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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전강 대선사 사리탑

맑은물56 2008. 4. 28.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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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용주사에 위치한 전강 대선사 사리탑 (무자년 정월 초하루 촬영) - 뒷편 용주사 중앙선원

 

 

이하  부다피아 사리탑 제막식 기사

 

 

 

만공 스님의

법맥을 이은 근대 한국불교의 대표적 선지식인 전강 스님(1898-1975)의 사리탑 제막식이 봉행됐다.

전강영신대종사문도회(회장 정무)는 전강 스님 입적 30주기를 기념해 4월 25일 수원 용주사에서 인천 용화선원장 송담, 석남사 회주 정무, 수덕사 수좌 설정, 불암사 회주 일면, 수원포교당 주지 성관 스님 등을 비롯 전국 선원 수좌 3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강선사 사리탑 제막 및 점안식’을 가졌다.

송담 스님은 전강 스님의 오도송을 인용하면서 “전강 스님은 평소 법문에서 열반 전에 사리를 수습하거나 사리탑을 세우지도 말라는 언지가 있었지만 그
한국불교의 대표적 선지식인 전강 스님.
뜻을 어기고 이렇게 사리탑을 조성하게 된 것은 스님의 가르침을 정성스럽게 받들라는 주변의 권유 때문”이라며 “지금 스님의 육신을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스님이 남긴 법문을 법신사리로 삼아 정진하기를 바란다”고 법문했다.


전국 선원 수좌 3백여 명 참석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을 모형으로 조성



이어 스님은 “전강 스님이 32년 전에 남긴 신골사리는 천재지변에 소멸될 수 있어도 스님이 남긴 법문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며 “사부대중은 스님의 법문을 통해 신심과 분심을 일으켜 몸과 마음에 해탈을 얻고 자각각타(自覺覺他)의 삶을 실천하라”고 당부했다.

석남사 회주 정무 스님도 “조실 스님의 사리탑을 조성한 이유는 후학들이 수행하는데, 육신이나 물질적 가아(假我)에 속지 말고, 수행자자 직접 법신으로 깨달아 들어가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강스님의 전법제자인 송담스님이 주장자를 들며 법문하고 있다. 사진=고양배 기자



이날 용주사 중앙선원 앞에 조성된 전강 선사의 사리탑은 지난해 3월부터 전강영신대종사문도회가 2억 5천여만 원을 들여 조성한 것으로, 국보 제101호인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을 모형으로 했다.


송담 스님의 은사, 전강 스님은 누구?

-33세의 젊은 나이에 불지종찰 통도사 조실 지내
-근대 한국불교 선가에 '큰 별'

전강 스님(1898~1975)은 수좌계에서 ‘북 송담-남 진제’로 회자되는 송담 스님의 은사다. 전남 곡성 태생으로, 16세에 속가 모친과 사별하면서 출가사문의 길에 들어섰다.

합천 해인사에서 인공 스님을 은사로 출가, 이후 응해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았다. 이후 스님은 8년간 곡성 태안사에서 치열한 정진 끝에 깨달음을 얻었으며, 25세에 만공 스님에게 선종 77대 법맥을 전수받았다.

당시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지종찰 통도사 조실로 추대됐으며, 이후 법주사 복천선원, 동화사 선원, 용주사 중앙선원 등에서 조실로 지내면서 후학을 지도했다.

만년에는 인천 용화사에 법보선원을 개원, 중생교화를 했으며, 지난 1975년 법납 61세, 세수 77세로 열반에 들었다.

출처 : 행불
글쓴이 : 정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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