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전집 23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1』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 안삼환 옮김 / 민음사 / 1999년
괴테의 교양소설. 예술 일반의 영역에서 작품이라는 것을 만들어내는 이들이라면 한번쯤 해보게 되는 숱한 고민들. 한 인간의 성장에서 있어서 고민들이 어떤 식으로 제시되고, 어떤 식으로 해소되는지를 보여주고 있지만, 이게 한두 줄로 서술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장황한 논의를 수반하게 된다. 빌헬름의 경우에는 연극이라는 영역에서 고민들이 제시되는데, 극단이라는 무대가 있고, 연극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부딪히게 되는 여러 가지 담론들은, 그 해법에 대한 제시보다는 함께 고민할 것을 요구한다. 셰익스피어를 번역하고, 무대에 올리기 위해 독일이라는 무대에 올리기 위해 번역하고, 무대 현실에 맞추기 위해 작품을 분석하고, 독일관객의 특성을 고려하여 간추리기도 하는 등의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번역은 무엇이어야 하고, 연출은 무엇이어야 하고, 배역을 맡기는 과정에서 캐릭터는 어떠해야 하고, 관객의 역할은 어떠한 것인가, 하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무대 밖에서 한 개인으로써 삶의 문제에 이르기도 하고.
실은 저라는 인간이 아직 풋내기 학생처럼 세상을 너무 모른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기에 저도 이따금 괴롭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저는 어릴 적부터 제 정신의 눈을 외부 세계로보다는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도록 해왔습니다. 그 결과 제가 인간 일반을 일정한 정도까지는 알지만, 개개의 인간들을 이해하고 파악하는 데에는 전혀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노릇입니다. (393쪽, 빌헬름)
요 몇 년 동안 어떠한 상황에 이르면 종종 내뱉게 되는 말이 있었는데, “세상 물정을 너무 몰라서”라는 것이었다. 이건 남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는데, 이상하게 자괴감을 불러일으키는 힘을 지닌 말이었다. 이 말을 내뱉고 나서 돌아서는 길은 매번, 나 자신이 어딘지 모자란 것 같은 불쾌한 기분에 빠져들게 되는데, 몹쓸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어찌하는 수가 없다. ‘세상 물정’이라는 것은 내가 가꿔내는 삶의 속도와는 확실히 다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고, 그것을 따라잡을 만한 여유가 내게는 없었다. 그러니 이런 답 없는 고민에 휘말리게 되면, 이쯤에서 그만 콱, 포기해 버릴까 싶은 생각도 들게 되는, 아주 몹쓸 말이다. 이 몹쓸 고민을 빌헬름도 하고 있었고, 그런 빌헬름에게는 아우렐리에가 있어서,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네주기도 한다.
만약 당신이 예술가가 되실 운명이라면, 당신은 이 어두운 순진성을 오래 간직하실수록 좋습니다. 그것은 어린 꽃봉오리를 덮고 있는 아름다운 껍질이니까요. 너무 일찍 피어나는 것만큼 큰 불행이 없지요. (393~394쪽, 아우렐리에)
그렇다. 세상 물정이라는 기준으로, 그 물정이라는 것을 잘 따라가면서 어느 정도는 세련되어 보이는 것 같으면서도 그 세련됨에 나 자신이 비교되어 자괴감에 빠지게 하는 잘난 친구가 있는가 하면, 오히려 자신의 세련됨에도 불구하고 ‘이 어두운 순진성’을 자신이 지니지 못한 특질로 보아주는 친구도 있게 마련인 거다. 이 양극을 오가다 보면 뭐라도 피어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