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학생 “장난이었다”
심리치료뿐 대책 없어
상습 폭행에 속앓이만
[천지일보=김예슬·장수경 기자] 학교폭력을 견디다 못해 대구에서 중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200여 일이 지난 가운데 경북 영주에서 비슷한 이유로 중학생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 16일 오전 9시 32분경 중학교 2학년 A군은 ‘내가 죽으려는 이유는 학교폭력 때문이다’라는 내용을 담은 유서를 남긴 채 경북 영주시 휴전동 B아파트에서 투신자살했다.
A군이 연필로 작성한 A4용지 1장 분량의 유서는 음성적 학교폭력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A군은 자신의 유서 첫머리에 “2012년 4월 15일에 이 유언장을 쓴다”면서 “나는 왕따를 당하지 않는다. 친구도 있다. 내가 죽으려는 이유는 우리 반에 있는 B란 놈 때문이다”면서 괴롭힌 친구의 실명을 거론했다.
A군은 유서를 통해 “그 자식은 게이다. 뒤에서 얼굴을 만지고 뽀뽀했다. 몸에 침 묻히는 것이 더럽고 싫었다. 그 녀석은 내 뒤에 앉았는데 교실에서 매일같이 나를 괴롭혔다. 최근에는 ‘단(서클)’에 가입하라고 했다”라면서 학교폭력에 시달렸으나 헤어나올 수 없어 괴로웠던 심경을 내비쳤다.
한편 A군은 이날 오전 친구에게 “오늘 늦겠다. 학교에 얘기 좀 해 달라”는 내용을 담은 마지막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이 군은 이날도 부모에게 학교에 간다며 평소처럼 집을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학교 측에 따르면 A군은 지난해 5월 교육청이 실시한 정서행동발달검사에서 ‘우울’ 등 일부 항목에서 일반 학생보다 지수가 높게 나와 심층검사를 했다.
이후 학교 측은 이 사실을 부모에게 알리고 8회에 걸쳐 심리치료를 실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군의 유서에 언급된 가해 학생 2명을 조사했으나 이들은 “교실에서 끌어안고 뽀뽀하고, 미술시간에 붓으로 물을 튀기는 등 이 군을 괴롭힌 적이 있다”고 일부 혐의는 인정했으나 “장난으로 한 것”이라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17일 중 부검결과를 받아 본 뒤 이후 다른 학생을 상대로 추가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이번 A군의 자살사건은 정부가 학교폭력 종합대책을 발표한 지 2개월도 안 돼 발생한 것이어서 학교폭력 대책의 실효성을 두고 학부모와 전문가들이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중학교 3학년에 다니는 아들을 둔 박희정(49, 여, 서울시 은평구 불광동) 씨는 “아들 말로는 경찰이 학교에 와서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경찰에 신고하면 된다’고 교육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아이들은 경찰을 전혀 신뢰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나마 아이들이 믿는 것은 교사인데 교사조차도 학교폭력에 대한 책임감이 없다. ‘경찰의 의무’라고만 생각하고 학교폭력에 손 놓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최미숙 학교를사랑하는학부모모임 상임대표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학교와 정부의 관심은 일시적”이라며 현 학교폭력 방재 대책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최 대표는 “정부에서 많은 대책이 쏟아져 나와도 학교현장에 정착되지 않는다면 상황은 똑같다”면서 “교사들도 정부의 대책과 맞물려 아이들과 마음을 함께할 수 있는 실질적인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