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논술 따라잡기

나를 변화시킨 책 .......... 마광수

맑은물56 2009. 9. 14. 12:24

나를 변화시킨 책 .......... 마광수



인생의 시련기를 겪을 때마다
그 책으로 위안을 받거나 힘을 얻을 만큼 감동을 받은 '딱 한 권의 책'은 사실상 없다.
기독교인이라면 그런 책으로 <성경>을 꼽을 수도 있겠고, 불교인이라면 <불경>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로서는 그렇지 못했다.
성경이나 불경을 발췌해서 읽으면 어느 정도 위안을 주는 구절을 얻어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둘 다 전체적으로는 지나치게 소극적인 인생철학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최근에 철학에세이 <비켜라 운명아, 내가 간다>와 <인간>을 써서 출판하여
내 스스로 위안과 용기를 얻어보려고 했는데, <즐거운 사라>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폐쇄적인 봉건성과, 도덕을 빙자한 폭력에 대해 처절하게 절망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동안 여러가지 시련을 겪을 때마다 나름대로 위안을 준 책들은 많았다.
결혼 후 이혼의 고비를 맞아 고통에 시달릴 때는
<성의 변증법>(화이어스톤 저. 풀빛 간)이 그런대로 위안과 용기를 주었고,
육체적 질환으로 괴로울 때는
<생명의 실상>(谷口雅春 저. 태종출판사 간)이 일시적으로나마 용기를 갖게 했다.

그리고 직장이나 사회의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가학적 매도나 중상을 당해 괴로울 때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이론들이 상당한 위안을 주었다. 겉과 속이 다르게 행동하며
이중적 자아분열로 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직접적으로 내게 영향을 미친 책을 꼽으라면,
문학인이기 이전에 자유롭고 합리적인 개방적 사고의 유포를 위해 노력하는 나에게
가장 인상깊게 읽힌 책은 에리히 프롬이 쓴 <환상의 사슬을 넘어서>가 될 것 같다.
이 책에는 '프로이트와 마르크스와의 만남'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한국어 번역본은 <프로이트냐 마르크스냐>로 제목이 붙어 문학세계사에서 나왔다.

에리히 프롬이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은 '창조적 불복종'이다.
그는 신에 대한 이브의 배반과 프로메테우스의 배반이 인류의 진보를 가져왔다고 말한다.
그리고 근대 이후 가장 '창조적 반항'을 보여준 인물로 마르크스와 프로이트를 꼽고,
이들이 자신의 사상에 미친 영향들을 기술한다.

그는 마르크스가 구소련 같은 관료적 공산독재를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고 변호하면서,
'자유로운 개성인'이 창조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그의 목표였다고 설명한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무의식의 근원을 폭로하여 도덕이라는 환상을 제거해 버리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자유'의 획득을 위해 창조적으로 반항한 대표적인 인물로 상찬(賞讚)되고 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창조적 불복종'의 개념을 얻어내게 되었고, 그것은 '금지된 것에의 도전'이
곧 문학의 본질이라고 믿어온 내게 커다란 용기와 위안을 갖게 했다.

물론 내가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의 생각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던져준 화두(話頭)가 좋게든 나쁘게든
인류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감안할 때 프롬의 견해에 수긍이 갔던 것이다.

<환상의 사슬을 넘어서>와 비슷한 감동으로 다가왔던 책은
버트런드 러셀이 지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와 카뮈의 <반항인>이다.
이 두 책 에서는 '창조적 불복종'의 개념이 크게 강조되지 않았을 뿐,
한결같이 미신적 사고의 타파와 주체적 반항의 중요성을 얘기하고 있다.

나는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를 대학교 때 읽고 예수를 신의 아들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특히 성을 무조건 죄악시하는 금욕주의적 교리의 폐해에 대해
입장을 분명히 하게 되었다.
또한 <반항인>을 통해 '문학적 반항'의 소중함에 대해 인식을 새롭게 하게 되었다.

프롬이나 러셀, 그리고 카뮈 등의 생각은 말하자면
지식인의 '반골정신(反骨精神)' 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반골정신의 뿌리는 어떻든 '합리주의적 사고'이고 서양의 근대화를 촉진시켜준 패러다임이다.

요즘 우리나라엔 '합리'와 '이성'의 시대가 이미 갔다고 주장하는 지식 인들이 많은데, 실로 답답한 노릇이다.
내가 보기에 지금 한국 지성계의 수준은 합리주의의 시대조차 아직 못 맞고 있는
근대 이전의 미신적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사람들은 책을 너무 안 읽고 있다.
그래서 몇 권의 책을 소개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