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타기성(依他起性)
그 다음에는 좀 더 차원이 높은 의타기성(依他起性)이라. 다른 것에 의지해서 즉, 인연 따라서 이루어진 성품이란 말입니다. ‘나’라는 것도 인연 따라서 잠시간 이루어지고 또 내가 미워하는 마음도 인연 따라서 이루어지고 이 세상에 인연이 없이 이루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두가 인연생(因緣生)입니다. 그리고 인연 따라서 이루어진 이것은‘ 여환가유(如幻假有)’라, 마치 허깨비같이 가짜로 잠시간 존재하는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나 너라는 존재나 태양계(太陽系)나 무엇이든 다 인연 따라서 잠시간 이루어진 이것은 허깨비같이 가짜로 모양을 나툰 것입니다.
저번 신문에 보니까 수억 광년의 은하계 속에서 별들이 충돌하여 하나의 빛으로 화해 버렸다고 합니다. 우리 지구도 오랫동안 몇 백 억년 지나면 하나의 광명(光明)으로 화해 버리는 것입니다. 허망하단 말입니다. 이와 같이 인연 따라서 이루어진 것은 천지 우주는 어느 것이나 다 가림 없이 인연 따라서 이루어진 것인데 그것들은 허깨비 같이 꿈 같이 허무한 것입니다. 가짜로 있어 보인단 말입니다. 소중한 내 몸뚱이나 그대 몸뚱이나 내 집이나 모두가 다 가짜로 잠시간 중생의 망식에 있어 보이는 것이지 실재로는 있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가짜로 잠시간 인연 따라서 존재라는 것이 있다’ 이렇게 생각할 때는 설사 집이 무너진다 하더라도 원래 가짜로 있는 것 허망한 것이니까 무방하지 않겠는가. 집이 없어지면 모처럼 수행자(修行者)같이 내 공부 한번 해 보겠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고 말입니다.
러시아의 대 문호 「톨스토이」는 훌륭한 백작으로 여러 사람들을 많이 지도했습니다. 그러나 자기 뜻대로 라면 자기 집의 농노(農奴)를 다 해방시키고 토지(土地)를 다 나누어주고 싶은데 자기 아내가 반대한단 말입니다. 백작 부인 입장에서는 식구도 많고 하므로 역시 반대할 만도 하지요. 그러나 톨스토이 자기는 도저히 합당하지 않습니다.
본래 무소유(無所有)가 아닌가. 나라는 것도 본래 없는데 내 소유가 어디에 있는가? 농토(農土)는 농민들이 짓는 것이지 왜 내가 가지고 있을 것인가? 이렇게 해서 항시 아내와 싸웠단 말입니다. 아내는 놓치지 않으려 하고 자기는 남한테 다 분배하여 버리려 했습니다. 그러다 겨우 87세가 되어서 비로소 자기 아내한테 편지를 써 놓고 집을 나섰단 말입니다. ‘당신이 나한테 반대한 것은 당신 차원에서는 다 옳았다. 그리고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그렇더라도 나는 진리(眞理)를 더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죽음에 임박해서 정말로 무소유, 아무것도 없이 다 버리고 진리만 따라간다.’ 이렇게 써 놓고 오직 진리에 대한 갈망으로 집을 떠났던 것입니다. 아내한테 마지막 하직의 글을 남겨 놓고 집을 홀로 나와 눈보라 속을 헤매다 결국 쓸어져서 죽지 않았습니까.
「톨스토이」 역시 진리를 믿고 스스로 집을 나와서 하나의 수행자가 되어서 죽었던 것입니다. 남들이 볼 때는 불행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자기 마음속으로는 행복스러웠겠지요. 그분한테는 죽음이 없으니까 말입니다.
위대한 분들은 그와 같이 다 통합니다. 어떠한 경우도 손해가 없습니다. 진리로 해서 인생의 무상(無常)을 느끼고, 자기 몸뚱이 아프면 아픈 대로...
여러분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염불삼매보왕론)」을 보셨습니까? 보왕삼매론에 보면 아프면 아픈데서 배우고, 배신하면 배신당하는데서 배우고, 만사(萬事)에서 배웁니다. 모두가 다 인연 따라서 이루어진 이것은 허깨비같이 가짜로 잠시간 있는 전변무상(轉變無常)의 소지입니다. 모두가 변화해 마지않는 무상한 존재입니다.
너무 행복스러운 사람들은 무상을 모릅니다. 부모님 덕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들은 무상을 모르기 때문에 항시 우쭐합니다. 그러므로 사회에 나아가서 감투를 쓰게 되면 어쩔 줄 모르고 당황을 하지요. 그러나 시험에 떨어져도 보고 부모가 학비를 못 대줘서 고생도 해보고 그런 사람들은 세상을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구나 하고 허무를 좀 느끼고 무상을 알아차립니다.
어느 누구나 실패를 해봐야 무상을 느끼고 고생을 해봐야 인생을 좀 느낍니다. 자기 영혼이 보다 더 성숙되는 것입니다. 성숙이 되어야 비로소 진리에 눈뜨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불행도 우리한테 불행으로 끝나지 않고서 우리 인간을 보다 더 영생해탈(永生解脫)로 성불(成佛)의 길로 인도하는 길잡이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이 되고 안 되고 그런 것에 대해서 너무나 집착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때그때 최선만 다하면 됩니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도리, 어머니는 어머니의 도리, 자식은 자식의 도리, 기업하면 사업의 도리를 최선만 다하면 됩니다. 잘되고 못되고는 인연에 맡기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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