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문학의 향기

슬픔 / 무라카미 하루키

맑은물56 2014. 8. 26. 12:34

 

슬  픔

 

 

깊디 깊은 슬픔에는
눈물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조차 없다.

나는 슬픔을 견딜수 없어서
소리를 내어 울고 싶었다.
하지만 울 수가 없었다.
눈물을 흘리기에는
너무나 나이를 먹었고,
너무나 많은 일들을 경험했다.
이 세계에는 눈물조차도 흘릴 수 없는
슬픔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깊은 슬픔이
눈물마저도 빼앗아 가고 마는 것이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고,
혹시라도 설명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것들이다.
그런 슬픔은
다른 어떤 형태로도 바뀌어지지 않고,
다만 한줄기 바람도 불어오지 않는 밤에
내리는 눈처럼
그냥 마음에 조용히 쌓여가는
그런 애달픈 것이다.

조용히 쌓이는 눈은 슬프다.

지금보다 훨씬 젊었을 때,
나는 그런 슬픔을
어떻게 해서든지
언어로 표현해 보려고 시도했었다.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아무에게도 전달할 수 없었고,
심지어 나자신에게 조차도
전할 수 없어서
그만 단념하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나의 언어를 폐쇄시키고
나의 마음을 굳게 닫아 버렸다.

- 무라카미 하루키 <한없이 슬프고 외로운 영혼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