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의 인연 - 최인호 에세이
최인호 지음, 백종하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2월

나의 인연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본다. 누구나 정해진 관계속에서 각본대로 미리 짜여진 인연을 만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생각해보면 인연은 누구에게나 서툴고, 미흡하게 다가와 어느새 그 서툰 것들로부터 익숙해지는 것이 바로 인연이 아닐까 싶다. 사람과의 인연, 사물이나 시간, 자연과의 인연, 그리고 낯설음에 대한 인연...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서서히 인연에 물들어가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인생이 아닐까? 세월이 흐를수록 더 많은 인연을 만나게 되고, 또 더 많은 이별도 경험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세상은 어쩌면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인연과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인연이 있어야 이루어지는 법이고, 생각해보면 이 세상 모든 순리가 인연대로 흐르는듯 하다. 억겁의 세월을 건너 나에게 온 사람, 실로 오래간만에 마주할 수 있었던 최인호 작가는 인연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최인호의 인연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이미 이 책의 느낌이나 내용은 상관없이 무조건 읽어봐야 할 책이란 생각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선택해서 읽게 된 책이다. 그의 대표작들을 나열하다보면 책과 그리 가깝지 않은 사람들에게조차 그의 이름은 무척이나 친숙하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이미 그는 한국 현대문학의 기념비적인 작품들을 선보이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작가로 그렇게 자리매김해왔다.



인연이란 단순히 사람과 사람사이의 그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책을 읽다보면 작가 최인호의 개인적인 인연도 만나볼 수 있고, 삶과 행복, 가족과 사랑, 외로움과 사색 등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감정과 생각으로 느낄 수 있는 인연을 참 많이도 만나볼 수 있었다.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가지런히 쌓여있는 장작, 항아리 위에 소복히 쌓인 눈, 드높은 가을 하늘과 흐드러지게 핀 봄꽃에 이르기까지 우리와 인연이 맞닿아 있는 세상의 모습은 인연이란 이름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청명하고, 맑은 자태의 모습들이었고, 가까이 있었기에 느끼지 못했던 소중한 인연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도 즐길 수 있었다.
이제 책을 덮으며 나는 한 가지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영원한 사랑의 존재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영원한 인연은 반드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나를 둘러싼 세상의 수많은 인연은 내 인생이 더욱 빛날수 있도록 반짝이고 있으며 나와 인연을 맺고 있는 그 무엇이라도 내 인생이 그 인연 덕분에 더욱 찬란히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었다. 새삼스럽게 주위의 사소한 것들과의 인연까지도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작은 인연 하나하나가 너무나 고맙고, 소중한 것이란 사실을 다시 한 번 깊이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날 수 있었던 최인호 작가의 책은 기대한 것 그 이상의 따뜻함과 풍요로움을 선물해 주었고, 소중한 나의 인연에게 꼭 선물해주고픈 책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