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역사 이야기

茶山과 秋史, 편지로 '조수 차'를 논했네

맑은물56 2010. 3. 24. 16:44

茶山과 秋史, 편지로 '조수 차'를 논했네

 

입력 : 2010.03.23 23:19 / 수정 : 2010.03.23 23:23

다산이 제자 이름 빌려 추사에게 쓴 편지 첫 발견
'완당전집'에 실린 편지와 짝

다산 정약용(1762~1836)이 전남 강진 유배 시절인 1813년 제자 이강회(1789~?)의 이름으로 추사 김정희(1786~1856)에게 보낸 친필 편지 1통이 발견됐다.

한문학자인 정민 한양대 교수는 "다산과 그 제자들의 연구성과를 오랫동안 추적해온 김영호 전 산업자원부 장관이 1970년대에 충남 예산 추사 고택에서 구한 자료"라며 "제자의 이름을 빌려 쓴 다산의 편지가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이 편지는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다산과 추사의 조수(潮水) 차에 대한 학술 토론, 다산 학단 제자들과 추사와의 왕래, 그리고 청나라 학자 옹방강의 '복초재집(復初齋集)'을 비롯한 여러 물건들이 해남 대둔사로 오게 된 경위 등을 담고 있다.

다산 정약용이 1813년 제자 이강회의 이름을 빌려 추사 김정희에게 보낸 편지.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조수 차에 대한 다산의 견해다. "조수의 조만(早晩)은 지방에 따라 같지가 않습니다. 큰 바다 가운데라면 매번 달이 뜰 때에 조수가 같이 생겨났다가 달이 질 때에 조수가 또 솟아오르게 됩니다. 대개 조수의 형세는 본시 큰 바다에서 일어나 흐름을 따라 항구로 들어오므로 에돌아 굽이쳐서 먼 데로부터 옵니다. 두 머리가 늘 바다 위에 있으면서 하나는 달의 앞잡이가 되고 하나는 달의 뒷배가 되어 항상 큰 바다에서 쉬지 않고 돌아듭니다."

정민 교수는 "이 부분은 '다산시문집' 제19권에 실린 '답김원춘(答金元春)'(원춘은 추사의 자)을 통해 '다산시문집'과 추사의 '완당전집'에 각각 한 통씩 실려 있는 편지가 서로 간의 문답 서신이며 그 작성 시기는 1813년이고, 창작 연대가 분명하지 않았던 '해조론' 5편도 1813년 이전에 지어졌음이 처음 확인됐다"고 말했다. 문집에 실린 다산의 편지는 앞뒤가 생략된 채 조수에 관한 내용만 있어서 그것만으로는 '완당전집'에 실린 추사 편지와의 관련성을 알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정민 교수는 "다산이 유배 해제를 기다리던 민감한 시기라서 주변의 오해를 피하기 위해 제자 이강회 이름으로 편지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면서 "편지 끝에 이강회 등을 시켜서 베껴 보내게 했다는 표현이 있고, 이강회보다 여섯살이나 위인 정학연을 아랫사람 대하듯 하는 표현이 나오는 것 등을 보아 다산이 쓴 편지가 확실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