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일보 / 2010.4.29(목요일)자
詩가 있는 풍경
발바닥
이언주
전복을 씻는다
칼등이 스칠 적마다 움찔거리는 발바닥
겹겹 눌어붙은 찌든 때가 밀려나온다
파도를 등에 지고 거친 바위를 걸었을
단단한 바닥 하얗게 드러난다
군데군데 부비트랩 숨어 있던 아버지의 길은
언제나 가슴 졸여야 했고
피딱지 엉겨 붙은 물집 잡힌 발바닥엔
뜨거운 슬픔이 고여 있었다
늦은 밤 고단한 아버지 몸이 앓는 소리에
단칸방 문풍지가 파르르 떨리곤 했다
있는 힘을 다해 껍질에 몸 붙인 전복
예리한 칼끝이 멍든 핏줄기를 건드렸는지
푸른 내장 주르르 흐른다
전복 등껍질 벗겨내자
주름 굳은 발바닥 내력이 읽힌다
때 절은 거뭇한 패각 안쪽에
아버지의 한 생애 어룽져 있다
◆시 읽기◆
아버지는 어떤 존재인가? 아버지라는 이름이 짊어져야 하는 삶의 무게를 등뒤에 숨기고,
굳건하고 의연하게 가족을 보호해야만 하는 이름, 언제나 그 자리에 우뚝 앉아 온 가족이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어주어야만 하는 아버지라는 이름...
시인은 손질하던 전복이 아버지의 발바닥을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칼집을 넣자 있는 힘을
다해 껍질에 몸 붙이는 전복, 껍질을 떼어내자 때 절은 거뭇한 패각 안쪽에 군데군데 드러
나는 부비트랩, 흡사한 아버지의 길.....언제나 혼자 가슴 졸여야 했던 아버지의 뜨거운 슬픔
의 한 생애가 어룽져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겹겹이 눌어붙은 고단한 일상의 찌든 때로 피딱지 엉겨 붙은 발바닥엔 깊이를 알 수 없는
사랑이 고여 있었음을 아는 것이다.
예리한 칼끝이 멍든 핏줄기를 건드렸는지 푸른 내장 주르르 흐른다.
아버지의 묵묵함을 열어보지 않고는 결코 알 수 없는 생애, 언제나 혼자 가슴 졸여야 했던
아버지의 뜨거운 슬픔과 사랑....
다듬고 있는 전복이 발바닥을 닮았다는 생각에 시인은 많은 아버지들의 생애를 입혀보는
것이다.
유 진/ 시인, 첼리스트<선린대학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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