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 한용운(1879~1944)선생이 생애 말년 11년을 지내고 , 입적한 곳으로 알려진 심우장(尋牛莊).
심우장은 서울 성북동 명소탐방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 중에 하나입니다.
이곳은 지난 1984년에 서울시 기념물 제 7호로 지정된 곳이기도 합니다.
심우장은 만해 한용운선생이 조선총독부 청사를 마주보기 싫어 북향(北向)집이 되었다는 일화를 간직한 집입니다.
성북동 대로변을 따라 덕수학교 방면으로 올라가다 안내표지판을 발견하고 왼쪽 경사진 골목길로 오르다보면,
북향으로 마주하고 있는 단촐한 한옥을 만나게 됩니다.
산동네를 연상하게 하는 굽이 진 골목길가에 깔끔하게 단장된 심우장은 성북동 일대를 내려다 보는 지세에 놓여있습니다.
심우장이 세워질 당시에는 소나무 숲으로 우거진 송림이었다고 하지만 , 현재는 가옥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전형적인 산동네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
‘심우장(尋牛莊)’이란 뜻은 무상대도를 깨치기 위한 집, 늘 공부하는 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만해는 유마경을 번역하고 신문, 잡지 등에 왕성한 집필활동을 펼쳤습니다.
여기서 ‘심우(尋牛)’는 선(禪) 수행의 단계를 소와 목동에 비유하여 열폭의 그림으로 나타낸 심우도의 첫 번째 그림입니다.
소를 찾는 동자가 산 속을 헤매는 모습을 ‘초발심의 단계’에 비유한 내용의 그림입니다.
심우장은 소나무 숲에 숨은 산방이었는데 매우 한적하고 당시 만해의 생활은 청빈했다고 합니다.
당시 정원에는 많은 화초를 심었고 향나무도 심었는데 만해가 직접 심었다는 향나무가 현재까지 마당 모퉁이에 남아 있습니다.
당시엔 송림(松林)이었지만 현재는 수령이 오래된 소나무 두 그루 만이 심우장을 지키고 서 있는 모습은 ,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합니다.
성북동 대로변에서 심우장 가는 골목길 입구
심우장 입구
서재로 활용된 심우장
대청에 마련된 전시공간
만해 한용운 선생이 남긴 오도송
1933년에 지어진 한옥은 단층 팔작기와지붕 구조입니다.
전체적인 건물의 형태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역 ‘ㄴ’자형 평면입니다.
중앙에 대청 2칸을 두고 정면에서 왼쪽인 동쪽에는 서재로 쓰던 온돌방(심우장, 서재) 한 칸을 둔 구조입니다.
오른쪽으론 부엌 한 칸이 있고 부엌에서 남쪽으로 꺽여나간 곳에 찬마루 1칸을 두었습니다.
대청과 온돌방은 반자틀 천장이고 부엌과 찬마루 사이에는 벽이 없이 그대로 트인 상태입니다.
삿갓천장으로 마감해 서까래를 노출시켰습니다.
대청과 부엌 북쪽으로는 창문을 단 툇마루를 두었고 , 온돌방의 북쪽에서 동쪽과 남쪽으로 돌아가는 대청 남쪽과 찬마루 동쪽으로는 쪽마루를 놓았습니다.
온돌방 남쪽 뒷마당에는 굴뚝이 서 있습니다.
정면에서 바라본 심우장과 대청마루
서재로 쓰인 심우장과 뒷마당에 놓인 굴뚝
한옥 남쪽 뒷마당
부엌과 찬마루
대청마루에서 바라보이는, 마당 한 모퉁이에 서 있는 만해 한용운 선생이 심었다는 향나무
만해 한용운 선생과 함께 한 수령 90년 된 소나무
심우장을 둘러보니 문득, 인도 마하트마 간디가 생애 마지막 144일을 지내고 마지막 숨을 거두었던 집이 , 현재는 박물관으로 보존된 곳(Gandhi Smriti Museum)을 떠오르게 합니다.
법정스님이 쓴 <인도기행>에 소개되었던 간디의 검소한 생활상이 기억되었기 때문입니다.
생전에 간디가 거처하던 방은 수도승의 거처보다 훨씬 간소했다고 합니다.
베개, 염주와 조그만 기타, 힌두 성전인 <바가바드기타>, 기댈 수 있는 부대, 간소한 책상, 물레 , 출입문 쪽에 세워 둔 대지팡이 하나,그가 신던 샌들 두 켤레, 책상 위에 눈과 입, 귀를 막고 있는 세 마리 원숭이가 있는 장난감 하나. 이것이 생전에 간디가 지녔던 소유물의 전부였다고 합니다.
단촐한 한옥구조로 이루어진 심우장은 불필요한 공간없이 오롯이 자리한 모습이었습니다.
마하트마 간디처럼 민족의 독립을 위해 투신하며 청빈한 삶을 누렸던 , 만해 한용운 선생의 말년을 엿보는 느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