

작은 기적, 변화가 일어납니다.

태풍의 진로가 바뀌고, 물결은 점차로 가라앉으면서

몸안에서는 아까와는 반대로 안정감과 고요함이 발견됩니다.

자심감과 함께 존재감이 느껴집니다. 

이제 나는 본래 부족함이 없음을 더이상 의심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