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도를 구하실 때는 어느 한 가지에 치우침이 없었습니다. 어떤 때는 고행외도
(苦行外道)한테 가서 무시무시한 고행을 다 했습니다. 부처님의 고행상(苦行象)을 보시면
알 수 있듯이 피골상접(皮骨相接)이라, 다만 앙상한 뼈만 남아 있을 정도로 고행을 많이
했습니다.
잡수시는 것은 하루에 일마척맥(一麻隻麥)이라, 한 일(一), 피마자 마(麻), 조각 척(隻), 보리
맥(麥), 한 조각의 피자마와 한 조각의 보리알, 이러한 것만 하루에 잡수시고 공부했다 하는
그런 식적(食的)인면에서, 음식이나 그런면에서도 극도로 고행을 하셨던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고행을 위한 고행은 지양(止揚)하고 또는 안일(安逸)을 지양합니다만 그래도 부처님께서
당초에 하신 것은 그야말로 고행을 위한 고행 정도로 심가한 고행을 하셨던 것입니다. 무상대도
(無上大道)를 위해서 위없는 길을 위해서 자기 몸을 불사르시고 희생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고행외도(苦行外道)에게서 배우고 배웠으나 역시 고행외도가 올라가는 길은 기껏 해야
욕계(欲界)를 초월해서 범천(梵天)에 가는 그런 길밖에는 안 되었단 말입니다.
부처님께서 바라신 바는 삼계(三界)를 해탈(解脫)하고 오직 참다운 자유인(自由人)이 되고자 했던
것인데 고행외도라 하는 것은 고행은 많이 하지만 기껏해야 욕계를 초월하는 길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욕계를 초월하는 길도 역시 허무한 길은 아닙니다. 그러나 욕계만을 초월해서는 안 되겠지요.
욕계를 초월하지 못하면 참다운 진리의 빛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 다음에 부처님께서 방문한 외도(外道)는 아라라가란(阿羅邏迦蘭)이라는 육사외도(六師外道)인데
이 분한테 가서 길을 물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무소유처(無所有處), 무색계(無色界)의 두 번째,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십니다만 우리 중생이 생사윤회(生死輪廻)하는 그러한 경계 세 가지가 있지 않습니까.
제일 밑에 욕계(欲界), 즉 음욕(淫慾), 식욕(食慾), 수면욕(睡眠慾)등 이러한 욕심이 주로 있는 세계가
욕계, 그 다음에 참다운 미세정 묘한 일체물질의 미묘한 그런 색(色)만 존재하는 색계(色界)가 있고,
그 위에 색은 없고 물질은 물론 그런 정묘한 색도 아무것도 없이 다만 심식(心識)만,인간의 영식(靈識)만
존재하는 무색계(無色界)가 있습니다.
이러한 욕계, 색계, 무색계를 우리 중생은 생사윤회합니다. 그런데 "아라라가란" 이라는 사람은 욕계를
떠나고 또는 색계를 떠나서 무색계, 무색계에도 네 개의 천계가 있는데 공무변처(空無邊處), 식무변처
(識無邊處), 무소유처(無所有處), 비상비비처(非想非非處), 이와 같이 네 가지 하늘을 희미하는 것인데,
그 가운데 세 번째 무소유처까지 올라가는 선법(禪法)을 공부한 분입니다.
부처님은 "아라라가란" 에게서 무소유처까지 올라가는 선법을 배웠습니다. 이것도 역시 사실은 쉬운
길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미 욕계를 초월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과거 전생에 무수한 세월
동안 선근(善根)을 심어서 거기에서 나온 선근공덕(善根功德)을 쌓았기 때문에 얼마 안가서 "아라라가란"
이 올라간 선법인 무소유처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역시 해탈(解脫)의 길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무소유처라 하는 것은 하늘에 올라가는, 즉
천상(天上)에 올라가는 법뿐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마음이 어디에도 막힘이 없는 그러한 해탈의
길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나는 해탈의 길을 구하니 여기에 머물수 없다."
면서 아라라가란에게
"당신보다 더 깊은 도를 아는 분이 어디에 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아라라가란이
"내 아들이지만 나보다 더 높이 올라간 분이 우다카다."
라면서 우다카한테 가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다카한테 가서 법을 물으니 우다카는 중생이 생사윤회
하는 삼계(三界) 하늘 중 가장 높은 하늘인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있었습니다. 이 하늘이 삼계
에서는 가장 높은 하늘입니다.여기에 올라가는 선법을 공부했습니다. 벌써 무색계의 세 번째 하늘인
무소유처(無所有處)까지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께서는 올라가셨으니 거기서 한 발짝 위인 비상비비
상처까지 올라가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삼매(三昧)에 드셔서 그냥 올라가셨단 말입니다. 이와 같이 삼계에서 가장 높은 하늘인 비상비비상처라 하는 그런 천상에 올라가는 법, 즉 삼계에서 가장 높은 하늘인 동시에 수명(壽命)이 팔만대겁(八萬大劫)인 천상입니다. 겁이라는 것은 무량세월 아닙니까. 그런 팔만대겁까지 살 수 있는 처(處)입니다.
그렇게 오래 산다 하더라도 역시 인연(因緣)이 다하면 그 천상에서도 미끄러져야 합니다. 다시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중생계의 그러한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에는 욕계가 있으나 색계에 있으나 무색계에 있으나 어느 하늘에 가나 또는 제 아무리 안락하고 모든 것이 다 풍족하지만 결국은 인연이 다하면 다시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구하시는 길은 죽음이 없는 생사가 없는 영원한 해탈(解脫)의 길입니다. 죽음이 있다든지 기타 번뇌(煩惱)가 있으면 해탈의 길이 아닌 것입니다. 해탈의 길은 영생불멸(永生不滅)의 길입니다. 오직 영생불멸의 길만을 구하는 것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하나의 구도심(求道心)인데,이러한 무색계의 가장 높은 하늘, 중생계 가운데는 가장 최상천인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까지 올라갔다 하더라도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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