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홍종기
-.발행처 : 도서출판 '창작과 의식'
-.정가 : 10.000 원
*고향 의식으로 채색된 사모곡
/김성열(시인, 문학평론가)
홍종기 시인이 추구하는 시적 주제는 고향의식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이 추구하는 정신세계에는 자신의 성장 경험이 폭넓게 자리하고 있으며, 이러한 시적 공간에는 어머니와 고향이 집요하게 자리 잡고 있다. 시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 가슴엔들 어머니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한(恨) 같은 정서가 없을까마는 시인이 탐색해 나가는 시적 주제는 시 작품으로 표출해 냄으로써 비로소 보통 사람들과의 차별성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홍종기 시인의 첫 시집 <어머니의 강(江)>에 실린 원고를 읽으면서 새삼스럽게 어머니와 고향에 관하여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가슴 속에 자리잡고 있는 어머니라는 존재는 살아 있는 동안 어쩔 수 없는 삶의 근원을 형성하고 있음을 상기하면서 시인이 추구하는 어머니는 어떤 형태로 형상화 되는가를 살펴봄으로써 그의 시를 폭넓게 이해하는 단서를 찾아보고자 한다.
꽁꽁 얼어붙은 어머니의 강 위
동태가 된 바지가 빨래 방망이질에 뼈를 녹이고
얼음 아래 물속에서 흐느적거리다 간신히 물 밖으로 기어올라
주섬주섬 주워 담은 함지 안에서 뻣뻣하게 걸어간다
거머리에 물려 종아리 타고 내리는 피같이
함지 붙든 어머니 손 선혈 흐른다
인리(隣里)들을 지나 향리(鄕里) 가운데
호박 샘을 돌아 산 중턱 대나무밭 속 내 집
어머니는 바쁘게 부엌 아궁이에 군불을 지핀다
오늘은 따뜻하게 잘 수 있으려나 보다
동생이 덜덜 떨며 두꺼운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눈만 껌벅거리고 있다
하늘 속 하얀 뭉게구름 덮고
여름날 쨍쨍 내리쬐는 그 따가운 햇볕을 아랫목에 깔고
겨울을 보낸 시간 속 밤을 얼마나 지새웠던가?
배고픔과 추위가 허탈(虛脫)하게 하는데
어머니는 늘 바람과 싸웠다
어머니의 강(江)에서
-시 <어머니의 강(江)> 전문
이 시에서 어머니는 꽁꽁 얼어붙은 강으로 제시되고 있으며, 어머니와 강을 동격화 시키고 있다. 시인에게서 강이란 무엇일까.
동태가 된 바지가 방망이질에 뼈를 녹인다는 이미지에서 떠오르는 것은 지난 날의 가난이라 할 수 있다. 흘러내려야 할 강은 얼어 있고, 더운 물에 담겨져서 빨아야 할 바지는 동태가 되어 한스러운 방망이질로 뼈를 부수듯 녹여내고 있는 것이다. 시인이 표출해 낸 어머니의 강은 얼어붙은 겨울의 강이다. 여기서 생성되는 어머니 상(像)은 어려운 환경을 딛고 삶을 이어온 투명하고 맑은 어머니 상이다. 맑고 투명한 얼음의 이미지는 순수하고 티 없는 자식 사랑이고 그 사랑을 받고 자라온 시인의 정서적 등가물(等價物)이라 할 수 있다. ‘어머니는 늘 바람과 싸웠다/ 어머니의 강에서’ 이렇듯 어머니의 강을 바람과 결부시킨 것은 삶의 과정에서 본 혹독한 시련이라 하겠고, 그 시련과의 싸움이 어머니를 더없이 어머니답게 시로 형상화 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머님은 밤낮으로 우셨다
무밥 속으로 스며든 눈물만 잡수시며
보리밥 속에 뿌리박은 고구마를 캐내 먹고
비워버린 그릇보고 따라 울던
동생의 눈물도 처절한 가난이었다
마루 밑에 쌓여 있던 장작이
어머님의 눈물 아래 썩어가며 아궁이를 식혔어도
외장 보러온 상인들이 모은 모닥불 아래 식은 숯등걸은
덜덜 떨고 있던 어머님과 우리들의 군불이었다.
밤을 헤매다 다가온 찬밥 덩이는
얻어온 김치가 간을 맞춰
뚝뚝 떨어낸 어머님의 눈물이 희석된
희멀건 국밥이 밥통을 채웠던 쓰라림은
군국주의자들을 향한 원망이었고 지금도,
용광로에 녹아내리는 쇳물 같은 복수심이다
싸라기가 밀알이 되어
깊이 뿌리 내린 어머님 무덤가에
잔디처럼 엉켜 밟아도 죽지 않는
우리들의 생명이다
-시 <싸라기가 밀알이 된 어머님의 눈물> 전문
이 시에서 제시된 어머니의 상은 눈물과 연결되어 있다. ‘어머니는 밤낮으로 울면서 무밥 속으로 스며든 눈물만 잡수시며’로 묘사되고 있음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연민과 한스런 시인의 정서라 할 수 있다.
‘마루 밑에 쌓여 있는 장작이 어머니의 눈물 아래 썩어 갔다’는 표현에서 한스런 가난의 단면을 느낄 수 있다. 장작을 아끼느라 썩어가는 줄도 몰랐을 것이라는 암시로 읽혀지기 때문이다. 희멀건 국밥이 밥통을 채웠던 쓰라림에서 시대에 대한 원망이 쌓였을 것이고 쇳물 같은 복수심도 일었다는 것인데 어머니의 사후에는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밟아도 죽지 않는 불사신의 생명으로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와 고향은 정신적인 면에서 일맥상통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어머니가 뿌리의식이라면 고향은 그 뿌리를 살아 있게 북돋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고향이라는 의미 속에는 자기가 태어나서 성장했던 물리적 장소와 정신적으로 추구해 나가는 이상향이라는 관념적인 의미가 함께 포함되어 있다. 시인의 고향의식은 물리적 고향과 정신적 고향이 함께 어우러져 있음을 볼 수 있다. 물리적 고향은 시의 외형적 모습으로 나타나고, 내면적인 고향의식은 꼭 가보고 싶은 동경의 세계로 표출된다. 한 시인이 추구하는 정신세계는 다양할 수 있으나 시적 형식을 통하여 양식화 될 때 홍종기의 시에서처럼 구체화 되는 것이다.
산천은 그대로 푸르게 숨 쉬고 있는데
내 어릴 적 뛰놀던 고향은 아니로다.
물새 날던 남강 언덕서 바라보며 손짓하던
친구들은 노을같이 불그레하기만 하다
비봉산 바라보니 노송만이 서글프고
지나가는 찬바람만 나를 끌어 안아주니
하염없는 눈 속 강물만 일렁이고
촉석루 돌기둥은 싸늘하게 식었구나
연화사 풍경소리 멀리도 울어대니
세월이 성성하게 백발을 만들었고
하얀 이 드러내고 웃어주던 임들이여
이승 떠나기 전 다시 한 번 만날 날이,
진양호 넓은 호수 돌아드는 바람들은
꽉 막힌 빌딩 피해 골목을 적시고
들뜬 마음 녹인다
김시민 장군의 지휘봉이
촉석루를 호령한다.
도도히 흐르는 남강 물줄기 토하는 일 없이.
-시 <고향 산천> 전문
이 시에서 제시되는 풍경은 물리적인 고향의 공간에 서서 변화된 시인의 정서를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직설적인 표현을 통하여 꾸밈 없이 진술된 것이어서 어려움 없이 읽혀질 수 있지만 시인의 성장체험이 곳곳에 묻어나 있음을 볼 수 있다. 산천은 그대로 푸르게 숨쉬고 있는데도 어릴 적 뛰놀던 고향은 아니라는 시적 진술에서 변화된 의식 내부의 고향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시인의 의식 공간에 변화되고 성장된 정신이 물리적 장소 개념을 내면의 의식 공간으로 구체화시켜 드러내고자 함이다. 이어서 연결된 정서적 흐름은 노송만이 서글프고/ 찬 바람만 나를 끌어 안아주니/ 하염없는 눈 속 강물만 일렁이고/ 촉석루 돌기둥은 싸늘하게 식었구나로 표현되고 있다. 여기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고향의 산천이 시인의 의식 내부에 들어와 정서적으로 채색되어 시적 형상물로 재생산 되었다는 점이다. 연화사 풍경 소리는 멀리서 울어대고, 세월은 성성하게 시인의 백발을 만들고 그리운 임들을 이승에서 다시 한 번 만나기를 희구하는 것이다.
고향과 연결된 자연에 관한 시를 살펴보자.
저 하늘이 늘 푸르면,
저 산과 강도 늘 푸르면 좋겠다
마음마저도
손잡고 창공을 날아보자
마음 합쳐 저 태산도 올라보자
저 강도 거슬러 오르자
넓은 바다로 노 저어 가자
태산준령 힘껏 뛰어넘어
마음의 고향, 내 고향으로
하늘 산 강 바다가
한없이 넓고 높으며 맑으니
오늘과 내일을 이어갈 무지개 위에
사랑 노래 부를 수 있는
아름다운 저곳에서
일곱 빛 고운 색으로 물들였으면
좋겠다, 좋겠다.
-시 <모두가 늘 푸르면 좋겠다> 전문
시인이 제시한 자연은 고향의식에 정신적 뿌리가 맞닿아져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시에서 제시된 자연물은 시인이 이상으로 삼는 동경의 세계에 놓여진 형상물(形象物)로 치환되는 것이다.
'저 하늘이 늘 푸르면/ 저 산과 강도 늘 푸르면 좋겠다/ 마음마저도.' 여기서 제시된 산과 강은 고향이라는 공간에서 차용된 소재이고 푸르면 좋겠다는 표현은 동경하면서 그리워하는 정신적 공간의 조형의지인 것이다. 시의 전편을 관류(貫流)하는 시적 정서는 이상향의 동경의지이며 시적으로 추구하는 정신세계의 전경(全景)인 것이다. 마음 합쳐 저 태산도 올라보자. 넓은 바다로 노 저어 가자/ 마음의 고향/ 내 고향으로. 오늘과 내일을 이어갈 무지개 위에 사랑 노래 부를 수 있는……. 일곱빛 고운 색으로 물들었으면 좋겠다, 좋겠다. 등의 표현은 시인이 이상으로 삼는 내면의식의 시적 형상이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바위섬>을 보자.
한없이 후려치는 파도가 미울 때도 있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갈등에 휩싸인 나를 바로 잡아
마음의 뼈를 예쁘게 깎아 주었다
모진 세월의 바람에 살이 트고
덕지덕지 달라붙은 물때를
눈물로 씻겨 주었다
타는 태양열에 열병을 앓고 있을 때도
바다 같은 마음으로 그것을 지웠기에
더 바랄 게 없다, 죽어도 여한이 없다
바다 위에 둥둥 뜬 몸이지만 결코,
빛을 잃지 않은
매끈하고도 사랑받기에.
-시 <바위섬> 전문
시인의 고향은 한반도 남쪽의 내륙 지방이지만 성장 후의 반생을 바다를 보면서 살아왔듯이 바다가 제2의 고향 풍경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진저리나게 들어온 파도 소리가 미울 때도 있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갈등에 휩싸인 시인을 바로잡아 마음의 뼈를 예쁘게 깎아주는 파도로 인식하고 있음을 본다. 바위섬은 파도에 씻기고 해풍에 견디어 오면서도 의연하게 제 모습을 지켜온 자연물 임에도 시인의 정서가 투사되어 의인화 된 생명체로 호흡하고 있다. 바위섬의 시적 화자는 바위섬과 동격을 이루면서 인간의 삶에서 부딪치는 숱한 시련과 갈등을 겪어야 하는 삶의 조건을 인간적으로 진술하고 있는 것이다.
모진 세월의 바람에 살이 트고 덕지덕지 달라붙은 물때를 눈물로 씻겨 주었다는 표현에서 물때를 눈물로 씻겨준 당사자는 누구인가. 물론 바람과 파도일 것이나 눈물이라는 인간의 분비물을 자연현상과 결부시킨 시적 문맥에서 인간과 자연이 하나 된 합일의 정신을 읽을 수 있다. 자연과 합일된 정신세계는 영원한 유토피아의 머나먼 고향의식의 발로라 할 수 있다. 시인은 누구나 자기 세계를 갖고 있으며 그 세계를 탐색해 가면서 끝없이 사유하는 존재다. 자기 세계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자기의 혼을 불 태울 만큼 뜨겁고 진솔한 고뇌와 갈등이 없을 수 없다. 고향과 어머니로 대변되는 홍종기 시의 주제의식과 함께 고뇌하는 시인의 모습이 드러나는 시를 살펴보자. 이러한 시편은 '고뇌(苦惱)', '고현산 불광사(佛光寺)', '비움' 등에서 드러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우선 <고뇌(苦惱)>를 살펴보자.
연탄재를 안고 뒹굴다가 폭탄의 파편처럼 뿌옇게
파란 잔디가 색과 빛을 잃고 산짐승처럼 운다
오랜 산고 끝에 뱉어낸 핏덩어리
조물주의 창조력 얻은 시인의 시처럼
아! 그러나 달리다가 만 철도의 종단 역처럼
생각은 펜을 쥔 손가락 끝으로 기어들고
초읽기를 시작한 말기의 생명을 삐거덕거리며
산으로 들로 바다로 강으로 그리곤 하늘 헤맨다
가시덤불 헤치는 나와의 처절한 싸움은
생각의 골을 파며 가파른 마음을 기어올라
한 잎 두 잎 낙엽이 포근한 내일을 꿈꾸듯
밤을 재우는 넓은 가슴 알알이 여문다
눈 귀 얼어붙은 베토벤의 교향곡처럼 그 음률에
돈키호테 형 생각들로 빈 마음을 채우며
하늘빛 아래 여울지는 고뇌하는 마음.
-시 <고뇌(苦惱)> 전문
이 시의 주제는 제목에서 암시 되고 있는 바와 같이 고뇌하는 시인의 의식이다. 시적 상관물로 제시된 사물들이 때로는 격하고, 섬짓하고, 멀고도 아득한, 포근한 가슴이 되기도 한다. ‘폭탄의 파편처럼 뿌옇게’, ‘산짐승처럼 운다’, ‘뱉어낸 핏덩어리’, ‘철도의 종단역처럼’, ‘가시덤불 헤치는 나와의 처절한 싸움’, ‘밤을 재우는 넓은 가슴 알알이 여문다’ ‘하늘빛 아래 여울지는 고뇌하는 마음’과 같이 때로는 감각적 이미지로 때로는 시적 진술로 시인의 고뇌를 형상화 시키고 있다. 질서 없이 난삽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시종 주제의식을 잃지 않고 잘 통제된 문맥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비움으로서 더 많은 걸 채울 수 있다는 진리를 터득한 양 이 시인이 빈 마음으로 쓴 시를 보여주고 있다. 빈 마음이란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굿굿하게 자아를 확립한 자세에서 울어난 태도다. 속이 텅텅 비어 아무런 의식도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잡스럽고 혼란스럽고, 이기적인 마음을 털어내고 깨끗한 상태로 비움이란 의미다. 이 시인이 더 큰 자신의 시세계를 형성하기 위해서 마음 비우는 자세를 보여줌은 바람직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이 되어라
공자가 맹자에게 한 말로
정법 스님의 법문이 시작되고
무소유의 산과 바람 앞에
언제나 나무와 햇빛 속으로
찾아온 중생을 두들긴다.
철로 만든 상자 속 부처님의
가슴 속에서 부르고 또 불러온
갈고리로 긁어 법문을 고른다.
-시 <고현산 불광사(佛光寺)> 전문
자갈돌 하나 주워
계곡 따라 흘러가는 물 위에 던지니
풍덩 하고 물속으로 곤두박질한다
일렁이는 물속에서 해가 차올라
맑고 밝은 세상 만들어
해같이 둥글게 살라 한다
산사의 법당에서 두들기는 목탁소리
법륜(法輪) 따라 온갖 탐욕(貪慾) 다 버린 채
똑똑 뚜루룩 모든 근심마저.
-시 <비움> 전문
인간이 되어라. 무소유의 산과 바람 앞에 언제나 나무와 햇빛 속으로. 가슴 속으로 부르고 또 불러온……, 이와 같이 비움의 예비적 단계를 거쳐 일렁이는 물 속에서 해가 차올라 맑고 밝은 세상 만들어 해 같이 둥글게 살라 한다로 비움의 자세를 확립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언급한 작품은 시집에 실린 전체 작품 중 극히 일부분이지만 대체로 홍종기 시의 경향성을 보여주는 척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시인의 자기 세계란 평생을 두고 천착해 나가는 끝없는 고뇌의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시인이기 때문에 기꺼이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 시인의 앞날은 무한이 열려 있으며 그 가능성 또한 무한대의 지평에 놓여 있다. 더 넓은 시의 세계로 이어가기 위하여 부단한 자기 수련과 노력이 따라야 할 것이며, 그렇게 되리라는 확신을 갖는다.
★시집에 부쳐
/박세문(창작과 의식 발행인, 詩人)
홍종기 선생님의 시집 『어머니의 江』을 발간하는 과정도 중요하다 보겠지만 무엇보다 선생님과의 인연이 더 깊음을 준다. 그러니까, 햇수로 따지자면 10년 정도의 정이 묻은 것이다. 문우로 시작된 것보다는 사회의 선배로서 형님 같은 존재로서, 나아가서는 부모 같은 마음으로 듬직했던 것이다. 이러한 부분을 본다면 감히 해설을 맡음이란 건방지기도 한 느낌이기에 축하의 메시지를 전하고픈 마음이다. 특히, 문학적 소양으로 산문과 운문은 물론이지만 평론 부분까지 몸에 익어버린 것이기에 미흡한 일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하지 않을 수 없다.
작품 120편 정도를 일독하면서 첫째, 시인의 인생길에서 험난함은 물론 부모님에 대한 효도와 가족애에 의미부여를 은유적 표출이 강하다는 것이며 둘째, 산이나 계곡 등지를 쉽게 다닌 것으로 보일 뿐 시인의 혜안으로 담아놓은 서정적 표현이 그렇다. 그리고 셋째, 시인이 거주하는 곳은 거제도다. 그래서인가, 삶에 뱃길에 갈리는 바다를 자주 접한다. 이러한 체험적인 요소들을 크거나 작거나 감동을 자아내는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는 작품들이다. 이에 맞춰서 계절의 변화하는 과정과 이에 시인은 몸과 마음이 쇠약해짐에 따라 고향으로 돌아옴을 화자 스스로 느낌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시인의 작품세계인 것이다. 특히, 어느 군소작가의 글귀에 흉내 내지는 표절 등으로 일관하지 않는 설령 조금 미숙하더라도 나만의 작품을 고집한다는 게 획기적일 수도 있다. 이것이 소위 '순수' 그 자체라 보겠다.
꽁꽁 얼어붙은 어머니의 강 위
동태가 된 바지가 빨래 방망이질에 뼈를 녹이고
얼음 아래 물속에서 흐느적거리다 간신히 물 밖으로 기어올라
주섬주섬 주워담은 함지 안에서 뻣뻣하게 걸어간다
거머리에 물려 종아리 타고 내리는 피같이
함지 붙든 어머니 손 선혈 흐른다
인리(隣里) 들을 지나 향리(鄕里) 가운데
호박 샘을 돌아 산 중턱 대나무밭 속 내 집
어머니는 바쁘게 부엌 아궁이에 군불을 지핀다.
오늘은 따뜻하게 잘 수 있으려나 보다
동생이 덜덜 떨며 두꺼운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눈만 껌벅거리고 있다
하늘 속 하얀 뭉게구름 덮고
여름날 쨍쨍 내리쬐는 그 따가운 햇볕을 아랫목에 깔고
겨울을 보낸 시간 속 밤을 얼마나 지새웠던가?
배고픔과 추위가 허탈(虛脫)하게 하는데
어머니는 늘 바람과 싸웠다
어머니의 강(江)에서
- 작품『어머니의 江』전문 -
표제의 작품을 낭송 해보면, 어느 어머니든 마찬가지겠지만 홍종기 시인의 어머니 사랑은 별다른 헌신이다. -동태가 된 바지가 빨래 방망이질에 뼈를 녹이고-에서 보다시피 '뼈를 녹인다.'라는 것은 얼어붙은 바지의 으깨짐이 곧 어머니의 뼈를 깎음이라 보겠다. 그리고 긴 겨울 속에서 허기진 배를 움켜쥔 세월을 작품에서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다는 것은 작품 마지막 연, -어머니는 늘 바람과 싸웠다/어머님의 강(江)에서-에서 알 수 있다. 궁극적으로 자기희생이 전제된 어머니의 사랑이 시인에겐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 주었는가 하면 정신적 이상세계로서 채워주며 안아주고, 그래서 이젠 거름이 되고 손과 발이 되어 준 결정적인 요소라 보겠다.
다리난간을 잡고 내려다보는
강물 속 잔주름 진 자화상
고요하다, 유유자적(悠悠自適) 그 자체다
뒤벼리 깎아지른 큰 바위 변함없고
강을 끼고 도는 성벽 따라 우뚝 서 있는
촉석루 또한, 그대로다
잡목 우거진 숲 속에 숨어있는 서장대
아지랑이처럼 멀리 가물거리는 그곳엔
나팔 들고 밤의 정적을 깨트리던 소리가 있다
망진산 꼭대기에 올라앉은 철탑
과거를 밟고 흐르는 강물을 굽어보니
강물에 어른거리는 이정표, 갈 길 재촉한다
- 작품 『유유자적(悠悠自適)』전문 -
시인의 고향은 진주다. 가끔 고향을 찾는 발길의 흔적이 나타나 있는 작품『유유자적(悠悠自適)』은 '속세를 떠나 아무 속박 없이 조용하고 편안하게 삶'을 뜻하는 작품으로 시인은 이제 몸과 마음이 많이 쇠약해 있음을 엿본다. 동물적인 습성이라고 할까, 생의 마지막에는 고향을 찾는 게 생리이기도 하다. 작품 1연 2행, -강물 속 잔주름 진 자화상-은 곧 시인의 육신은 육신대로 삶의 흔적을 비춰본 결과라 보겠다. '촉석루', '서장대', ‘망진산’등은 진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지명이기도 한 곳이다. 보충설명을 하자면 왜장을 끌어안고 강물로 뛰어든 명기로 유명한 '논개'의 터 이기도 하다. 모든 게 변함없건만 - 강물에 어른거리는 이정표, 갈 길 재촉한다. -는 마지막 연에서 인생의 허무마저 주고 있음을 직감해 본다. 여기서 시인의 특이한 기법은 본대로 적되, 무언가에 빗대어 보는 자신만의 창작이라 보겠다. 무엇보다 쉽게 쓰인 글귀에서 독자에게 근접하는 데 성공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이 수사학적인 기교보다 단순하면서 꾸미지 않은 진실이라 보겠다.
이상에서 많은 작품을 살펴본바, 인간의 삶이란 사랑 없이 아무것도 존재가치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과 현재와 미래를 오가며 운명적인 세계관으로 치부함과 그렇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아무쪼록 시인의 작품 속에 투영된 사랑이나 그리움, 그리고 그 삶에 대한 진실의 정서가 독자의 가슴을 활짝 열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아울러 한 가지 더 부탁을 하자면, 올곧은 진실성을 이젠 쉬엄쉬엄 후배양성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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