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
그래서 천지 우주의 성품이 모두가 다 식으로 되고, 마음으로 되고 한 것인데 그것도 역시 차원 따라서 구별하면 번뇌(煩惱)에 때묻은 우리 중생이 쓰는 마음을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이라 합니다. 편(遍)을 ‘변’으로도 발음합니다만 음으로만 썼습니다.
변계소집성이라, 이것은 무슨 뜻인고 하면 우리 중생은 사실을 사실대로 보지 않고서 치우치게, 모든 것을 두루 치우치게 집착 한다는 것입니다. 변계(遍計)라는 것은 모든 것을 치우치게 이리저리 억측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갑(甲)이 보면 밉지도 않은데 을(乙)이 볼 때는 밉단 말입니다. 별로 예쁘지 않은 사람도 자기 어머니나 아버지가 보면 예쁘게 생각된단 말입니다. 이와 같은 것은 모두가 치우치게 보는 것입니다. 치우치게 봐서 집착하는 성품을 가리켜서 변계소집성이라 합니다. 따라서 변계소집성 이것은 중생들 차원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 중생들이 사물의 실상을 못보고, 사물의 실상은 불성 아닙니까. 우리가 있다고 보는 것은 다 빈 것이고 참다운 실상은 불성인데 진여불성에서 봐야 바로 보는 것인데 우리 중생은 바로 보지 못하니까 업장에 가리운대로 고집해서 본다는 것입니다. 자기한테 좀 베풀어주면 좋은 것이고, 자기한테 해꼬지하면 별로 안 좋고 그래가지고 항시 꽁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것은 변계소집성입니다.
이런 것은 따지고 보면 정유리무(情有理無)라, 우리 중생의 망령된 마음에 이렇게 보이는 것이지 원리에는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남을 미워할 때나 지나치게 좋아하실 때도 꼭 이런 것을 생각을 하십시오. 이것은 우리 중생의 망령된 잘못 보는 그 마음에 있는 것이지 즉, 정(情)에 있는 것이지 원래 우주의 도리에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렇기에 성인들이 남 좋아하고 싫어하고 하는 것이 없지 않습니까. ‘정유리무의 범부 소견’이라, 진리를 모르는 우리 범부의 하나의 견해에 불과합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그때그때 우리 스스로의 생활을 반조(返照)하고 돌이켜 봐서 바른 길을 나가기 위해서 하신 경책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 중생은 이와 같이 자기 스스로 잘못 봐서 집착하여 느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방금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중생의 망령된 마음에서 비로소 있다고 하는 것이지 진리에는 본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좋다 궂다 하는 이런 집착은 원리에는 없는 어두운 범부의 소견일 뿐입니다.
불교는 가장 심오한 하나의 철학입니다. 여러분들께서도 그리 생각하시고, 제가 아무리 쉽게 말씀드리려 해도 쉽게 말할 수도 없고, 특히 저는 말 주변이 없기에, 우리 눈에 안 보이는 세계를 옮기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하면 또 말이 안 되고, 그래서 제 말씀이 어렵더라도 이것은 하나의 인생관적인 철학적인 문제이므로 해득을 각자 하셔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부처님 법은 우주의 보배입니다. 지금 세계의 석학들이 누구나가 말해 있습니다. 앞으로 세계 인류를 구제하고, 동서 양 진영이 화합하고, 21세기를 참다웁게 이끈다고 생각할 때는 부처님 가르침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누구나 말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위대한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과연 무엇일까? 다른 가르침이나 다른 철학에서는 역설하지 못한 가장 궁극적이고 가장 보편적인 가르침 이것이 이른바 중도(中道)입니다. 중도가 되어야 참다웁게 부처님 가르침을 우리가 빌린 것이 되는 것이고 동시에 그래야만이 세계의 문화 현상을 하나로 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인류가 잘못하면 국가 간에 문화의 골이 깊어질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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