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인의 흰고무신
이시영
그날 밤은 모든 것이 예정된 것처럼 보였다. 폭우 속을 뚫고 김사인이가 왔
었고 흰 고무신을 신고 있었고 새로 막 시작된 술자리가 새벽으로 이어지고
있을 때였다. 천둥소리 속에 밖에서 누가 희미하게 나무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놀란 설연이가 귀를 쫑긋 세우고 달려가 문을 열었더니 송기원과
나의 처가 거센 빗줄기 속에서 기세등등 들이닥치고 있었다."복희년 나오라
고 그래!" 바로 그때였다. 나와 송 사이에서 묵묵히 고개를 떨구고 있던 사
인이가 갑자기 일어나 문밖으로 내빼는데 흰고무신을 신은 발이 비호처럼
빨랐다. 그리고 빗속을 번개처럼 가르며 사라졌다.복희씨가 졸린 눈을 뜨기
도 전에, 송과 나의 처가 시퍼렇게 걷어붙인 팔을 풀기도 전에 일어나 아주
순식간의 일이었다.
출처 : 삶을 시처럼 시를 삶처럼
글쓴이 : 유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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