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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인경스님의 명상시, 알아차림/수필

맑은물56 2011. 1. 15. 10:17

인경스님의 명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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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야

     
     침묵 속으로
     깊게 잠겨들면,

     나뭇가지의 아픈 숨결이 들리고
     처마 끝으로
     눈바람이 흩날리는
     태고적 소리가 보인다.

     동네어귀,
     웅크리고 앉아 기다리고 기다린
     저녁 노을과 직면한 나무는
     어깨의 눈발을 떨쳐내고,
     마침내 일어나
     하얀 들판으로 걸어나간다.

     새가 날아오르는
     침묵 속으로,
     너의 달빛 얼굴이 보인다.



인경스님의 명상수행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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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아차림 명상

     
     알아차림은 빠알리어 사띠(sati)의 번역어입니다. 어떤 대상을 ‘인식하는’ 것과 정신을 ‘차리다’는 의미가 결합된 말입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을 차리라는 말이 있듯이, 번뇌에 휩쓸릴 때에 정신을 차려서 그것을 분명하게 직시하라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사띠의 우리말 번역은 매우 다양하여 오히려 혼돈을 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띠의 어원적 의미는 ‘기억하여 잊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말 그대로 과거의 어떤 사실을 기억하고 재생하다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의식의 표면에 떠올라오는 경험된 현상들을 지금 여기의 현재에서 생생하게 자각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과거는 탈색한 기억이고, 미래는 갈망의 일부입니다. 현재는 지금 여기의 살아있는 생생한 경험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경험된 현상’이란 『염처경』에 근거하면, 몸[身], 느낌[受], 마음[心], 담마[法] 등 4가지를 말합니다. 이들에 대한 알아차림이 사띠입니다. 그래서 사띠를 ‘마음집중’이나 ‘마음챙김’ 혹은 ‘마음지킴’으로 번역한 경우에는 원음에 없는 ‘마음’을 첨가시킴으로써, 마음만을 그 대상으로 만들면서 몸, 느낌, 담마 등의 영역을 제외시키는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더구나 낱말의 의미는 구체적인 문장을 떠나서는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사띠를 마음챙김으로 번역하여, 우울한 내담자에게 ‘그 우울한 느낌을 마음챙김하라’고 한다면, 이것은 우울한 느낌을 챙기라는 의미인지, 아니면 우울한 마음을 챙기라는 말인지 혼돈을 줍니다. 마찬가지로 ‘생각을 사띠하라’는 문장의 경우도 ‘생각을 마음챙김하라’는 것이 되어서 명상 지도자도 스스로 혼돈에 빠지게 됩니다.

     사띠에서 다음으로 중요한 의미는 경험현상을 왜곡시키지 않고 존재하는 그대로 알아차림하는 것입니다. 알아차림은 어둠속의 존재에 빛을 던지는 일종의 지각입니다. 단지 이 뿐입니다. 여기서 그 무엇인가를 챙기려 하거나, 지키려는 태도는 올바른 명상수행의 길이 아닙니다. 무엇인가를 챙기려는 태도는 이미 대상에 대한 주관적인 가치, 탐욕에 물들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볼 때, 이미 가치에 물들려져 있지 않은가 반문합니다. 물론 우리는 문화와 언어적인 생각의 안경을 쓰고서 자신과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띠의 의미가 아닙니다. 사띠는 자신과 세상을 바라볼 때, 자신의 문화적인 안경을 벗고 대상을 그 자체로 그대로 경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사띠는 언어적인 판단이 개입하기 이전의 순수한 인식, 지각을 의미합니다. 대상에 대해서 언어적인 의미부여나 판단이 없는 상태입니다. 대상에 대해서 선명하게 깨어있음이며, 안개에 휩싸이거나 애매하지 않고, 명료하게 주의가 대상에 집중되어, 의식의 지평으로 선명하게 드러남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알아차림 명상입니다. 알아차림이 있으면 그곳에 명상이 있고, 초월적인, 영적 경험이 함께 합니다. 알아차림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번뇌에서 벗어난, 내적인 기쁨과 행복감이 함께 합니다. 알아차림 명상은 마음의 평화와 깨달음의 관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