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 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 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 집니다.
그러나, 이별은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 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 한용운의 삶과 작품***
지조와 정절로 민족의 정기를 지킨 승려 시인
만해(萬海 . 卍海) 한용운(韓龍雲, 1879 ~ 1944)은 1879년 충청 남도 홍성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유교적인 가정 교육을 받았으며 서당에서는 한학을 배웠다. 1894년 동학 농민 운동 때는 어린 나이로 참여했으나, 운동이 성공하지 못하자 집을 떠나 설악산 오세암에 들어갔다. 그 뒤 1905년에 다시 설악산 백담사에 들어가 승려가 되면서, 정옥(貞玉)이란 본명을 버리고 용운(龍雲)이란 법명(法名)을 받았다.
외국의 새로운 문물이 들어오고 나라를 일본에 빼앗겼던 1910년 전후에 한용운은 일본에 가서 신문명을 직접 보고 만주와 시베리아 등지를 돌아다니며 독립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1913년에 귀국한 한용운은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을 펴내면서 불교의 개혁과 부흥을 주장하는 한편, 불교의 대중화를 위해 <불교대전(佛敎大典)>을 쓰고 여러 곳에서 불교의 교리를 가르쳤다. 이 밖에도 불교 관련 잡지를 발간하면서 많은 글을 발표하는 등, 종교 지도자로서 불교의 역할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한용운은 불교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시인, 그리고 독립 운동가로서 평생을 살아갔다. 1919년에는 3.1 운동의 민족 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참여하여, 독립 선언서에 서명하고 체포되어 옥에 갇혀 있다가 나왔다. 그는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이 쓴 독립 선언서의 내용을 교정하고, 그 말미에 만세 운동의 행동 강령인 공약 삼장(公約三章)을 집어넣었다. 그는 일제하에서 '일본식 성명 강요(창씨 개명)'와 학병 출정에 끝까지 반대하는 등, 추호의 타협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뜻을 펴 나갔다. 또 1927년에는 항일 독립 운동 단체인 신간회에 가입하여 경성 지회장을 맡아 일하면서 우리 사회 지도자의 한 사람이 되었다.
한용운이 일본 제국주의에 대해 얼마나 큰 적개심을 가졌는지를 보여 주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그는 평생을 청빈하게 살아와 나이가 들어서도 변변한 집 한 칸이 없었다. 그래서 주변의 몇몇 사람이 돈을 모아 집을 짓기로 했는데, 그 곳은 남쪽 방향으로 조선 총독부가 바로 보이는 위치였다. 그러자 한용운은 '겨울에 춥고 여름에 덥더라도 총독부의 반대 방향인 북향으로 집을 앉히겠다'고 고집하여 결국 그대로 집을 지었다. 한용운은 그야말로 지조와 정절로 민족의 정기를 지킨 독립 운동가였다.
한용운이 시인으로서 우리 문학사에 확고하게 자라를 잡게 된 것은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내면서부터이다. 이 시집에는 같은 제목의 시 <님의 침묵>을 비롯해 <알 수 없어요> <비밀>
<첫 키스> <님의 얼굴> 등 그의 초기 작품이 모두 들어 있다. 그는 불교적인 비유와 수준 높은 상징 수법의 시를 통해서, 일본의 압제하에 신음하고 있던 중생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이렇듯 시집 <님의 침묵>은 사상과 예술면에서 수준 높은 경지에 올라 있어, 한용운은 우리의 시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가가 되었다.
한용운의 작품에서 가장 많이 논의되는 것은 '님'이다. 한용운의 '님'은 한 가지로 고정되어 있는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부처'이기도 하고 구제받아야 할 '중생'이기도 하며 , 구해 내야 할 '조국'이기도 하다. 또 진실한 '자아'를 뜻하기도 하고, '이성(異性)의 연인'이 되기도 한다. 또 그것은 각각의 다른 개념이 아니라 모두 한 덩어리이다. 마치 한용운이 승려이자 시인이며 독립 운동가인 것처럼, '님'은 위에서 말한 '모든 절대적인 존재'를 뜻하는 개념인 것이다.
한용운은 문단의 작가들과는 별다른 교류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에서는 다른 시인들의 작품에서 흔히 보이는 기교가 나타나지 않으며,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쉬운 말과 인생과 나라와 민족에 대한 수준 높은 사색의 결과를 표현했다. 그리하여 한용운의 시는 '가장 높고 깊고 넓은 인간성을 표현한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으며, 그는 '3.1 운동이 낳은 최대의 시민 시인'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한용운은 말년에 불교계의 항일 비밀 결사 단체인 만당(卍黨)의 영수로 추대되어 독립을 위해 일했으나, 끝내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한 채 1944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문학 > 문학의 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이광수-무정 (0) | 2007.06.16 |
---|---|
이매창 그는 누구인가 (0) | 2007.06.14 |
[스크랩] 황진이의 시 (0) | 2007.06.12 |
[스크랩] 혼자서 / 헤르만 헤세 (0) | 2007.06.12 |
[스크랩] 행복 / 유치환 (0) | 2007.0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