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무엇이냐고 묻길래 / 임영석
처음에는 나도
그만 그만한 생각을
다듬고 골라
이것이 詩라고 했다
歲月이 갈 수록
詩를 읽을 수록
詩라는 것이
江도 아니요 山도 아니오
기다림이라 했다
다시 歲月이 흘러
나무처럼 자라는 아들을 보니
詩는 꿈처럼 보였다
그래 내 平生,
살아 온 날들이 詩였다면
살아 갈 날들도 詩가 아니겠느냐
詩라는 것이
맛 잘 들은 김장처럼
삶의 맛 아니겠느냐
어머니는 해 마다 저 넓은 들에 편지를 쓰고 계셨다 / 임영석
엘리베이터에 점자로 박힌 층수의 숫자들을 만져보니
글씨를 모르시던 어머니 생각이 난다
살아서는 편지 한 장 써 본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무릎이 닳고 닳아 송곳같은 바람 들어오는 바지에
심장을 오려 붙여 촘촘한 바느질 솜씨로
점자를 써 가지고 나에게 입히셨던 것이였다
내가 뛰어 놀 때 마다 어머니의 심장은 닳고 닳았고
그렇게 수 없는 편지를 써 주실 때 마다
가난에 기(氣) 죽지 않게 심장을 오려 붙이셨던 것이였다
나는 그 옷을 입고 뛰어 놀며 넘어질 때 마다
점자(點字) 같은 실밥들이 뜯어져
그 넓은 들에 꽃씨처럼 뿌려지는 것을 몰랐다
엘리베이터가 수직상승하는 중에 11층 층수의 점자를 만지며
들에 핀 꽃들이 어머니 편지였다는 것을 알았다
어머니는 해 마다 나에게
저 넓은 들에 꽃씨를 뿌려 편지를 쓰고 계셨다
겨울 복숭아 밭에서 / 임영석
겨울 복숭아 밭에서 눈꽃 구경을 한다
햇살이 눈부셔
실눈 뜨고 바라보니
햇살을 받치고 선 나무기둥 위로
복숭아 가지가 얹혀져 있다
겨울을 건너 온 나무기둥들
살이 터져 더는 버티지 못하고
군데 군데 쓰러져 있다
누군가를 위해 버팀목이 되어 준다는 것은
저렇게 한 목숨 던져 주는 것이었다
버팀목이 눈꽃보다 더 아름다운
복숭아 꽃눈을 업고 있다
거뭇거뭇 버짐 핀 버팀목 위에
곧 연분홍 봄이 터질 것이다.
첫사랑 / 임영석
남사스럽네유
늘 제게 주는 情,
그냥 나무 끄트머리에 매달아 주세유
그걸 보고 올게유
십년 혹은 이십 년 후라도
그 나무 끄트머리에
내 남사스러운 情
꼭꼭 묶어 눌게유
기다리지 마세유
굴뚝 / 임영석
나,어릴적에 굴뚝은 집집 마다 사내들의 잠지처럼 서 있었다
좀 산다는 집의 굴뚝은 계집 몇은 후렸을 빳빳한 힘을 주고 서 있었고
끼니도 못 때우는 집은 늘 연기빨이 힘없이 푸석푸석 피여 올랐다
그 연기들이 구들장을 핥아내며 남긴 따뜻한 사랑 같이, 굴뚝은
모든 생을 다 빼았기고 새 生을 담아내는 소통의 길이였다
가끔 그 길이 막혀 그 길을 뚫어야 할 때 이 세상의 삶은 그 길에서도
온 몸이 식기전에 이 세상 왔다 간다는 말을 새겼다
나, 어릴적 굴뚝은 그 자체가 사내들의 잠지 같은 몸이였다
여자들이 아궁이에 불 지피면 굴뚝은 금새 뜨거워졌다
명태 / 임영석
입을 짝 벌린 명태 한마리 묶어 자동차 트렁크에
몇 년을 달아 놓고 다녔다 트렁크를 열 때마다 놈은
눈을 더 부릅뜨고 경계심을 풀지 않는다 몇 년을 굶은
놈의 몸을 만지니 이미 몸은 새가 되어 날아가고
두 눈만 살아서 바다로 돌아가겠다는 자세다
몇 년을 굶은 명태의 입에서는 본능의 힘으로
바다를 헤엄쳐 다니고 있었다 얼마나 요동을 치는지
실타래가 삭아 더는 묶어 놓을 수가 없다
바다 / 임영석
파도가 쳐야 바닷물이 썩지 않는다
사람이 흘려보낸 오욕(五慾)을 씻어내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세월, 제 가슴을 때렸으면
저렇게 퍼런 멍이 들었겠는가
자식이 어미 속을 썩이면
그 어미가 참고 흘리는 눈물처럼
바다도 얼마나 많은 세월, 눈물을 흘렸으면
소금빨이 서도록 짜다는 말인가
그 퍼런 가슴, 짠 눈물 속에 살아가는 물고기
또 얼마나 많은 세월, 마음을 비워왔으면
두 눈 뜬 몸을 자르는데도 피 한 방울 나지 않도록
바다는 물고기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쳤을가
물고기의 비늘 / 임영석
누가 물고기의 몸에
아름다운 장식(粧飾)을 해 주었을까
평생 그 아름다운 장식을 벗지 못하고
죽어서나 벗어야 하는
그 고통을 누가 짐을 지어주었나
물에 젖지 않은 장식을 한 죄로
물에서 나와 그 장식을 벗는 날
피눈물을 층층 삭혀 낸
속살까지 다 보여준다
오늘, 뭍으로 나와 눈먼 죄로
제 몸을 맡기고
아름다운 장식을 벗어
또 다른 해탈을 꿈꾸는 물고기
비늘을 벗고 입적 (入寂) 하다
닭이 운다 / 임영석
닭이 운다
보름달이 다시 보름달이 될 때까지
그 느리고 더딘 걸음이라 생각하지만
그 보름 달 속에 다시 보름달로 차오르는 힘을
나는 달걀 속에서 본다
닭이 알을 낳아 다시 병아리가 되기까지
꼭 한달의 시간이 걸린다
그 한달 동안 달이 지구를 돌듯
돌았을 달걀 속에서
병아리가 나온다
세상은 돌아야 한다
제 정신으로 바르게 살지 못한다
돌아가는 지구를 따라 돌아야 한다
닭이 새벽마다 우는 것은
달을 따라 돌았던 기억 때문에
새벽 마다 닭은
달과 이별의 노래를 하는 것이다
콩나물 시루 밑에는
콩나물 시루보다 더 큰 생각으로
물동이가 앉아 있다
그 속에 쪽박 하나
속을 비워 둥둥 띄워 놓고
끝없는 물의 소리를 가르치고 있다
물의 소리를 먹고
물의 소리를 따라서 자란 콩나물,
물음(水音)을 익혀
물음(水音)의 눈물 뜨겁게 익혀야
제 맛이 난다는 그 맛,
물동이는 불가마 속에 배워 와서
콩나물에게 가르친다
끝없는 물음들은 자라
콩나물 시루를 뛰어 넘어
편하지 않은 속을 가르친다
발가를 벗고 보니 / 임영석
내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에
습지에서 서식하는 풀잎처럼
햇볕 한 모금 못 받고
이렇다 할 말 한 번 못 하고
평생을 두 눈 감고 사는 놈 있어
"털끝 하나 건들면 죽어"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사람 몸에서 햇빛 보이는 곳은
그 말이 어울리지 않겠지만,
공룡의 울음소릴 기억할 만한 놈에게는
왜 그 말이 어울리는지 이제는 알겠어
공룡의 울음 소리 껴안고 진화를 거부한 놈이
내 몸의 천연기념물로 남아 있을 때에는
그만한 가치를 인정 받고 있다는 거야
어느 놈이 땀냄새 속에 살겠어
어느 놈이 사람 목숨을 그렇게 지키겠어
내 몸이 다 싫다고 떠나갈 때
놈은 남아서 공룡 울음 소리를 껴 안고 통곡했겠지
"털끝 만큼만 살자" 외쳤겠지
발가벗고 서 있으면 놈부터 나는 가리지
이 세상 나오기를 거부한 놈이 어디로 달아날가봐
여름편지 / 임영석
아침부터 소나기가 오더라
그래 난 누가 또 벼락 맞아 죽은 줄만 알았다
벼락 맞아 죽은 초상집 아니고서야
저런 소낙비 같은 눈물을 흘릴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사는 일이 힘들 수록 눈물 흘릴 일이 많겠지만
채송화를 보아라 그 작은 씨앗 하나
다음 해(年) 그 자리에 또 꽃피우기 위하여
얼마나 치열하게 꽃피워 씨를 맺고 있는지
텅 빈 것은 가슴을 비워 울림을 주고
가득한 것은 가슴을 채워 아득함을 주고 있다
아침부터 소나기가 오더라
빈 산 넘어 누가 또 이승을 하직한 줄만 알았다
살 만큼 살다가 떠나가는 세상 살이
아직 하직 인사를 더 건네야 하는 사람이 있나보다
땅에 솟구쳐 오르는 빗줄기가 끈처럼 묶여
강물을 이루어 흐른다 그 강물이
세상의 인연을 묶어 떠나가는 듯 하다
검붉은 황톳물에 둥둥 떠내려가는 물결 만큼
울컥울컥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만 같다
세상의 끈을 묶어 흐르는 강물 위에
누가 하직 인사를 하고 있는 듯 하고나
가을 들길에서 / 임영석
오늘도 들에 핀 들꽃의 향기를
가을 햇살이 받아 적는다
허공에 받아 적은 꽃향기를
햇살은 다시 그 꽃들에게 가르치려고
꽃잎 하나하나 마다
지워지지 않는 기억을
불타는 가슴 속에 옮긴다
꽃들은 고개를 쏙 내밀어
제 꽃향기를 받아 쓰라고 아우성이고
햇살은 꽃향기를 받아 쓴 꽃들에게
제 심장의 일부를 떼어 준다
꽃들은 햇살의 심장을
한 겨울에도 식지 않도록
딱딱한 껍질을 만들고 죽어도
그 목숨이 아깝지 않은가보다
징검다리를 건너며 / 임영석
1.
나, 이 세상 살아가며
남에게 등 구부려
구부린 등 밟고 가라고
말해 본적 한 번 없다
그런데 이 징검다리
목숨까지 다 내준다
2.
물의 옷 위에 채운
단단한 돌의 단추
물의 옷을 벗기려면
풀어야 할 단추지만
아무도 이 물의 옷을
벗겨가지 않는다
휘어진 철근의 말 / 임영석
너는 나를 휘어서 영원히 고개 숙이게 하고 싶지만
나는 휘어져서도 빳빳한 힘을 버릴 수는 없다
너는 내 고개숙인 빳빳한 힘을 콘크리트로 덮어
꼴도 안 보이게 묻어버리고 싶었겠지만
내 빳빳한 힘이 숨을 멈추어 버리면
한 발자국도 저 허공을 오를 수가 없다
나 같은 철근 쪼가리를
휘고 붙이고 콘크리트 속에 묻어 버릴 수는 있어도
저 허공을 무슨 힘으로 누른다는 것이냐
저 허공을 무슨 힘으로 오른다는 것이냐
그리움이 문제다 / 임영석
내가 스물 두살 때 어머니 돌아가시고
염(斂)을 모신다고 하는데
칠성판 위에 곤하게 주무시는 어머니
장포(長布) 7척 두루두루
북망산천 가는 길 춥지 않게 입히시는데
온 몸 꽁꽁 스물 한 매듭으로 묶어 놓으시니
저렇게 염(斂) 할 놈이 나라는 것을
뉘우치고 뉘우쳤다
그후, 나는 스무 해를 넘게 더 살며
임종 무렵 어머니 모습을 떠나보내지 않고
내 가슴에 염(斂)을 해 모셔 놓고
어머니,어머니, 통곡하며 산다
그리움이 문제다
아직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머니는 새벽 마다 새벽 밥을 지어
내 머리맡에 놓고 내 잠을 깨운다
나는 그 밥 하루도 거르지 않고 먹는데
그냥 먹지 못하고
어머니에게 시 한 편 읽어 주고 먹는다
밥값 대신 읽어주는 詩가
어머니는 맘에 안 드시는지
늘 한마디 하신다 "너는 그 그리움이 문제다"는 말 속에는
이생강의 대금 소리처럼 풀어내지 못한 소리가
내 목숨처럼 붙어 있었다
어머니와 소 이야기 / 임영석
살아 생전, 어머니가 뚝에 묶어 두었던 소를 몰러 가셨다가 소의 뿔에 받히셨다
눈이 퉁퉁 소의 눈처럼 부어 검고 푸른 멍이 들으셨다 병원에 갔다오신 어머니는
괜찮다, 괜찮다고만 하셨다 그 푸른 눈을 끔벅일 때 마다 눈물이 흘러 나왔다
마치 슬픔을 덜어내고 있으신 것 같았다 그 소를 팔아 생계를 꾸리셔야 했기에
소를 원망할 수 없었다 소가 자식 같기만 했던 것이였다 내 목숨이 어머니의 눈을
들이 받은 것이였다 어머니는 소가 들이받는 순간에도 고삐를 놓치지 않으셨다
평생을 그렇게 고삐를 놓치지 않고 살으셨다 임종 무렵, 두 눈에 눈물 흘리시며
슬픔을 덜어내는 일 말고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두 눈을 끔벅이는 일 말고는,
누님 / 임영석
세상에 태여나 도둑질 말고는 무엇을 못하겠냐고 하던
누님의 몸에 혹 하나 떼어내려고 수술을 하였다고 한다
암이 아니냐는 걱정이 들어 수술을 하였다는 기별을 받고
수술은 잘 끝났다고 말 하는데도 걱정이다 칠남매 살붙이 중에
큰 누님이시니 어머니 같다 야채 가게를 하시여 배추만 봐도
누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배추 같은 얼굴이 늘 떠오른다 그 누님을 뵙고
혼자 돌아오며 바라보는 겨울 포도 밭은 수 없는 우물 정(井)자가
쓰여져 있었다 겨울 포도밭 버팀목 위에 쓰여진 우물 정(井)자가
허공의 길처럼 포도 넝쿨을 받아내고 있었다 누님도 나를
업고 키우면서 나에게 우물이 되어 주었는데 나는
무엇 하나 도움을 줄 수 없어 늘 애만 탄다 배추 속 절이듯
숨 죽이고 살며 대형 마트의 힘에 밀려서도 어쩌겠냐고, 밥벌이가
그리 만만하겠냐고 하셨다 수술은 잘 되었냐고 얼마나 아프냐고 물으니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는 아픈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찌 그리 복도 없이
고생고생 살아야 할까 몸이라도 성해야 고생을 덜 것인데
혹 하나 떼려고 나온 세상, 혹 하나 더 달았으니
얼마나 무겁고 고통스러웠겠는가 전화기 속에 누님의 아픈 목소리는
처서 지난 모기 소리처럼 괜찮다고 괜찮다고 가몰가몰 들리는데
팔다만 배추 썩을가봐 아픈 몸보다 더 걱정이 앞서는 누님
그 마음이 나에게는 우물이시다 허공에 깊게 파 놓은 우물이시다
입석사 바위 위에 앉아 있는 소나무가 말한다 / 임영석
석사 바위 위에 앉아 있는 소나무가 말한다 하늘의 氣가 내린 이 자리에
바늘처럼 솟아난 솔잎을 싹 틔우기 위해서 내 말의 뿌리도 쇠못같이 바위
를 뚫고 뿌리를 내려야 한다 백일 가뭄에도 끄떡하지 않고 신선처럼 마음
을 다 비우고 뼈를 깎아 뿌리를 내리지만 아직도 구름 처럼 날지는 못한다
바늘 같은 고집 만으로는 바위에 뿌리를 내릴 수는 있어도 하늘을 날아
갈 수는 없다 사람들은 어떻게 바위 위에 소나무가 앉아 살 수 있을가
말하는데 나는 어떻게 구름처럼 날아다닐 수 있을가를 생각한다
입석사 바위 위에 앉아 백일 가뭄을 이겨내고 듣는 새소리가 말의 뿌리라
한다 듣는 것 만으로 生의 半을 채우고 보는 것 만으로 남은 生을 채우기
위해서 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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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면식도 없지만 그 분과 교유하는 내가 아는 시인을 통하여 알게된, 그리고
'한결'이라는 아이디를 가지고 사이버세상에서 이 땅의 보석같은 시들을 읽어
주시고 널리 소개해 주시는 임영석 시인님의 시를 한정된 공간에 모았습니다.
그 맑은 시를 읽으며 시의 길을 더듬어 봅니다. 아울러 시인의 블로그에서
양해를 얻지 않고 자작시편을 옮겨온 무례를 헤아려 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 동산
* 임영석 시인의 블로그
한결-더 좋은 세상
http://blog.naver.com/imim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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