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나무의 분노
법정
보라!
내 이 상처투성이의 얼굴을.
그저 늙기도 서럽다는데
내 얼굴엔 어찌하여 빈틈없이
칼자국뿐인가.
내게 죄라면
무더운 여름날
서늘한 그늘을 대지에 내리고
더러는
바람과 더불어
덧없는 세월을 노래한
그 죄밖에 없거늘,
이렇게 벌하라는 말이
인간헌장의
어느 조문에 박혀 있단 말인가.
하잘 것 없는 이름 석 자
아무개!
사람들은 그걸 내세우기에
이다지도 극성이지만
저 건너
팔만도 넘는 그 경판 어느 모서리엔들
그런 자취가 새겨 있는가.
지나간 당신들의 조상은
그처럼 겸손했거늘
그처럼 어질었거늘…….
언젠가
내 그늘을 거두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날
나는 증언하리라
잔인한 무리들을
모진 그 수성들을.
보라!
내 이 상처투성이의 처참한 얼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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