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찾아서/ 이영성
어둠 속을 헤맸다
반짝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어둠은 너무 견고했다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지쳐 주저앉고 말았다
누가 윽박지르듯 소리쳤다
일어서! 일어서지 못해?
나는 마지못해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러나 한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나는 두 손을 입에 대고 마구 소리질렀다
여보세요! 제발, 제발 좀 도와주세요!
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두려움이 밀려왔다
나는 손을 뻗어 어둠 속을 휘저었다
잡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빛은 모두 죽어버렸다
하늘에 뜬 그믐달이 조용하다
- 네이버 블로그 <숨바꼭질>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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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과적 질환인지 외과적 처방을 받아야할지 분별 안 되는 통증 하나가 돌연 몸 안으로 들어왔다. 왼쪽 겨드랑이에서 등 쪽으로 이동하는 부위의 기분 나쁜 욱신거림. 이럴 때 내가 소망하는 것은 돈도 여자도 민족의 통일과 번영은 더구나 아닌 치사한 내 한 몸의 안위. 이즈음 모든 것이 조금씩 두렵기 시작한다. 마주 달려오는 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대책 없이 꼬여가는 일과 삐걱거리는 내 의자의 마찰음이 두렵다. 사람들을 내 삶의 금 밖으로 하나 둘 몰아내므로 생을 스스로 난처하게 하고 어머니의 입 벌리고 자는 모습이 가득 무섭다. 화장실 변기 위의 공상이 두렵고 느닷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깜짝깜짝 놀란다. 베개를 가랑이에 끼고 자는 잠버릇이 슬퍼지며 뒤돌아보지 마, 곧장 앞만 보고 가라고 했지! 누군가의 협박에 가위눌려 잠이 깬 새벽 세시가 두렵다' 이상은 5년 전 '오십견'이란 불청객이 내게 찾아왔을 때 끼적였던 단상이자 '쉰 마리의 개'라는 제목을 붙인 내 졸시이다.
대체로 사람은 현안의 내 손톱 밑 가시로 인한 고통이 남의 팔 잘린 고통보다 더 참을 수 없어하고 아파한다. 그렇지만 남의 고통에 앞서 내 아픔을 먼저 돌아본다고 부끄러워하거나 스스로를 이기적이라 책망할 것까지는 없다. 우리들이 겪는 생의 힘들고 기막힌 아픔은 누구든지 모양과 색깔만 좀 다를 뿐, 다 겪고 있고 가슴에 품으면서 살아간다. 산다는 것은 빛과 그림자처럼 어느 한 면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나보다 사정이 나은 이도 수없이 많지만 나보다 더 힘들고 고통 받는 사람도 많다. 우리는 다만 그들과 같은 하늘아래서 그리고 빛과 그늘 아래서 함께 살아갈 뿐이다.
빛을 찾아서 어둠 속을 헤매지만 빛을 발견하거나 답을 손에 움켜쥐는 일이란 좀처럼 드물다. 꿈속에서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어둠 속을 휘젓다가 가위 눌려 눈을 뜨면 뿌연 안개 같은 현실만 기다릴 뿐이다. 이영성 시인은 등단절차를 거치진 않았으나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30년 가까이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쳐왔으며 전공서적과 칼럼집을 펴낸 바도 있다. 그리고 오랫동안 '연합통신'에 근무하면서 인사부장과 괸리국장을 거쳤고 지금은 '뉴스통신진흥회'에서 사무국장 일을 맡고 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일견 양지에서의 다복한 삶을 누린 분이라 할만하다.
하지만 그에겐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말하고, 의지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비또'라는 아들이 하나 있다. 30년간 그의 아내는 아들의 병 뒷바라지로 청춘을 다 보냈고, 그들 부부는 “하느님, 많은 걸 바라지 않습니다. 비또가 엄마아빠를 부르는 소리라도 듣고 싶습니다"라며 간절한 기도를 끊임없이 해왔다. 그럼에도 그 빛은 보이지 않았다. 손을 잡아주지 않는 하느님에게 원망도 퍼부었다. 그러나 지금은 하늘에 뜬 조용한 그믐달을 바라보며 스스로 이기심에서 벗어나 매사에 감사한 마음과 진정한 사랑,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깨달았다고 한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인류의 죄악은 <자기중심성>에 있다’라고 했지만 그는 비로소 인류의 해묵은 죄악에서 탈피하여 진정한 구원과 평화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비또에게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권순진
Be - Neil Diam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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