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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一. 무상정변지 (無上正遍智) - ①

맑은물56 2010. 5. 12. 16:02

  一. 무상정변지 (無上正遍智)

 공부를  할때 주문, 화두, 염불,기타 어느 부처님 법에 입각한 법을 선택했으면

그 한계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공부가 머물지 않고 무상정변지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납월팔일(臘月八日) 성도절(成道節)은 우리

인류사회(人類社會)에 있어서나 또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 시방세계

(十方世界)에서 가장 의의(意義) 깊은 날입니다. 어째서 그런가 하면 인간의

무명(無明)을 헤치고서 참다운 무상정변지(無上正遍智), 위없는 깨달음, 가장

중정(中正)한 도리를 깨달은 날이 오늘이기 때문입니다.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이 하나의 육신(肉身)으로 태어난 날은 사월초파일

(四月初八日)이지만 부처님의 참다운 법신(法身), 법왕(法王)으로 태어나신 날은

바로 오늘 십이 월 팔 일, 즉 납월팔일입니다.

  오늘이 아니었던들 인류사회는 무상정변지, 위 없는 그런 중정한 길을 알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진리(眞理)를 어렴풋이 알았다 하더라도 진리의 그런 구경각

(究竟覺)까지 다 알 수 있는 무상정변지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납월팔일로 해서, 즉

하나의 법왕으로 해서 대각(大覺)을 성취하신 이 날부터 비로소 비롯된 것입니다.

  진리를 자기 신명(身命)을 내걸고 구해보지 않은 분들은 진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모릅니다. 또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무명으로 헤매다가 그 무명 때문에 인간이 가지

가지의 그런 죄업(罪業)을 지어서 심각한 인생고(人生苦)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처절한 인생고를 맛보지 않은 사람들은 진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모릅니다.

  진리를 모르기에 우리 마음이나 이 세계는 어두운 암흑(暗黑) 가운데 항시 쌓여

있는 것이고, 또는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길을 몰라서 가지가지의 그런 삼업(三業),

많은 악업(惡業)을 행한단 말입니다. 악업을 행하면 그에 상응한 고(苦)를 우리가

받는 것입니다.

  이러한 무명과 그 무명으로 인(因)해서 짓는 업(業)으로 인해서 받는 고(苦), 무명은

혹(惑) 그러는 것인데 그런 미혹(迷惑)된 무명과 미혹으로 해서 우리가 짓는 여러 가지의

번뇌(煩惱)와 또 번뇌로 인해서 행(行)하는 신구의(身口意)삼업, 몸으로 짓는 행동(行動),

입으로 짓는 망어(妄語), 우리 뜻으로 짓는 무명업(無明業), 이러한 것들이 모두가 쌓이고

쌓여서 인생에 가지가지의 고뇌(苦惱)를 초래합니다.

  이러한 혹업고(惑業苦)는 전전(轉轉) 무변(無邊)해서 끝도 갓도 없이 영원히 인류를 윤회

(倫廻)의 수레바퀴 가운데 몰아넣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한 혹업고, 삼업을 벗어나는 길이

비로소 부처님의 성도(成道)로부터 열렸습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으실 때는 안이(安易)하게 깨달으신 것이 아니라 육년고행이라 하는 심각한

고행을 거쳐서 개달으신 것입니다. 또 육년고행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세월 동안 불교

말로 하면 이른바 삼아승지겁(三阿僧祗劫)이라 하는 과거에 무수무량생(無數無量生)을 거듭

하면서 선행(善行)을 샇고 자기 몸을 희생(犧牲)하곤 했던 것입니다.

  어떤 때는 굶주린 범 새끼를 구제하기 위해서 자기 몸을 던지기도 했고, 어떤 때는 그 중생

(衆生)의 고뇌를 구제하기 위해서, 중생의 빈곤을 구제하기 위해서 바닷물을 품어서 바다

속에 들어 있는 용왕(龍王)이 간직한 마니보주(摩尼寶珠)를 찾기 위해서 끝도 갓도 없는 노력을

한 적도 있습니다. 여하튼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몇 천 번 자기 몸을 바치고, 어떤 때는 (道)를 얻기

위해서 자기 눈을 바치고, 자기 사지(四肢)를 바치고, 이러한 희생적인 행동을 무수히 해왔던 것

입니다.

  이러한 과거 무량세월의 자기희생적인 보살행(菩薩行)은 물론 금생에도 영화로운 왕자(王子)로

태어나서도 육년고행과 같은 심각한 고행을 거쳐 왔습니다.

출처 : 성륜사
글쓴이 : 사랑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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