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5.24 03:04
벼루를 닦으며
어느 불구덩이에서 용암이 흘러
이 많은 물결을 타고
다듬어진 돌이겠느냐
소(疏)를 올리던 서릿발 같은 마음이
돌에 갈려 패여졌거니
누더기져 검게 풀리는 먹물은
바로 역사의 찌꺼기구나
썩고 무너지던 왕조에서도
먹을 갈아서 한지를 적시던 곧은 뜻은
살아서 돌에 배어서
이 풀리는 물소리에 들려오거니
문득 눈을 들어 나는 말하겠네
오늘도 썩지 않는 마음
온전한 자유 하나를.
―이근배(1940~ )
붓을 들어 문장을 쓰는 시대는 아니다. 먹을 갈며 마음을 가지런히 하고 분(憤)과 기쁨을 벼리는 시대도 아니다. 이제 우리 시민들의 지극히 일부에서만 붓을 붙잡고 힘을 길러 글자를 새기듯 쓴다. 일천한 경험이지만 그렇게 글씨에 정신을 모으고 손의 힘도 기르다 보면 글자의 의미와 아름다움이 또렷하게 정신에 새겨지게 된다. 반듯하고도 기우뚱한 그 어디쯤에서, 빠르다가도 다시 더듬거리는 그 어느 휘어짐에서 인생의 굴곡이, 호흡이, 아름다움이 어떠한지 함께 받아들이게 된다.
어느 날 벼루를 하나 장만하여 들여다보니 저 수수만 년 이전, 역사 저편의 시간이 거기 눈을 뜨고 있다. 목숨을 내놓고 상소문을 새기던 충신의 문장이 또한 이 작은 돌의 골짜기에는 숨어 있다. 그뿐이랴, 꽃그늘 아래 내력 깊은 풍류의 그림자도 어른거린다. 간신의 달콤한 말솜씨가 아닌 충신의 쓰디쓴 문장이 여전히 인간의 자유며 온전한 자유라고 벼루는, 영원에 닿아 있는 돌의 담담한 위력으로 말해주고 있다. (사족이지만 어린 시절 먹 글씨를 조금씩만 가르쳐도 인성교육은 저절로 해결될 줄로 안다. 교육 당국자들은 그걸 모르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