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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초대석] 서울대 독문학과 안삼환 교수

맑은물56 2008. 2. 2. 14:38

[한국 초대석] 서울대 독문학과 안삼환 교수

주간한국|기사입력 2003-12-23 17:12 |최종수정2003-12-23 17:12


영어 열풍에 치여 있던 제2 외국어가 뜻밖의 주목을 받고 있다. 생각지못 한 계기였다.

예를 들어 이라크에 국군 10,000명이 파병된다면 최소한 1개 소대 당 1명인 250명 안팎의 아랍어 통역자가 필요하다는 계산이다. 서희ㆍ제마 부대와 달리 전투 부대가 증파될 경우, 현지 주민들을 엉성한 영어로만 상대한다면 ‘미군의 용병’ 정도로만 인식할 위험이 커 어떤 돌발 사태가 일어날 지 예측할 수 없는 분위기다.

영어를 곧 로마로 통하는 길이라 인식하던 기존의 외국어관(觀)을 근본적으로 반성해야 할 계기가 뜻하지 않게 주어진 셈이다.“학회장을 맡고 보니 책임감이 따랐어요. 우선 독어 교사들의 생활 조사에 들어 갔죠. 쫓겨 나기 직전이더군요.” 2002년 1월 1일부로 한국 독어독문학회장직에 앉고 나서의 일을 떠올린다. ‘오직 영어’라는 시대적 대세에 밀려 고사 직전에 있는 제 2외국어가 겪고 있는 기막힌 일들은 그처럼 현실이 돼 하나둘씩 다가 왔다.안삼환 교수(61ㆍ서울대 독어 독문학과 학과장)는 현재 영어 바람에 내쫓겨, 교육 현장에서 피폐할대로 피폐해진 제 2외국어 교육의 문제를 꾸준하게 환기시켜 온 장본인이다. 가두 홍보, 당국자 방문 등 할 수 있는 모든방법을 동원해 생애 처음으로 길거리에 나서기를 마다 하지 않았다.관련 학과 대학생, 교사 등과 뜨거운 물로 몸을 녹이며 가두 서명 운동만도 지금까지 3차례 가졌다. 11월 29일 대학로에서 가졌던 것을 필두로 해12월 13일 서울역 광장에서 2차, 20일 종로 2가 YWCA앞에서 3차 운동을 가짐으로써 2003년의 투쟁을 일단락했다.

영어 일변도의 외국어관 바뀌어야

부쩍 추워진 날씨에 시민들은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갈 길을 재촉하기일쑤였고, 더러는 “영어 교육이나 잘 해라, 이 놈들아”라며 엉뚱한 화풀이를 하기도 했다. “원래 나는 투사가 아니라, 이렇듯 길거리에 나가기는처음이예요.” 그러나 어찌 보면 당연하다.‘제 2외국어 교육 정상화 추진위원회’를 만들고, 상임 대표로 나선 이상은. 그처럼 설움을 감내해 가며 모은 서명 용지가 현재 3만여장을 헤아린다. 그의 학교 연구실 등지에서 유용하게 쓰일 날을 기다리고 있다.

‘제 2외국어 고사 직전’, ‘균형 잡힌 제2 외국어 교육, 나라의 미래’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행인들을 서명대 앞으로 데리고 오면 일단성공이다. 명지대 아랍어과, 외국어대 서반어학과에서 교수들의 제의로 나선 30여명의 학생들이 오후 3~5시까지 몇몇 교수들과 함께 벌여 오고 있는운동이다.

그러나 자리를 얻는 것조차도 만만찮은 일이다. 집행위원장인 명지대 아랍어과 김종도 교수가 경찰에 집회 신고를 하러 가면 “한달분은 이미 꽉찬 상태”라는 답을 듣고 오기 일쑤였다. 일정을 끝낸 시위대는 설렁탕 한그릇에 소주 한 잔으로 속을 달랜 뒤 훗날을 기약한다.

“불쌍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죠. 사전에 보도 자료를 돌렸는데도 기자는코빼기도 하나 안 보이고….” 메이저 신문들 모두가 영어에만 목 매다는실정이니, 덩달아 기자들도 거기에 반하는 기사를 쓰기 싫어 하는 탓이라고 생각한다. 오직 한 군데, ‘교수 신문’에서만 기자가 와서 한 꼭지 나갔을 뿐.

제 2외국어 관련 정책 토론회 등 행사가 있을 때마다 언론사에 수도 없이알렸지만, 완전히 무시당한 꼴이 돼 버린 그는 “이런 나라는 썩었다고 본다”며 다시 분을 터뜨렸다.

변방의 언어 홀대, 대가 치를 것

안팎으로 힘 든 일이다. 그나마 협조적인 경인 지역을 벗어나면 교수들이서로 미루는 등 소극적 자세 일변도로 나오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하면속이 많이 상해요.

하지만 내색 않고 바로 당신의 일이라며 설득에 설득을 하죠.” 공동의 이슈보다 개인적 일에 치중하는 지식인 특유의 님비 현상을 톡톡히 확인하고 있는 셈이다. 그나마 제주와 울산 지역에서 한차례씩 가두 운동을 벌인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빡빡하던 수첩이 훤하게 비어 있는 7월은 위기였다. 이렇다 할 행사가 없었다는 증거다. 아무데서도 호응은 없었다. 스스로 지쳐 가고 있었다.

윤덕홍 교육부 장관을 직접 만나야 겠다고 마음 먹은 때였다. 대구 경북고등학교 후배이기도 한 윤 장관은 그러나 당시 NEIS건으로 정신이 없었다.

장관실에 제 2외국어 문제로 만나고 싶다고 했으나 비서실 선에서 번번이거절 당했다. 세번째 전화끝에 10월 14일 면담을 성사시켰던 안 교수 등7명의 제 2외국어 관련 교육자들은 그날 장관이 약속했던 제 2외국어 교육정상화를 위한 발전적인 대책 마련을 위해 안 교수의 연구실을 달구고 있다.

“온 나라가 마치 미국의 식민지라도 되는 듯 지나치게 영어 열풍에 휩싸여 있고, 수능 시험의 외국어 영역은 곧 영어를 의미하는 한국의 현실은구제화 시대를 역행하는 것입니다.”또 부분적으로 실시하는 제 2외국어 교육도 실제로는 고2 한 학년 동안만교육되는 등 허울만 좋다는 지적이다. 그나마 일어와 중국어에 완전 경도된 교육 현장에서는 행정 편의라는 이유로 독어와 프랑스어를 폐교과하고해당 교사를 버젓이 해직시키는 데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는 변방의 언어(우리 식으로 말한다면 ‘제2 외국어’)를 홀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9ㆍ11 테러 직후 미국의 정보 기관들은 엄청난 예산을 들여 세계 각처로부터 감청ㆍ축적해 온 자료들을 처리하는 데서 최대의 걸림돌이 제 2외국어를 박대해 온 현실이었다.그 자료들을 번역할 사람이 없어, 어떤 정보가 있는 지도 모른 채 �고있다는 사실이다. 세계 제일이라며 독선에 빠져 영어로 호령하던 미국의오만을 멈출 길은 요원한 것이 현실이다. 더더욱 문제는 그 같은 사정은뒷전에 몰아둔 채 언필칭 ‘정통 현지 미국 영어’를 배우지 못 해 안달인것이 이 시대 한국이다.11월 1일 열렸던 세미나 ‘제 2외국어 교육 정상화를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는 안 교수의 발언을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펼쳐졌다. 노어,독어, 불어, 서어, 아랍어, 일어, 중어 등 6개국어13개 단체 소속회원들이모여 벌였던 일대 토론이었다.‘세계화=미국화=영어지상주의’라는 인식이 만연하면서 이미 고사상태에처한 제 2외국어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앞으로의 대책과 행동을강구하자는 자리였다. “영어만 잘 하면 된다고요? 미국인의 피상적 사고방식, 겉핥기식 처신만을 배우자는 건가요? 독어와 프랑스어 등으로 씌어진 깊은 휴머니즘의 세계를 껌 씹으며 듣자는 발상 아닌가요?” 그는 아직도 열을 내며 말한다이 같은 요구는 시대적 추세이기도 하다는 지적이다. 산업 현장에서 제 2외국에에 대한 생각을 알아보기 위해 위원회가 7월, 9월에 전국 55대 기업의 CEO를 대상으로 펼쳤던 설문 조사는 그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조사에 따르면 CEO들은 영어와 제 2외국어를 함께 구사하는 인재가 절실히필요하다(90% 찬성)는 의견이었다.특히 오늘날 제 2외국어가 황무지화된 것이 수능에서 선택 과목으로 규정됐기 때문이라는 데 인식을 함께 하고, 입시 과목에서 필수화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비슷한 수준으로 동의했다.

서명운동 5만명 확보 계획

관련 교육자뿐 아니라 안 교수 등 회원의 지인들이 보내 오는 후원금은 든든한 힘이 돼 주고 있다. 그는 “서명 운동에 더욱 박차를 가해 올 연말까지 가능하다면 50,000명선을 확보할 계획”이라며 “목표가 채워지면 황우여 국회 교육 위원(한나라당)에게 제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또 “내년부터는 대대적으로 홍보에 나서, (정부의) 버릇을 고칠 것”이라며 “봄부터 관련 대학생들을 동원, 보다 적극적인 가두 홍보에 나설 계획”이라고도 말했다.

안 교수는 “제 2외국어 교육 시작 시기를 현행 고2가 아닌 고1로 낮출 것”과 “수능 시험에서 제 2외국어의 점수를 영어의 4~5분의 1이라도 넣어야 할 것”을 당면 목표로 꼽았다. “이런 추세로 간다면 제 2외국어 교사가 모두 퇴출될 수밖에 없죠. 그러다 어느날 갑자기 제 2외국어 선생 모집한다고 헐레벌떡 난리를 칠 거예요.” 정부가 ‘인적자원부’란 말을 달아놓고도, 정작 그 말 뜻을 모르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2003년부터는 단체장의 일에서 물러 앉게 되는 안 교수는 “홈 페이지 창설, 장관 면담, 가두 서명 등 실제적 행동을 궈의 다 취한 셈”이라며 “내년부터는 백의종군의 자세로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중, 전남 광주 지역에서 서명 운동건으로 핸드폰이 걸려 왔고, 안 교수는또 한참을 통화했다.그는 “사람이 자꾸 피폐해지는 것 같다”면서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는일을 떠맡게 된 결과라는 투로 말했지만, 이미 먼 길로 접어 들었음을 인정했다. 오늘도 추진위원회 홈 페이지로 들어 가 비공개 게시판에서 동참자들에게 간곡한 감사의 편지를 띄우고 있다.

이 일에 뛰어 들면서 버린 것이 있다. 자존심이다. 아카데미 안에만 있던그가 길거리에 나가 제갈길 바쁜 행인들에게 관심을 부탁하려면 당연한 일이었는 지도 모른다. “길거리에서 행인을 붙들고 거지처럼 나서서 미안합니다 운운하는 것, 그거 제딴에는 연습하고 나간 거예요. 희생 정신이 없으면 못 하는 겁니다.”또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서명 받은 용지를 전달하러 학교 연구실로 갔더니 안 계시던데, 어디 계시느냐”며. 당연하다. 자택에서 인터뷰중이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