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서....
우리 부처님 공부는 어떠한 공부든지 모두가 다 이렇게 실상을, 불성을 어떻게 계발(啓發)할 것인가? 거기에 따라서 이제 부처님의 수행법(修行法)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는 것입니다. 우선 옴마니반메훔 같은 것을 두고 본다 하더라도, 옴마니반메훔은 굉장한 하나의 진언(眞言), 즉 주문(呪文)이므로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가? 잘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티베트의 고승들은 옴마니반메훔을 주로 합니다. 우리 한국도 진각종(眞覺宗)에서는 옴마니반메훔을 주로 하지요.
그리고 우리 전통적인 불가에서도 관세음보살본심미묘진언(觀世音菩薩本心微妙眞言)이라 해서 관세음보살님의 본심의 리듬을 옴마니반메훔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진언과 같은 것은 오종불번(五種不飜)이라 그래서 함부로 번역을 못합니다. 왜냐 하면 한 가지 뜻 가운데 많은 뜻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중생이 제한된 말이나 문자로 표현을 않습니다. 진언은 너무나 함축성이 많기 때문에 그것을 어떻게 부연(敷衍)시키면 진언 같은 맛도 없고, 너무 짧아버리면 몇 마디 말로서 뜻을 표현을 못하니까 진언을 마구 범하는 편이지요.
그런데도 옴마니반메훔을 구태여 번역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중생들이 하도 그 뜻을 알려고 하니까 무량의 뜻이 포함되어 있으나 중생의 호기심이라는 것도 한도 끝도 없기 때문에 중생의 호기심에 또 맞추기 위해서 번역한 분이 있어요. 그걸 보면 '영원한 부처님의 광명'이라고 그렇게 번역을 하지요. 옴마니반메훔도 인도 범어인데 하여튼 범어로도 제대로 다 온전히 표현을 못하니까 하나의 진언으로 하는 것인데 구태여 그 뜻을 풀이하자면 '영원한 부처님의 광명'이지요.
그와 같은 진언이라든지 가사 광명진언(光明眞言)도 광명(光明)이란 뜻이 있듯이, 결국 우주는 하나의 불성이라는 순수 생명 에너지인데,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우주의 정령(精靈)이다, 우주의 기운(氣運)이다, 이렇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심심미묘(甚深微妙)한 무량(無量)의 지혜(智慧)를 갖춘 그런 생명의 광명입니다. 이 광명(光明), 빛이라는 관념이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태양광선과 같은 그런 가시적(可視的)인 눈부신 광명이 아니라, 불교말로 하면 그때는 적광(寂光)이라, 고요한 광명, 또는 정광(淨光)입니다. 이런 적광, 정광의 개념이 우리한테는 굉장히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실은 공부해 보면 자기가 정화(淨化)됨에 따라서 차근차근 광명하고 접근되어 갑니다. 기도를 참으로 깊이 모신 분들은 광명을 감득(感得) 아니할 사람이 없습니다. 사실은 그런 광명을 좀 감득을 해야 이제 환희심(歡喜心)이 이렇게 하늘로 치켜 올라서고 또는 평소에 몰랐던 것이 머리에 마치 번갯불 모양으로 반짝반짝 나온단 말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생명의 실상을 생각할 때는 사바세계(娑婆世界)의 허망(虛妄)한 것에 대해서 깊이깊이 재삼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관론(止觀論) 같은데 보면 우리 몸이라는 것은 중생의 업력기관(業力器官)이라, 중생의 업을 짓는 기관이라고 했습니다. 업을 지어 놓으면 그 업의 여러 가지 조합(組合)으로 해서 업의 가화합(假和合)이라, 우리 몸뚱이가 이렇게 가짜로 화합한단 말입니다. 가화합돼서 이제 종중연생(從衆緣生)이라, 연(緣) 따라서 무엇이 나온단 말입니다.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께서 보리수하(菩提樹下)에서 깨달으실 때는 주로 12인연법(十二因緣法)으로 깨달으신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지금 우리 인간 생명의 전생만 생각해 봅시다. '나'란 대체 무엇인가? 내가 태어나기 전에는 무엇이었으며 어디서 나왔는가?
엄마의 뱃속에서 나왔겠지. 뱃속에서 나오기 전에는 무엇인가? 엄마의 그런 태(胎)에 의지해서 뱃속에 들어가서 나오는 것까지는 아는데 엄마에 의지해서 나오기 전에는 잘 모른단 말입니다. 어떻게 해서 부모한테 의지해서 나왔는가? 잘 모릅니다. 이렇게 소급해 올라가고 올라가서 뚫고 나가니까 결국은 우주의 끝은 무엇인가? 이렇게 생각해서 올라가면 갈수록 즉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마음이 모아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는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마음이라는 것이 산란스러우면 항시 상대적인데 머물고 마는 것인데 마음이 하나로 딱 모이면 집중력(集中力)이라는 것이 생겨서 지금은 의식 차원이지만 제칠(第七) 말나식(末那識), 제팔(第八) 아뢰야식(阿賴耶識), 제구(第九) 암마라식(菴摩羅識)으로 이렇게 쭉쭉 들어갑니다.
정신집중(精神集中)이라는 이것은 원래 우리 정신의 근본 뿌리가 불성이기 때문에 한 번 집중만 딱 시키면 그 집중하는 힘으로 해서 우리 마음이 차근차근 깊이 스스로 파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전생이 무엇인가? 무엇인가? 이렇게 파고 들어가면 집중력이 생깁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훨씬 더 명상(暝想)하시는 힘이 강했겠지요. 과거세(過去世)의 선근(善根)도 많기 때문에 그렇게 천재 같은 분이 이렇게 생각하고 생각하니까 일념(一念)으로 해서 확 열려버렸습니다.
그때는 바로 과거가 열려버렸던 것입니다. 도인(道人)들이 공부해서 마음이 열려올 때 맨 처음에 나오는 신통이 숙명통(宿命通)입니다. 숙명통은 과거를 다 압니다. 자기 전생도 압니다. 과거를 알고 보니 그야말로 도솔천에 있는 하나의 영체(靈體)가 자기 어머니와 아버지가 선량한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 부모의 그런 생명의 파장(波長)에 걸려서 왔습니다. 우리도 모두가 하나의 영체로 해서 이렇게 헤매다가 아버지 어머니의 인연 파장에 걸려서 온 것입니다. 이 몸뚱이는 그렇게 돼서 어머님 태 안에서 스스로 영양을 섭취해서 결국은 세상에 나왔습니다. 이것은 가화합이라 산소, 수소, 질소, 탄소, 이런 것들이 세포의 성분이 돼서 이와 같이 모여 있습니다.
중생의 업력기관으로 해서 종중연생(從衆緣生)이라, 뭇 인연 따라서 이렇게 생겨났는데 이것이 사실은 실체가 아닙니다. 가짜인 각각의 원소가 임시로 잠시간 화합된 것이고, 화합돼서는 잠시도 그대로 있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번뇌(煩惱)가 무엇인가 하면 이 몸뚱이 이것이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학교에서 배우는 물리학을 회상(回想)을 해 보십시다. 대체로 내 몸이 무엇인가? 내내야 각 분자(分子)가 합해서 되었습니다. 또 우리가 죽어진 다음에는 어떨 것인가? 이것은 결국 산소는 산소대로, 수소는 수소대로 다 흩어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럼 남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눈에 안 보이는 것이므로 눈에 보이는 세계만 긍정하는 사람들은 그때는 영(靈)을 부인합니다. 엄마의 태안에 안착할 때도, 그것을 하나의 물질로만 생각한 사람들은 들어오는 영혼이 안 보이는 것이므로 다만 부모님의 피가 결합되어서 하나의 생명이 나왔다고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그렇게 안보는 것입니다. 도인들이 물질 저쪽 세계를 보는 안목에서는 그렇게 안봅니다. 분명히 하나의 생명이 있다가 생명이 과거에는 사람이 되었다가 무엇 되었다 했겠지요. 즉 말하자면 헤매다가 마치 지금 귀신이 헤매듯이 말입니다.
헤매다가 마침 부모님의 그런 생명의 파장과 맞닿으면 인연 파장이 서로 맞으면 그때는 걸려서 온단 말입니다. 와서 살다가 죽어지면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 몸뚱이는 결국은 다 각 원소로 이렇게 분해가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그때는 다시 영체는 남습니다. 금생에 내가 어떻게 살았던가? 금생에 얼마만큼 내 영혼이 성숙되었는가? 성숙된 정도만 그것이 남습니다.
저희들은 매일 지금도 구병시식(救病施食)을 합니다. 어디가 아프고 하면 부처님 법으로 해서 귀신들을 떼 내는 것도 하고, 될 수록 보조해서 낫도록 하고, 또 인연이 닿으면 즉각 약을 쓰지 않아도 낫기도 합니다. 대개 젊어서 죽은 혼신들은 총 맞아 죽었다던가 갑자기 교통사고 만나서 죽었다던가 이런 혼신들은 바로 못 갑니다. 나이가 많이 먹어서 자기가 사생관(死生觀)에 투철하고 자기 갈 곳을 아는 사람들은 그냥 바로 갈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역시 가는 곳은 영혼의 성숙도에 따라서 차이가 있습니다.
아주 나쁜 영혼들은 저 밑으로 뚝 떨어져서 그야말로 참 지옥 같은 데로 분명히 가는 것이고, 지금은 불교를 믿는 분들도 지옥, 아귀, 그러면 부처님께서 하나의 방편으로 말씀했겠지,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에게 안 보이는 인간의 제한된 시각으로는 볼 수 없는 세계에 분명히 영체(靈體)로 해서 지옥중생이 있는 것입니다. 귀신이 분명히 있듯이 말입니다. 사실 여러분들이 귀신이 의심스러우면 점쟁이들을 몇 사람 만나서 이야기해 보십시오. 일반 점쟁이들은 분명히 귀신을 봅니다. 따라서 우리가 죽은 뒤에 몸을 지수화풍 사대로 흩어진다 하더라도 결국은 심식(心識)은 남습니다. 앞서 말한 의식, 말나식, 아뢰야식, 암마라식은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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