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정진석 (시인 평론가) 선생님이 대전 펜 16호에 쓴 “지역 문단의 현황과 나아갈 길”이 백번 천번 지당하고 (그 분의 글은 언제나 그렇다) 공감이 가서, 정선생님의 흔쾌한 허락을 받아 일부를 발췌 더러는 내 생각도 가미해 옮겼다.
1. 시를 쓰는 분들에게
* 이미 굳어버린 일상적 언어에 새 생명을 불어넣고, 아울러 언어의 개척자, 언어의 탐험가로서 부지런히 시어 개발에 힘써야 할 것이다. 또한 언어의 연금술사가 되어 우리말을 부단히 갈고 닦는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 시인은 정신적으로 선비이자 양반이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고 있다할망정 시인마저 지고한 志操를 져버리는 정신적 娼男, 娼女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2. 수필 쓰는 분들에게
*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 쓰면 글이 되지 않는다. 운문이든 산문이든 절제하고 묻어두는 데서 오히려 여운이 많이 남는 법이다. 횡설수설 중언부언 중얼거리는 식으로 꼭 필요하지 도 않은 이야기까지 장황하게 늘어놓으면, 글의 초점이 안 맞고 통합성도 약화되고 독자들을 지루하게 할 뿐이다.
* 역사적 문화유적이나 문화재에 대한 해박하고 정확한 전문 지식이나 해설 고증식의 글은 역사가나 향토학자의 몫이다.
* 수필이란 자질구레한 신변잡기나 넋두리를 하는 공터도, 역사적인 사실이나 유물에 대한 전문지식 전수를 위한 강연장이나, 자상히 안내하는 문화해설사의 임시 무대도 아니다.
3. 소설 쓰는 분들에게 -어느 지방 소설가에게-
* 장시간에 걸쳐 엄청난 진을 빼며 집필해야하는 소설은 그래서 아무나 못 쓰므로 소설가는 희소성 면에서 보석같은 존재이다.
* 소설이 신변잡기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할 경우 독자로부터 외면당하고 만다. 심혈을 기울여 써도 평생 3류 작가에 머물고 만다면 한 번뿐인 인생에 그 피같은 시간과 투자를 인생을 즐기고 행복하게 사는데 쓰는 게 더 유익할 것이다.
* 당당한 작가의 위상을 남기려면, 폭 넓은 독서를 하고, 다양한 소설기법을 터득하며, 세계관을 확산하여, 자서전적 성격의 소설 범주에서 탈피해, 보다 특수성과 보편성을 살린 소설을 씀으로써 문학사에 길이 “살아남아야” 할 것이다.
4. 신인 및 유망주들에게
* 문학이란 의욕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집요한 끈기와 성실한 집필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문학에 대한 경건성과 성실성이 요망 된다. 신인들의 창작 태도에선 대부분 습작의 경건성과 진지성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자기 존재가 아직 문단 새내기그룹에 속하고, 아직 보잘 것 없음을 냉철하게 자각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착실하게 안목과 실력을 기르고, 실적을 쌓아 나가야 할 것이다.
* 특히 詩 중에서 치기와, 함부로 기교를 부리려는 겉멋이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 문학은 범 代他的인 존재를 향한 무한한 애정에서 진지한 자세로 한 발 한 발 정진하고 접근하는 것이 正道이다.
* 작품엔 창의성과 독창성이 곁들여져야 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곰삭히고 충분히 뜸을 들여 버릇해야 할 것이다.
* 신인은 빨리 유명한 문인이 되고 싶은 過慾에서 무조건 다작을 일삼거나 갈고 다듬지도, 교정은 최소 3번을 봐도 오자가 나옴에도, 교정도 안 본 채 헤프게 발표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자기 작품을 아끼지 않는 태도이며, 거칠어서 작품을 감수해주는 분에게도 독자에게도 실례이며 글 쓰는 사람의 자세가 이나다.
* 뜸을 충분히 들이고 무르익혀야 할 것이다.
* 신인은 항상 겸허한 자세로 자아성찰과 함께 착실한 문학 수업을 통해 자기의 문학세계를 구축해 나가도록 하고, 문학 스승이나 선배들의 가르침을 겸허히 경청해야 할 것이다.
* 문단에 갓 나오면 들뜨고 자신감에 차서 일부는 자신이 유명문인이 된 양 착각과 망상과 자만심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문인의 길이란 화려하지도 않고, 일회용 꽃다발이나 흔해 빠진 트로피를 받는 연예인들과는 그 궤를 달리한다.
* 문학작품은 흥분과 자신감이 아니라, 차분한 가운데 수없이 고독한 자기와의 싸움을 통해서 시나브로 성숙되고 완성되는 것이다. 교만과 자만은 장차 대성할 수 있는 발목을 끊어버리는 대전차지뢰일 뿐이다.
* 자기 작품이 한 두 편 반짝했다고 기고만장한다면, 어리석고 우매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다. 그렇게 유치한 사람은 토끼와 거북의 경주에서 토끼와 같다. 무슨 일을 하고 어디에 있건 경박한 우쭐거림과 거들먹대는 자만심은 파멸로 가는 지름길이다
“ 허리를 구부리면 진주를 잡는다.”
“ 재능은 고독 속에서 이루어지며, 인격은 세상의 거친 파도 속에서 닦여진다”
5. 원로 문인들에게
* 문인에게 힘이란 좋은 작품을 많이 쓰는 데서 나온다. 명예나 지위를 밝히면 추해 보인다. 그런 것들로부터 초연한 자세로 빼어난 작품을 많이 쓰는 자가 참된 문인으로서 힘을 갖게 마련이다.
* 선배로서 문단 정치를 멀리하고, 문단의 보직에 연연치 말며, 나이만큼 후덕 고매함과 인자함 등 향기로운 인품을 지니고 반듯하게 처신해야 존경을 받는다.
* 문학적 실적도 작품 수준도 형편 없는 졸작만 몇 편 쓰고, 지방문단 발전에 기여한 업적도 전무후무하면서, 등단 연도나 입회연도나 나이나 사회적 지위와 학벌만을 내세워 문단 원로인 양 착각하고 어른 대우를 받고자하며 문학도들을 발라먹거나, 인격조차 갖추지 못하고도 예우는 해달라며 앙탈과 추태를 부린다면, 미친개이거나 문단 비렁뱅이이니 웃음꺼리일 뿐이다.
“국어를 배웠으면 주제를 알고, 수학을 배웠으면 분수를 알아야 한다”
* 또한 그렇게 인격과 업적과 실력을 갖춘 어른을 예우하지 않고 괄시한다면 싹수가 노-란 시정잡배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일 것이다.
* 말을 절제하고, 짧게 말할 줄 알아야 한다. 모두가 바쁜 세상에, 어렵게 먼 데서까지 없는 시간을 내서 참석하는 모임에서 누구건 말을 많이 하거나 연단에서건 앉아서건 장황하게 오래 지껄이면 인기가 떨어지고 듣는 이들이 지겨워해 혐오의 대상이 된다. 특히 술을 마시고 중언부언한다면 듣는 사람에겐 고역이요 지옥이다.
* 정말 실력 있고 품격을 갖춘 사람은 침묵을 지키거나, 필요한 말만 간명하게 하는 법이다. 특히 원로나 지도자일수록 과묵하게 말을 아껴야 품위 있고 중후해 존경을 받을 것이다.
“연설과 미니스커트는 짧아야 좋다.”
“지갑은 열수록 좋고 입은 닫을수록 좋다”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
* 하고 많은 문인 중에 단지 문인으로서 인정 받는데도 한 동인회에 붙박혀서 좋은 글을 10년은 써야한다.
* 일화 하나
전에 대전문협회장 선거 때 동시대와 내 주변 표를 의식한 후보자가 “대전문협 간부로 임명할 테니 한 사람 추천해 주십시요” 하길래, 기왕이면 동시대 회원 중 등단 시킨지 8년이 됐고 입회 연도도 최고참이고 동시대를 위해 충실히 협조하는 회원을 추천했더니 그 후보자 왈 “그사람은 문단 연조가 짧아서요”하고 거부했다.
또 다시 내가 등단시킨 지 10년도 넘는 다른 동인회 회원을 추천했더니 그 문인은 “그토록 지탄받는 사람 곁에 뭐하러 가요”하고 거절해서 똑똑하고 올바른 사람이라는 인상이 깊이 박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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