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차(白茶)
짱유화/다도대학원 교수/다인2000.3
사람들은 중국인 또는 유태인을 가리켜 장사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차 산업만 보아도 그렇다. 그들은 차엽 그리고 자사호 같은 다기의 상품가치를 높이는데 민, 관 할 것 없이 모두 합심하여 그 가치를 극대화하여 외화벌이를 한다.
예를 들어 자사호일 경우, 첫째로 중국 당국에서는 도공들 등급을 여러 단계로 나눈 후 여기에서 선출된 일급의 중국공예미술대사(중국공예미술대사)의 작품을 모든 매체를 총동원하여 최대로 가치를 높인다. 그리고 천만 단위에서부터 몇 억이란 천문학적인 가격을 매겨 화교들을 유혹한다.
차를 판매하는 데에 있어도 이러한 상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국제 차 대회에 ‘명차 품평회’라는 이벤트를 넣어 차의 극대적인 가치를 찿출하게 한다. 그 방법은 먼저 품평해야 할 명차를 정한다. 구매자는 해외 화교이기에 그들에게 인기가 높은 청차 계열의 ‘무이암차’ 혹은 ‘안계 철관음’ 황차 계열인 ‘군산은침’ 백차계열인 ‘백호은침’ 같은 차를 정한다. 그리고 정선된 소수 다농의 차를 대회에 참가시켜 최고의 차 권위자들에게 품평을 하게 한다. 여기서 입선된 차는 즉시 경매방식으로 판매하게 되는데, 대상을 받은 차는 대체로 2,000만원부터 3,000만원 사이에 낙찰된다. ‘1999년 홍콩 국제 차 대회’일 경우 대상을 수상한 100g의 안계 철관음은 2,700만원에 낙찰되어 홍콩사람에게 판매되었다. 실로 기막힌 상술이 아닐 수 없다.
백차 계열인 백호 은침도 이러한 고가품 명차에 속해 있기에 백차란 무엇인가에 대해 얘기 하고자 한다. 백차는 무슨 차인가를 논하기 전에 먼저 중국차의 역사에서 백차가 왜 탄생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해 언급해야 할 것 같다.
중국의 음차 역사를 보면 당나라 때의 음차법은 자차법(자다법:煮茶法)이고, 송나라 때는 오대에 걸쳐 점차 개발된 점차법(점다법:點茶法)이다.
자다법이란 찻잎을 쪄서 고형덩어리인 병차(餠茶)로 만들어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어 다마에 부드럽게 간 후 차솥에 차가루를 넣어 말발(沫餑)을 만들어 마시는 방법이다. 후일 이러한 차가 차인들 사이에 점차 고급화로 발전되자 마시는 방법에도 많은 변화가 뒤따랐다.
대표적인 변화는 차가루를 차솥에서 끓이는 것이 아니라 주발인 다완에 직접 넣어 연고와 같이 끈적하게 만든 후 적당한 양의 끓인 물을 부어 말발을 만들어 마시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을 가리켜 ‘점다법’이라고 하는데 오늘날 가루차를 풀어 마시는 ‘말차’와 매우 유사하다.
자다법과 달리 점다법에서 만들어진 말발은 거품모양으로 나타나자 차인들이 말발에 대한 개념을 ‘거품의 유무’로 그 판단 기준으로 정하게 된다. 이에따라 거품을 내기 위해 처음에는 차시를 이용해 거품을 냈으나 후일 이것이 개선되어 ‘차선’ 이란 전문다기가 등장했다. 또한 거품을 잘 내기 위해 차가루도 고급화 되었고 이에 차의 품질도 자연히 아주 어린 차싹 중심으로 딴다. 이러 찻잎 따는 시기도 더욱 빠르게, 채엽 지역도 절강성에서보다 기후가 따뜻한 복건성으로 이동하게 된다.
당나라 때부터 송나라 때까지는 차를 공물로 바치는 공차(공茶)가 유행하여 새로운 형태의 차를 만드느라 끊임없는 변화를 시도하여 제다의 기술도 급속도로 발전하였다. 특히 점다법에서 차인들이 즐기는 것이 거품이기에 거품의 품질에 대한 기준도 ‘얼마나 끈적한가’ 또는 ‘색상이 얼마나 하얗게 나타나는가’에 관심을 두게 된다.
이에 따라 차에 관한 모든 용어들이 백유(白乳), 백설(白雪), 백화(白花) 등 백색에 초점을 맞추어 전개하게 되었고 이는 즉 차색귀백(茶色貴白)이라는 개념에 귀결하게 된다. 이러한 시대의 필요에 따라 다농들이 찻잎속에 푸른색을 나타나는 엽록소를 제거하기 시작했고 이는 거품을 보다 하얗게 나타나게 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제거된 엽록소의 차 맛을 보충하기 위해 용뇌향, 사향 등 향료를 넣어 다른 차원의 차맛을 내게 되었다.
또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다농은 찻잎 속의 엽록소를 제거하는 번거로움 자체를 극복하기 위해 아예 흰 이파리인 백차를 찾아 나서게 된다. 이것이 백차가 차 역사 속에 등장하게 된 동기이다. 그리고 찻잎이 전체 백색으로 된 백차가 가장 좋은 찻잎으로 대우받는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1367년 송나라가 패망되도 명나라가 들어선다. 명나라 초기까지만 해도 조정에서는 용단봉병인 단차를 즐겨 마셨는데, 홍무24년(1391)9월 16일일에 명나라 건국 태조 황제인 ‘주원장’ 이 민력의 수고를 중히 여겨 용단차를 폐지시키는 칙령을 내려 잎차인 산차(散茶)를 흥성하는 데 전력을 기울인다. 이 칙령으로 인해 근 400년 동안 중국 차 문화를 이끌어왔던 흰 거품을 내는 점다법은 중국 차 역사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잎차를 우려 마시는 포다법시대가 열린다
포다법 시대가 열리자 단차를 만들어왔던 다농들이 모두 잎차를 만들게 된다. 이제까지 중국차 역사에서 만들어왔던 차들은 모두 차잎을 쪄서 만든 증청녹차였는데 상업적으로 또는 소비자의 수요에 따라 다농들은 여러 가지의 제다방법을 개발하게 된다. 이때 일부 다농들이 역사 속에 이름을 날렸던 ‘백차’라는 단어가 사업성이 강하자 이를 새로이 개발된 차상품에 붙여 사용하게 된다. 따라서 명나라에서 우려 마시는 백차와 송나라의 덩어리 단차인 백차는 이름만 같을 뿐 엄연히 다른 계통의 차다. 또한 오늘날은 송나라 <대관다론(大觀茶論)>에서 언급했던 한두 그루의 백차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
백차는 찻잎을 가볍게 발효한 경 발효차이며 제다상에 있어 덖거나 비비기인 ‘유념’ 공정이 전혀 없이 시들게 하는 ‘위조’와 ‘건조’ 등 2단계만 거친다. 곧 유념이나 발효를 거치지 않고 햇빛이 차단된 서늘한 장소에서 장시간 시들게 하여 약간의 발효가 되게 건조시킨 차를 말한다. 다만 긴 장마철인 우기에는 볕을 쬐어 말리거나 불을 쬐어 말리는 ‘홍배’과정을 거쳐 말린다. 이러한 ‘일쇄’방식으로 만드는 방법은 명나라 ‘전예형’이 저술한 <자천소품(煮泉小品)>에서 언급했다.
백차 제조는 튼실한 어린 싹과 은백색 털 ‘백호’가 많은 ‘복정대백차’품종을 사용하여 청명 전후 이틀에 거쳐 채엽한 싹을 이용하여 제조한다. 이 시기가 지나면 차싹이 펴져서 녹색을 띠므로 백차를 제다하기에는 부적합하다. 이렇게 만들어진 완성된 찻잎의 표면에는 은백색 광택을 띤 백호가 가득 덮여 있어 외관이 수려할 뿐만 아니라 찻물이 푸르고 맑으며 산뜻한 맛을 지닌다. 보통 1 Kg의 백차를 생산하려면 약 7Kg의 차싹이 필요할 만큼 귀한 차로서 주로 홍콩이나 마카오, 대만 그리고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소비된다. 열을 가해 제다하지 않아 성미는 극히 차며, 해열작용이 탁월하여 한 여름이나 복날에 즐겨 마시며 약 10분 동안 우려 마시는 고급차이다.
가공된 백차의 차잎은 ‘삼백(三白)’을 요하며 신선한 차싹과 찻잎 양쪽에 백호가 가득 덮여 있어야 백차라고 말할 수가 있다. 백차는 중국 복건성의 특산물로서 복정, 정화, 송계, 건양 등지에서 생산된다. 백차를 제다하는데 쓰는 원료에 따라 백아차(白芽茶)와 백엽차(白葉茶)로 나뉜다.
백아차(白芽茶/White bud tea)
이른 봄 어린 눈이 피기 전에 잎이 달린 어린싹과 잎을 분리하여 어린 싹만으로 만든 백차가 백아차다. 전형적인 ‘아차’로는 ‘백호은침’이 있는데 그 겉은 은색과 같이 희며, 곧기는 침 모양 같고 일쇄 방식으로 제다한다. 백호은침의 제조는 산지와 제다 방법에 따라 복정지방의 ‘북로은침’과 정화지방의 ‘남로은침’으로 나뉘어진다.
백엽차(白葉茶/White Leaf tea)
백엽차는 백목단(白牡丹), 공미(貢眉), 수미(壽眉) 등의 품목이 있는데 주로 싹 하나에 단잎을 혹은 두 잎짜리를 채취하여 원료로 쓰며 홍배 방식으로 제다하는 것이 백아차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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