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참선을 함에 있어서 서두르지 않아야 빨리 성장할 수 있다.
빨리 하겠다는 마음과 쥐고 늘어져서 꼭 알겠다는 마음, 또는 나는 이렇게 꼭 해야겠다는 생각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일을 하면서도 일한 줄을 모르고, 잠을 자면서도 잠자는 줄을 몰라야 하며, 보면서도 볼 줄을 몰라야 하고, 들으면서도 들을 줄을 몰라야 하며, 발을 딛고 다니면서도 딛을 줄을 몰라야 하고, 만 가지 법을 손으로 주무르고 일을 했다 하더라도 한 줄을 몰라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홀연히 깨우칠 수 있는 지름길이다.
62
참선하는 자세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앉아서 하든, 일어나서 하든, 누워서 하든, 한다 안한다 또는 다했다는 생각조차 없어야 한다.
63
유(有)와 무(無)를 전부 합쳐서 그 모든 것을 누가 하는가?
자기 생활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그것을 모르니까 유다 무다 할 것 없이 다 종합해서 한 그릇에다 몽땅 모으는 수련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참선이요, 그것이 삼매(三昧)요, 진짜로 본래의 자기를 발견하는 지름길이다.
64
이 공부에는 길다 짧다 기약이 없다. 삼천 년이 한 찰나가 되는 공부이므로 공부를 빨리 해야 되겠다, 빨리 깨달아야 되겠다 하는 것은 부질없는 생각일 뿐이니, 그저 묵묵히 참구해야 된다.
65
계법(戒法)을 지키지 않아도 결국은 계를 범하지 않는 것. 정진을 열심히 하기 위하여 꾸부리고 앉아서 좌선을 하지 않아도 일상생활에 끊임없이 게으리지 않는 것, 이것이 참선이다.
66
공부한 자가 이건 좋고, 저건 나쁘고 하는 식으로 자꾸만 갈라서 보며 쫓아만 가다보면 자기 진짜 애비는 생전 찾지 못할 것이다.
67
공부함에 있어서 수십 명의 스님에게서 인가(認可)를 받았다 하더라도 자기의 진실함이 확실하지 않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혹 마로 인가하고, 글자를 써서 인가하는 것에 뭔가 뜻이 있다 하더라도 그보다는 말과 말이 끊어진, 서로 마음으로 이어지는 인가가 보다 참된 것이다.
68
만법(萬法)에 걸림 없음이 참선이다.
69
좌선(坐禪)도 행(行)이지 좌선이 아니다.
70
고행(苦行)이란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대로 생활속에서 하는 것이 고행이자 과정이다. 그러니 따로 찾지 말라.
71
공부는 말하는 사이 없이, 기도하는 사이 없이 해야 되지 그저 말로만 해서는 아니된다.
72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이 바로 참선이다. 참선은 잠시라도 숨이 끊어지지 않음에 있다.
73
고양이가 쥐를 노리듯 갓난 아이가 젖을 찾듯 그렇게 간절하게 믿고 놔라!
74
경(經)을 보지 않되 보고, 보되 보지 말라.
75
눈이 먼 사람에게는 지팡이가 필요하고, 다리를 다친 사람에게는 목발이 필요하듯 참나가 발현되지 않은 사람에겐 스스이 필요하다. 눈을 뜨고나야 지팡이가 필요하지 않듯이 그때까지는 스승을 의지하고 오로지 믿어야 된다.
믿는 진실이 필요하다.
76
삶의 파도가 쳤다가 가라앉고 하는 역경속에서 공부하지 못하며는 진짜 공부를 하지 못한다. 추풍에 낙엽 떨어지듯 해서는 안 되지 않는가?
77
공부하는 이는 첫째, 나가 죽어야 한다. 둘째, 나와 남이 두루 같이 죽어야 한다. 세째, 나와 남이 두루 나툴 줄 알아야 한다.
78
모든 것을 주인공에게 들이고 놓으면 마음이 편안해짐을 알 수있다. 이 때에 진짜 관해야 된다. '야! 주인공! 당신이 있다면 대답하라! 당신이 무엇인가? 당신은 가 봐라!
주인공! 당신이 들어 봐라!'하고는 관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가만히 앉아서 좌선을 하고 편안하여졌다고 해서 그대로 가만히 있으면 공부에 영 발전이 없기 때문이다.
79
자기는 공부를 가르치고 자기는 또 공부를 하여야 한다.
80
자기는 놔야 하고 자기는 바로 항복을 받아야 한다.
출처 한마음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