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시대에서

[스크랩] 역사 소설의 두 가지 양식

맑은물56 2010. 3. 20. 12:14

                                                 선덕여왕

  재위 632-647. 당시 유일한 성골 출신 왕위 계승권자로 진골 출신 남성들과 경쟁을 통해 왕위에 오른 한반도 최초의 여왕이다. 당시 백제, 고구려의 팽창 정책으로 위기에 빠진 신라를 공격적인 외교술로 구해 냈으며, 김춘추와 김유신 등 우수한 인재의 등용으로 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했다. 특히 친 문화적 정책으로 황룡사9층탑, 금동미륵반가사유상, 첨성대 등 신라 시대의 대표적 유물들을 남겼다.  신라 26대 진평왕의 맏딸로 출생. 본명은 덕만. 당시 신라는 부모 양쪽이 모두 성골이어야 왕위를 허락했다. 이런 까다로운 조건 덕에 왕위 계승 자격을 가진 성골은 진평왕의 두 딸 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당시 또 다른 유력한 왕위 후보자 중엔 진골의 김용춘이 있었으나, 화백회의는 김용춘 대신 진평왕의 맏딸 덕만을 왕위 계승자로 추대한다. 남성 지배 중심의 고대 국가에서 여성을 왕으로 추대한 것다.  

  여왕의 총명함괴 예지력에 관한 에피소드(일화)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당태종이 보낸 모란 꽃 그림에 나비가 없는 것을 보고 다섯 살 때 모란이 향기가 없는 꽃이라고 했다는 사실이 있다. 개구리 떼가 궁전 뜰에 와 울어대는 것을 보고 백제군의 복병이 여근곡에 숨어있음을 정확히 안 사실도 그것이다.  훗날 자신의 죽을 날을 정확히 예언하기도 했다.

 기타 그분의 어질고  자비로운 인품을 을 알 수 있는 일화가 많다.  

 여왕이 왕위에 올랐을 당시 신라는 고구려의 남하정책과 백제의 중흥으로 큰 위협을 받고 있었다. 642년부터 백제와 고구려로부터 지속적인 침략을 받아 서쪽 변경의 성 40여 개를 빼앗겼으며, 한강 방면 거점을 끊임없이 공격 받았다. 특히 백제의 침공으로 낙동강 거점인 대야성까지 빼앗기는 수모를 당했다. 국가적 존립이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선덕여왕은 일본과 당나라에 사신을 파견, 이들과 외교적 방어선을 구축했다. 특히 당나라의 맹방이 되기 위해 매년 조공을 바쳤으며, 군사적 의존을 심화시켰다.   전국에 관원을 파견해 백성들을 효율적으로 다스렸으며, 주군(州郡)의 조세를 일년간 면제해주는 등 일련의 시책으로 민심을 수습했다.   혼란한 시기였음에도 이때 3 국 중 신라는 찬란한 문화적 전성기를 이뤘다. 호국불교의 상징인 황룡사9층탑(皇龍寺九層塔)을 축조했으며, 금동미륵반가사유상, 첨성대 등 신라 시대의 대표적 유물들을 이때 만들었다. 

  선덕여왕의 가장 큰 업적은 인재등용이었다. 여왕은 먼저 자신과 왕위 계승권 경쟁을 벌였던 김용춘의 아들 김춘추를 자신의 오른팔로 등용, 외교 및 행정의 전권을 부여했다. 김춘추수는 이런 여왕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충성을 다했다. 

  멸망한 금관 가야의 왕족  김유신을 등용해 군사권을 맡기는 파격 인사를 단행했다. 김유신은 명목상 진골이었을 뿐 신라 귀족 사이에선 말 그대로 이방인, 비주류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신라 육군의 수장이 된 김유신은 고구려와 백제의 공격을 연이어 격퇴, 삼국 제일의 맹장으로 부상했다. 김춘추와 김유신은 이후 삼국통일의 주역이 되었다.  

  당태종은 “여자가 통치하기 때문에 침략이 잦다”라는 무례한 발언을 했다. 이는 신라 사회에 파문을 일으켜 647년 진골 귀족들이 여왕이 정치를 잘못한다는 구실로 반란을 일으키는 빌미로 삼았다. 이 사건은 김춘추와 김유신에 의해 진압되었다.  

  대표적인 사대주의 보수 정치인이었던 김부식은 훗날 삼국사기에 “여자를 임금에 올리고도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게 다행이다”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라는 식의 구절을 써 넣었다. 그러나 선덕여왕과 그 뒤를 이은 진덕여왕의 시기 신라는 국력이 절정에 달했다.  

  여왕은 평생 결혼하지 않고 후사도 남기지 못한 채 사망했다. 왕위는 선덕여왕의 사촌인 진덕여왕이 이어 다시 한번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았다. 

 

* 역사소설(희곡도 포함)을 쓰는 사람은, 불과 몇 줄밖에 기록되지 않은 역사를  가지고 작가가 상상력을 동원해 재미 있고도 기발한  대화들로 긴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것이다.  하나의 일화를 가지고 아주 긴 이야기를 지어내는 경우가 많다. 

 그 경우 인물들의 구체적이고 자세한 언행 등은 창작이되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게 쓸 수도 있고, 작가가 멋대로 재미 위주로  이야기의 50%-80%를  허구로  쓰는 경우도 있다.

 근래에 텔리비젼 연속극으로 방영한 선덕여왕은  선덕여왕의 총명함과 지혜와 어진 인품을 증명해 주는  일화들은 거의 쓰지 않았다.  흥미 본위로 사실보다는 황당무계하기까지한 내용이 더 많았고, 존재했는지조차 불화실한 미실이 마치 카리스마가 넘치는 주인공인 양 묘사했다.( 물론 두 여자 배우의 연기력 차이도 그렇게 오해하게 만드는데  일조했다)  그 연속극에 너무  엉터리 내용이 많아서 역사학자들이  분노했음은 물론 나 자신도  매우 분개했다. 그 연속극의 경우 선덕여왕이란 제목을 붙이지 말았어야 했다.

 그에 비해 중국 영화 "정복자"는 역사적 사실을 충실하게 썼으면서도 매회 재미는 물론 월나라 참모 범려의 의리와, 비상한 지혜를 배울 수 있었다.

출처 : 동시대동인회
글쓴이 : dks3633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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