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나를 찾아 가는 길

인과법과 인연법

맑은물56 2011. 9. 5. 15:02

139. 과학의 원리라 하는 것은 이른바 인과율(因果律)이며 이 인과율을 떠나서는 과학은 성립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부처님 가르침은 철두철미 인과적입니다. 다만 인과뿐만 아니라 보다 더 광범위하여 이른바 인연법(因緣法)이란 말입니다. 어느 것도 두두물물(頭頭物物) 모두가 다, 우리 인생이나 자연계나 모두가 다 부처님의 인연법이라 하는 그 범주에 안 들어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일체 존재가 인연생(因緣生) 인연멸(因緣滅)이라, 인연 따라서 이루어지고 동시에 인연 따라서 멸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너무나 소박하지 않은가, 너무나 간단하지 않은가. 그러나 이 간단한 것 가운데 우주의 모든 섭리가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인연법을 말씀을 드릴 때는 여러분들께서는 보통 방편적인 인연법과 부처님 법 그대로 에누리 없는 진실적인 인연법과의 차이와 한계를 느끼셔야 합니다. 그럼 방편적인 인연법은 어떤 것인가? 앞에서 제가 언급한 바와 같이 이것은 우리가 그냥 이것과 저것과 합해서 무엇이 된다, 인연 따라서 무엇이 이루어지고 인연 따라서 이제 소멸이 된다, 이런 정도의 말입니다. 상식적으로 보통 불교 인연법을 말하는 그런 정도, 이것은 방편적인 인연법입니다. 그러나 조금 더 탐구력이 더 확실한 분들은 이것과 저것이 인연 따라서 무엇으로 이루어진다면 그 인(因)의 최초(最初)의 원인은 무엇인가, 이렇게 이런 분야에 대해서 의심을 가질 수가 있지요.


최초의 원인은 무엇인가 말입니다. 칸트의 말로 하면 물 자체, 존재 자체는 무엇인가, 존재의 근원은 무엇인가, 이런 데까지 우리가 생각을 안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진실한 인연법 이것은 그러한 근본적인 본질 자체, 존재 자체를 밝히는 인연법입니다. 그러면 존재 자체를 불교 말로 하면 어떻게 말하는 것인가? 이것이 여러분들이 익히 아시는 바와 같이 진여불성입니다. 진여(眞如)라 하면은 진리이기 때문에 진여인 것이고, 또는 우주의 진리와 똑같기 때문에 진여인 것이고, 또 일체 우주의 생명자체(生命自體)이기 때문에 부처님 성품, 바로 불성(佛性)이란 말입니다. 그냥 이것저것이 그때그때 합해 가지고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진여불성이라 하는 우주의 참다운 실상(實相)이 있어 가지고서 실상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셔야 그래야 이제 상식적인 또는 방편적인 인연법이 아니라 방편을 떠나버린 진실한 인연법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대승적(大乘的)인 인연법이란 말입니다. 우리 젊은 불자님들은 그와 같이 인연법에 대해서 그렇게 진실적인 인연법을 확실히 파악해 두셔야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불교의 모든 것이 불교 철학이나 불교의 종교적인 요소나 우리 실행적인 실천 문제나 모두가 다 인연법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연법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그 인연법을 단순히 소박한 인연법,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렇게 저렇게 합해서 무엇이 되고, 연이 다 하면 그때는 헤어지고 소멸이 된다는, 이런 정도로 해서는 깊은 철학이 될 수가 없고 또는 다른 철학 체계도 설명을 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다른 종교나 다른 학설과의 차이도 제대로 설명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꼭 말씀하시고자 하였던 인연법 이것은 방금 제가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주라 하는 것은 그 근본 원인이, 일체 존재의 근본 원인이 바로 진여불성이란 말입니다. 우주의 참다운 도리이기 때문에 진여, 진리라고 하는 것이고, 또는 그 자리가 바로 인생과 우주의 모든 존재의 근본 생명이기 때문에 부처 불(佛)자, 성품 성(性)자, 불성(佛性)이라 그러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여불성의 이 자리가 항상 그대로 영생불멸하게 항존(恒存)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다 아시는 불생불멸이라, 낳지 않고 죽지 않는다는 이런 도리도 방편적 인연법으로 해서는 그때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진실한 인연법으로 해서는 "아 모든 존재의 원인이, 바로 소멸이 없고 변동이 없는 진여불성이기 때문에 이 자리가 불생불멸이구나" 이렇게 알 수가 있겠지요. 요한복음서 8장을 보면 이런 대목이 있어서 저도 하도 불교하고 가깝고 좋은 대목이어서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바리세인(Pharisees)들이 하도 공격을 하고 또한 여러 가지로 시달림을 주니까 예수가 이제 바리세인들에게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사람들은 어두움 속에서 헤매지 않고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느니라!" 이런 말씀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르세인들이 이제 그에 대해서 예수한테 힐난을 하고 반문을 했단 말입니다. 당신은 당신 스스로를 당신이 빛이라고 주장을 하고 있으니 그런 주장은 참다운 증명이 못된다고 이렇게 항의를 했습니다.


그때에 예수가 하는 말이 "바리세인 그대들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다.  또 그대들의 말은 그대들의 지은바 행위에 따라서 십인십색(十人十色)으로, 김이라는 사람은 김이라는 주관에 따라서 말할 것이고 또 박이라는 사람도 자기 주관에 따라서 말할 것이고, 그대들은 그대들이 지은바 그런 행위에 따라서 판단도 하고 또는 여러 가지 말도 하고 하지만, 나는 내가 나 혼자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주(主) 하나님과 더불어서 내가 말도 하고 행동도 한다. 나는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고, 그리고 내 말이나 내 행동이나 이 모든 것은 내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적인 그 진리 자체를 행하고 있을 뿐이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바로 진리 자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진리 자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디엔가 인격적으로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그렇게 알고 있다면 누가 얘기하던지 간에 기독교를 잘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우주의 진리란 말입니다. 이와 같이 성자라 하는 것은 그냥 자기 멋대로 자기가 금생(今生)에 배운 상대 유한적(相對有限的)인 지식을 가지고서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무가정(無假定)의 원리(原理)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 중생들이 가사, 백 사람들이 다 옳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진리가 아닐 때는 옳지가 않단 말입니다. 백 사람들이 반대하고 다만 한 사람만 옳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영원적인 진리와 더불어서 있다고 생각할 때는 그 사람 견해가 옳은 것입니다.


가사 우리가 수학을 풀이한다면, 상당히 난해한 고등 수학을 중학생이나 또는 국민 학생이 풀 수가 있습니까. 그러나 수학적으로 수련을 받은 고학력으로 올라간 사람들은 풀 수가 있겠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진리 이것은 그냥 누구나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알기는 어렵단 말입니다. 그러므로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 낳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은 이런 자리를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이것은 부처님 가르침 이외에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