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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우선하는 정책- 이대로 좋은가?

맑은물56 2008. 2. 6. 01:46
영어를 우선하는 정책- 이대로 좋은가?

 

아시아는 마지막 남은 위대한 순례지


이상규(국립국어원장) 



언어를 비트는 것만큼 영혼에 상처를 남기는 일은 없다.


필리핀의 국민작가인 프란시스코 시오닐 호세는 장편 소설 『에르미따』의 서문에서

미국 작가 제임스 펠로즈의 말을 인용하여 오늘날의 필리핀의 불행은 ‘손상된 문화’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필리핀의 ‘손상된 문화’의 속성을 호세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한 젊은 작가가 제게

타갈로그, 일로카노, 비사야 말로 글을 쓰는 작가들과 한 무리로 평가받는 것에 대해

모욕감을 느끼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영어로 글을 쓰며 예술가인 체하는 작가들,

그중의 일부는 대학에 몸담고 외국에서 최신 문학의 흐름에 영향을 받았는데, 제가

그들 중에 속한 사람이었다면 그러했을 거라고 대답했습니다.” 스페인에서 일본,

미국으로 이어진 오랜 식민지, 필리핀의 언어 혼란이 바로 그들의 문화의 손상을 일으킨

주범이라는 말이다. 언어의 다양성이 조금이라도 줄어들면 우? ??끌어와 쓸 수 있는

지적 기반도 함께 낮아지기 때문에 인류의 적응력은 현저히 감소된다. 원주민의 언어는

지구에서 한 번 없어지면 대체가 불가능한 천연자원과도 같은 것이다.


《현대문예》10월호에 실린 필자가 쓴

<에르미따(6)>라는 시 작품이다.


기억이라는 것은

유통 기간의 횡포라는 것이 없다.

욕망의 전율하는 풍경을 증언하는

유품이 보관된 이유 하나로

거침없이 어둠을 향해 내달리기도 한다.

현재가 영원하리라는 믿음의 착종으로

놓쳐버린 오랜 열망과 꿈들이

구원받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평범한 사람이

한 시대에 상처받은 채 좌절한

그 패배는 부조리하고 탈골된

언어 탓이다.

잃어버린

타갈로그말, 세부아노말, 일로카노, 비샤얀말

곰팡이나 부식된 습기에 뒤섞여 있는

혓바닥이 굳고 구강이 봉인된

USA

욕망의 잉글리쉬 말로 살림 차린 후광은

엇갈리고 충돌하는 언어들

어깨를 비비며

먼지처럼 흩어지는 죽음이 순례.

아시아는 사람이 만든 마지막 남은

위대한 순례지이다.


! ; 필리핀의 언어 침탈의 슬픔을 노래하고 있다.


  지난 세기 아시아는 이 지구 상에서 가장 많은 상처를 받은 지역이다.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난 순수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지막 남은 위대한 순례지이기도 하다.

지난해 전주에서 개최된 AA문학 페스티벌의 의미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언어를 회복하여

다시 인류를 위한 치유(治癒)의 언어로 환원하는 데 있다.


우리 주변의 다양한 언어와 방언이 두려우리만큼 빠른 속도로 소멸해 가고 있는데도 그

누구도 그 위기를 느끼지 못하고 있으며, 특히 언어학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50여 년 전 아프리카의 콩고, 알제리,

차드가 처했던 식민 상황과 세계화의 물결로 밀려드는 영어의 언어적 억압과는 다르다.

제국주의가 일상적으로 휘두르는 가장 큰 무기가 언어 침탈이다. 언어 제국주의는 언어

침탈뿐만 아니라 호명의 수단인 이름, 그들의 역사와 문화유산, 그들의 결속력, 그들의

지적 능력과 그들이 자신에게 가진 믿음마저도 무력화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