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생 정원미달] 지방대·전문대학 심각
입학관리처는 학생 유치 출장이 주업무
호남의 모 지방대학 입학처 부장은 지난 7월부터 일주일 단위로 서울과 수도권 고교를 방문하고 있다. 대학을 알리고 학생들을 한 명이라도 더 끌어오기 위해서다. 지방대학은 사정이 비슷하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 학생들을 끌어와야 한다. 그래서 택한 게 바로 ‘서울 출장’이다. “정원미달 사태만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 그는 “입학관리처 업무는 3D업종”이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 학생 없어서 문 닫는다
정원 부족 현상이 대학을 흔들고 있다. 4년제 대학에 비해 경쟁력이 약한 전문대학부터 시작이다. 지난 8년 동안 전문대학 11개교가 폐교됐다. 학생은 14만 1200여명 감소했다. 지방대학 역시 정원미달의 화살을 피하진 못했다. 편입 시즌이면 “서울·수도권 대학에 학생들을 다 뺏긴다”는 푸념이 지방대학 곳곳에서 들린다. 몇몇 대학은 타 대학과 통합됐다.
2008학년도 전국의 미충원 인원은 모두 3만 5000여명. 4년제 대학 6곳과 전문대 3곳 등 9곳은 모집정원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학생 없어서 대학 문 닫겠느냐”는 농담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정부는 대학에 정원조정과 관련한 자율권을 줄 방침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달 16일 ‘대학 자율화 2단계 1차 추진과제’를 발표했다. 특히 이번 발표에서는 본교와 캠퍼스 간 자체 정원조정 요건도 대폭 완화된다. 이에 따라 학과 통폐합이 활성화할 것으로 보인다. 학생 지원율과 취업률이 높은 인기학과의 정원은 늘어나고, 비인기학과 정원은 대폭 줄이거나 아예 폐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000년도 들어 조짐을 보인 ‘정원미달’ 현상은 이제 구체화되고 있다. 대학 진학자 60만명 시대는 곧 막을 내린다. 10년 뒤인 2015년에는 20만명이 감소, 40만 시대가 도래한다. 대학 전문가들은 이때가 되면 서울과 수도권 대학도 무너지는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고 예견한다. 바야흐로 냉혹한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것이다.
■ 출산율 감소가 위기의 원인
위기의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은 대학이 지나치게 많다는 데 있다. 1970년대 이후 수도권 인구 집중을 억제하고자 지방대학이 대량 신설됐다. 학과는 증설됐고, 정원도 대폭 늘었다. 김영삼 정부는 ‘설립준칙주의’를 내걸었다. 사립대학과 사립전문대학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났다. 늘어난 대학은 특징 없이 백화점 식으로 학과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런 대학들이 그동안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는 단 한 가지. 고교 졸업생이 대학 입학정원을 계속 초과했기 때문이다. 이런 대학의 승승장구는 2000년도 들어서면서 꺾이기 시작했다. 2001년 전국 대학의 등록률은 96.6%였다. 2003년에는 89.1%로 대폭 감소했다.
이런 감소세는 출산율 감소 추이와 맞물려 앞으로도 이어질 예정이다. 출산율은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정부가 추진한 산아제한 정책 이후 꾸준히 떨어지고 있다. 1973년 제정된 모자보건법 때문에 당시 4.10명에 이르던 출산율은 1984년 1.76명을 기록했다. 이후 2005년에는 1.08명으로 바닥을 쳤다. 대학 역시 이러한 출산율에 맞춰 정원미달과 맞닥뜨리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정원미달을 피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적어진 학생을 놓고 경쟁하거나 해외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 경쟁력 높여야 학생 온다
대학 경쟁력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백화점식 확장을 자제하고 특성화를 추진해야 한다. 무엇보다 대학의 패러다임이 변했다는 사실부터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다양해지는 사회·경제적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지난 2004년 교과부 자료에 따르면, 대학교육에 대한 기업 CEO 만족도는 6점 만점에 3.72점에 불과했다. 기업 인사 담당자의 77.7%가 대학교육의 질적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신입사원 업무 성취도에 대한 만족도는 25.9%에 불과했다. 한마디로 사회가 원하는 인적자원을 양성치 못했다는 뜻이다.
몸집을 줄이고 특성화에 매진한 아주자동차대학은 이런 문제를 해결한 좋은 사례로 꼽힌다. 지난 2004년 학생 수를 대폭 줄이고 경쟁력이 없는 IT학과 등 8개 학과를 폐지하는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국내 유일의 자동차대학’으로 자리 잡았다. 그 결과 지난해 정시모집에서는 15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사회가 원하는 것은 거의 모든 대학에 널린 IT학과가 아니었다. 하이브리드자동차과, 자동차 튜닝학과를 더 원했다.
학생 수 감소로 폐교한 대학을 받아 성공한 일본의 국제교양대학도 좋은 예다. 학생 수 미달로 미네소타대 아키타 분교가 폐교하자, 국제교양대학은 이 대학 시설을 그대로 이용했다. 신입생 정원 100명의 국제경영학과 미국·중국 지역 전문과정을 신설했다. 국제화에 발맞춘 인재를 육성하겠다는 것이었다. 파격적 지원도 뒤따랐다. 영어로 강의하고 4학년 전원 해외유학을 실시했다. 교수의 60%는 외국인이었다. 학생들이 몰렸다. 첫 지원을 받았는데, 경쟁률이 무려 15대 1이었다.
■ 지역거점 대학 거듭나야
지난 2006년 4월 한국교육개발원 고등교육 통계에 따르면, 4년제 대학의 평균 충원율은 97.7%였다. 지역별로 보면, 서울 99.9%, 부산 88.8%, 대구 88.9%, 인천 99%, 경기 99.2% 등 대도시 지역의 충원율은 높았다. 그러나 대도시 지역을 제외한 기타 도 지역 전문대학 충원율은 70%에 불과했다. 충북이 67.1%로 가장 낮았다. 다음은 강원 68.5%, 제주 73.3%였다.
지방대학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철저한 지역거점 중심대학이 되어야 한다. 지역의 비전을 제공하고, 지역의 기업과 학생을 흡수하는 대학이 되어야 한다. 미국 텍사스대는 거점대학의 대표적 사례다. 대학의 활동은 텍사스주의 경제에 맞춰져 있다. 아울러 일반 주민에게 각종 프로그램과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대학의 미션은 ‘택사스 주민과의 약속’이다.
동서대는 학문분야를 특성화하고 지역 전략사업과 연계한 좋은 사례다. 전국적인 학생 흡인력이 높지 않고 입학생 가운데 지역 출신자가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입학생 가운데 부산과 인근 경남·울산 지역 출신 비율이 모두 97.7%를 차지한다. 높은 취업률을 강점으로 내걸어 학생들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지원율은 최근 3년간 4.18대 1이며, 탈락률은 5% 수준에 불과하다.
■ 유학생 불러 위기 탈출
정원미달을 해결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포화 상태인 국내 시장을 벗어나 해외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줄어드는 학생에 집착하기보다 해외 유학생을 유치하라는 뜻이다. 그동안 미국과 영국이 이끌던 유학생 시장에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이 뛰어든 것은 유학생 유치의 중요성을 잘 보여 준다.
프랑스는 전 세계에 ‘캠퍼스 프랑스’ 등 교육진흥원 산하기관들을 설립하고 있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지난 7월 ‘2020년 외국인 유학생 30만명 유치 계획’을 발표했다. 중국 정부는 외국인 유학생을 위한 ‘정부 장학금’을 대폭 강화했다. 올해에만 약 1만명의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한다.
이런 상황에서 ‘쌍방향’을 내건 경희대의 국제화는 주목할 만하다. 한국어와 외국어를 복수전공할 수 있도록 한중통역연습, 한불사회읽기, 한국어표현교육법과 같은 복수전공 과목을 도입했다. 외국인 학생을 위한 전용과목과 수준별 전공수업도 갖췄다. 언어의 장벽과 실정에 맞지 않는 커리큘럼 때문에 한국 유학을 꺼리던 외국인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 8월 발표한 ‘2012년 외국인 유학생 10만명 유치 계획'은 이런 점에서 특히 환영할 만하다.
해외유학생 유치 시에는 양보다 질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4만 9000여명의 국내 외국인 유학생 가운데 약 8%가 대학을 이탈한 불법체류자였다. 일부 지방대가 미달된 정원을 채우기 위해 마구잡이로 유학생을 유치한 뒤 관리를 소홀해 벌어진 문제다. 우선 내실부터 다지고 제도를 정비한 후 추진해도 늦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정원미달에 무너지는 일본 대학들 |
요미우리신문은 지난해 7월 31일 “4년제 사립대 입학률 전년 대비 7.4% 증가한 47.1%로 집계됐다. 사상 최악이다”라고 보도했다. 우리와 상황이 비슷한 일본은 우리보다 앞서서 정원미달 사태를 겪었다. 그리고 이에 대비하지 못한 대학들은 대책 없이 무너지고 있다. 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 간 경쟁, 그리고 대학의 파산은 곧 다가올 우리 대학가의 미래를 여실히 보여 준다. 현재 일본 559개 사립대 가운데 40%는 지난해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한국의 전문대에 해당하는 일본 사립단기대는 62%가 정원미달이었다. 사학공제단이 521개 사립대 법인과 144개 사립단기대 법인의 경영상태를 평가한 결과 98개가 ‘경영 곤란 상태’였고 15개는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얼마 전에는 로스쿨 정원 역시 축소키로 결정했다. 현재 문부과학성은 대학 신설을 억제하는 등 설치 기준을 재검토할 계획이며, 전문 분야를 특화시키는 촉진책과 학부와 학위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학위 프로그램 도입도 검토할 예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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