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나를 찾아 가는 길

[스크랩] 위빠사나 수행의 길 210~254쪽

맑은물56 2011. 8. 22. 14:38

 

 

30. 지혜-분명한 앎 ①

 

지난 법문 시간에 사마타의 힘으로 다섯 가지 덮개를 막는 것에 대해 설명했고, 지혜에 의한 정신적인 활력을 갖추어야만 이 덮개들을 제대로 막을 수 있음도 설명했습니다. 사마타[止]는 번뇌를 가라앉히고 위빠사나[觀]는 홀로 굳건히 서게 해줍니다.

감각대상이 나타날 때마다 제대로, 끊임없이, 흔들림없이 알아차려 나가면 바른 노력, 바른 마음챙김, 바른 마음집중이 바로 이 알아차리는 순간에 수반됩니다. 이 세 가지의 사마타의 길을 갖추고 있으면 번뇌를 가라앉혀 눌러버릴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효과적으로 번뇌를 누르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정신적 힘이 더 필요합니다. 즉 바른 겨냥이라는 정신적인 힘입니다. 바른 겨냥의 의미는 알아차리는 대상에 주의력이 고정된 것을 말하며, 알아차리는 마음이 대상을 향해 정확하게 고정되어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 바른 겨냥은 네 가지 선(四禪, jhaana)을 닦을 때에도 반드시 수반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바른 겨냥이란 알아차릴 때 대상을 꽉 붙들어 놓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식사하는 일을 예로 들어 봅시다. 이곳에서 식사를 할 때는 숟가락과 포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포크를 사용해서 음식을 제대로 집으려면, 먼저 집으려는 음식을 향해 포크를 바르게 가져다 대야 합니다. 이때, 겨냥없이 음식을 집으려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떤 음식이라도 집히겠지만 자신이 집어내려고 했던 음식은 집어낼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원하는 음식을 집어내려면 바로 그 음식을 향해 바른 겨냥을 한 후에 포크를 갖다 대야 합니다.

이처럼 바른 겨냥은 대상을 알아차릴 때에도 아주 중요합니다. 알아차리는 대상을 향해서 마음을 고정시켜 그 대상을 제대로 움켜 잡는 것은 이 수행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바른 겨냥과 함께 바른 노력도 있어야 합니다. 바른 노력은 제대로 마음을 챙겨 알아차릴 때 반드시 필요한 정신적인 힘입니다.

포크를 쓰는 일로 돌아가 봅시다. 자신이 원하는 음식을 집으려 할 때 다만 겨냥만 하고 있다면 음식을 집어낼 수가 없습니다. 음식을 집으려면 원하는 음식을 향해서 포크를 갖다 대는 일이 필요합니다. 겨냥한 음식에 포크를 가져다 대는 일은 바로 노력입니다. 겨냥과 노력은 서로 의존적인 관계에 있습니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갖추어질 때 원하는 음식을 제대로 집어낼 수 있으며, 나타난 대상을 제대로 알아차릴 수 있는 것입니다. 포크를 움직이려는 노력이 없다면 아무리 자신이 원하는 음식을 겨냥한다 해도 그 음식을 집을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바르게 겨냥하지도 않고 포크를 가져다 대려는 노력만 한다면 이 또한 자신이 원하는 음식을 집어낼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음식을 정확하게 집어내려면 노력과 겨냥은 함께 작용해야만 합니다. 이 둘은 어느 한 쪽이 없으면 나머지 한 쪽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관계에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마음챙기는 수행을 할 때에 만일 바른 노력과 바른 겨냥이 함께 갖추어져 있다면 감각기관에 나타난 대상을 놓치지 않고 바로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른 노력이 있으면 알아차리는 마음은 대상을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바른 노력이란 알아차리는 마음을 대상에 붙잡아 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른 노력과 바른 겨냥이 효과적으로 제 역할을 할 때, 바른 마음챙김이 생깁니다. 또한 감각대상을 놓치지 않고 알아차리고, 알아차리는 마음이 대상에 가라앉게 되면 바른 마음집중이 생겨납니다.

위와 같이 알아차리는 마음이 대상에 가라앉을 때, 몇 가지의 정신적인 힘이 함께 수반되어 있는가 정리해 봅시다.

먼저 바른 겨냥(正思惟, sammā-sankappa)이 있습니다. 바른 겨냥이란 마음을 대상에 정확하게 겨냥하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는 마음을 대상으로 가져가는 것을 의미하는 바른 노력(正精進, sammā-vāyāma)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가 갖추어졌을 때 생겨나는 정신적인 힘인 바른 마음챙김(正念, sammā-sati)이란 놓치지 않고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대상을 놓치지 않고 알아차릴 때 마음이 대상에 가라앉는 것을 바른 마음집중(正定, sammā-samādhi)이라고 합니다.

이 네 가지 정신적인 힘 가운데 바른 겨냥을 제외한 나머지 세 가지에 대해서는 지난 번에 설명했습니다. 따라서 바른 겨냥에 대해 좀더 자세히 설명해 보겠습니다. 다시 말해서 바른 겨냥은 알아차리는 마음이 나타난 대상에 일 대 일로 마주보는 것을 말합니다. 특정한 순간에 나타난 대상에 알아차리는 마음이 바로 따라 붙는 것을 바른 겨냥이라 하며, 이렇게 되면 감각적 쾌락에 대한 생각, 남을 괴롭히려고 하는 생각, 그리고 잘못된 견해 등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알아차리는 마음과 나타난 대상이 서로 짝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번뇌들이 생겨날 틈이 없는 것, 이것이 바로 바른 겨냥의 이익입니다. 이러한 이익을 얻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번뇌라는 적을 물리치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번뇌와 정면으로 맞붙어 싸워서 극복하는 것이고, 둘째는 피하는 것입니다. 바른 겨냥에 의해 번뇌를 물리치는 것은 번뇌와 맞부딪치지 않고 피하는 방법에 의한 것입니다. 포크를 쓰는 일을 다시 생각해 봅시다. 바른 겨냥이 있으면 자신이 원하는 음식을 포크를 이용해 정확하게 집게 되어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음식을 잡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바른 겨냥을 해서 대상을 알아차리면 바른 방법으로 대상을 정확하게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바른 겨냥과 바른 노력, 바른 마음챙김 그리고 바른 마음집중을 갖추게 되면 대상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대상을 바로 아는 것, 이것이 지혜입니다. 위에서 말한 네 가지 정신적인 힘이 갖추어질 때, 우리는 지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네 가지의 보조적인 정신적인 힘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 요소가 모두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으면 지혜는 얻을 수 없습니다. 즉 진리를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수행자들을 주의깊게 지켜 보고 있습니다. 어떤 수행자는 필요없는 말을 하기도 하고, 또 다른 수행자의 거처를 방문하기도 합니다. 만일 불필요한 행동이나 말을 하게 되면 놓치지 않고 마음챙기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이는 수행에 대한 진지함과 법에 대한 존경심이 없는 상태이며, 이런 상태에 빠져 있으면 지혜를 얻는 일은 아주 어려워집니다. 불필요한 언행을 일삼는 수행자는 향상을 이루지 못해 수행법과 스승에 대해 심지어는 부처님에 대한 존경심도 없어지게 되고, 회의적인 의심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과연 이렇게 수행해서 마음의 안정과 지혜를 얻을 수 있을까󰡑하는 의심이 생겨납니다. 이런 의심과 함께 이곳에서의 불편한 생활에도 싫증을 느끼게 되어 이전의 편안했던 생활을 동경하게 됩니다. 이런 지경이 되면 이 센터에서의 음식이나 거처 그리고 다른 이들과의 관계 등등의 일상생활에 대해 참고 견디는 힘이 없어질 것입니다. 화장실이나 샤워 시설 등의 제반 생활 환경에 대해서도 불평을 품게 되고 스스로 다음과 같은 생각을 일으키게 됩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수행법은 바른 길이 아니다󰡑라고. 이런 생각에 빠져 수행에 전념하지 못하면 결국 수행을 포기하는 결과를 초래해 그의 정신적 상태는 퇴보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심지어는 그때까지 수행해서 얻었던 일말의 지혜마저도 서서히 사라지게 됩니다. 마치 탄력이 있는 고무줄을 잡아당겼다가 놓으면 다시 수축되는 것과 같이, 또한 온도가 더워졌을 때 올라간 수은주가 온도가 내려감과 동시에 다시 원래의 상태로 내려가 듯이 그의 정신적 상태도 퇴보하고 마는 것입니다.

수행에는 노력이 있으면 향상이 있습니다. 하지만 노력을 하지 않게 되면 다시 퇴보하고 맙니다. 포크를 쓰는 일을 다시 생각해 봅시다. 여러 가지 음식이 섞여 있는 가운데에서 자신이 원하는 특정한 음식을 바른 겨냥과 바른 노력을 통해 집어 들게 되면 그 음식이 무슨 음식인지 확실하고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얻은 앎은 책이나 스승의 말이나 단지 생각에 의해서 알게 된 앎입니까, 아니면 실제적인 앎입니까. 이러한 앎은 자신의 경험에 의해 얻은 실제적인 앎이며 잘못된 앎이 아닙니다. 자신이 집어든 음식이 한 조각의 감자임을 분명히 알게 된 것입니다. 이 앎은 스스로 얻은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이를 통해 간접적으로 얻은 것입니까. 이 앎은 스스로 얻은, 참된 앎이며 완전한 앎입니다. 즉 집어든 음식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완전하게, 스스로 알게 된 앎입니다. 우리는 포크로 집어든 음식을 다른 음식과 혼동하지 않고 그것을 바르게 알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앎을 󰡐분명한 앎󰡑(正知, sampajañña)이라고 합니다. 이 분명한 앎에는 여섯 가지 의미가 있으며 실제적인 수행을 해오면서 지금 이야기하는 이론적인 지식을 들은 사람들은 지혜가 생겨날 것입니다. 분명한 앎은 매우 명백하고 깊은 뜻이 있으며 여러분이 얻고자 한다면 반드시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첨부파일 위빠사나 수행의길 2002d_210-254.pdf

 

출처 : 자애명상센터
글쓴이 : metta4u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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