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 창작 교실 제 11 강 (2009.7.18)
@ 습작시 강평
- 형광등 / 박미림
날마다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것이 일상인데
요즘은 현기증 때문에 머리를 자주 짚어보게 된다
나이 들 수록 뼈가 녹아내려
키가 작아진다는 사람들처럼
단단히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
내가 내려다보면 위안을 얻었던 사람들
정수리가 어느새 휑해져있다
그들도 나처럼 지구 한 축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으려고
너무 오래 매달려 있었나보다
오래 산 덕분에 부속이 녹아나고
어지럼증이 나아지지 않고 있다
내가 정수리 머리카락을 세던 사람들도
기운이 없는지 바닥으로 더 밀착해 가고 있다
아무리 스위치를 켜도 켜지지 않는 나처럼
가지런히 두 손을 모은 사람들이
더 이상 추락 할 곳이 없다는 듯
침침해진 눈으로 자꾸만 나를 바라본다
===> # 강평 : 조명기구가 다양화 되기 전엔 형광등과 백열등 두가지만 있었다.
예전에 살던 집 창고에는 꼭등(소리 못 내는 귀뚜라미), 소금자루 같은 것이 있었는데
나름대로 전등에 관한 추억이 다들 있을 것이다.
이 시는 제목과 정황 간에 구체적 접점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다.
앞 부분의 주체는 화자(나=형광등)인 것 같다.
뒤는 형광등을 대상으로 보고 있으니 통일 시켜야 한다.
2행 부터 5행 까지 점점 말이 커지고 있다.
구체적 정황을 보여주면 좋겠다.
형광등이 발광해 줘야 되는데 비추임을 받고 있는 상황 같은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8,9 행은 인상적인 부분인데 더 인상적으로 만들어 보자.
8행~ 11행 " 그들도 나처럼 지구 한 축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으려고
너무 오래 매달려 있었나보다
오래 산 덕분에 부속이 녹아나고
어지럼증이 나아지지 않고 있다 " 는 내용적으로 틀린건 아니나 시는 '표현'이다.
표현의 문제가 걸린다.표현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 하면 자기가 받은 느낌이 크다 해도
제대로 전달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구체적인걸 강조하는 건 그래야 보인다는 것이다.
12 ~ 13 행은 정황의 구체성에서 보면 막연하다.
"밀착" 같은 표현은 딱딱한 단어다.
14행 부터 마지막행 부분에서 형광등에 대한 형상화가 드러나는데, 앞의 부분은 모호하다.
13 ~ 17행을 차라리 젤 앞에 드러내 놓고 시작을 하면 좋겠다.
형광등을 바라보면서, 형광등의 입장에서 보면, ... 정황 연상, 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종교적 경전을 보면 내용들은 좋으나 표현들이 구체성이 거의 없다.
법구경을 보면 사랑도 미움도 만나지 말라란 구절이 있는데 구체성은 없다.
시가 핵이라지만 시라는 것은 구체를 통해서 핵을 품어줘야 된다.
현장의 사실에 대해서 두려워 말라.
시적인 포장을 하려는 것이 부자연 스러운 것이다.
발견했고 들여다 봤다는 것이 시가 되는 것이다.
소설적인 상황 묘사는 치밀하고,재현(再現)의 의미가 강하나
시적 묘사는 함축적인 인상이나 의미를 담고 있다.
인상적인 이미지를 드러내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그래서 제한적이다.
빛을 발광하는 것은 멍울의 어둠이다. 오래 된 형광등 양 끝에 멍이 생긴다.
단순한 멍이 아니라 빛을 만들기 위한 멍이다.
형광등은 단순한 대상일 뿐이 아니라 삶의 이행의 대상이 된다.
형광등 안에서 위안의 대상이 있다.그것을 발견할 수 있다.
겉으론 불이 꺼졌지만 서로 간의 소통 때문에 서로의 내면은 환해진다.
이 시는 전반적인 활유화가 일어나지 않아서 모호해 졌다.
확실하게 활유화 하면 좋은 시가 되겠다.
일물일어(一物一語) 이긴하나 시인은 또 다른 이름을 지어야 한다.
이름을 지정하는 건 범위를 축소 시키는 것이다.
- 망울 터지지 않는 불심
동네 어귀
횡단보도를 끼고 있는 난전을 지나는데
파란 연잎 위에
술 달린 노르스름한 연꽃이 옹기종기 피었다
지팡이 짚고 벙거지 모자 쓴 할머니가
햇볕 등지고 펼친 보자기 곁에 앉았는데
개 한 마리 발 모아 배 깔고 누웠다면
지장보살도였으리
마트에 들어서니 식품 판매대에는
좀 전 길거리에서 본 것이 또 있어
껍질을 재껴보니 전구 불빛을 받아
수염 낀 가지런한 이빨들이 윤기 반들반들하다
연꽃은 매대 가득 옥수수로 환생했으니
대형할인 되는 인심 앞에서 사라지는
망울 터지지 않는 불심이여
===> # 강평 : 제목에 있는 불심은 관념어라 차라리 빼는게 좋다.
시 적인 point는 환생인데 구체적으로 짚어주는 것이 좋겠다.
1연 5,6행은 표현이 겹쳐있는 부분이 있고, 필요 없는 구체는 빼도 좋다.
" ~고 ", " ~데 "는 표현 약화다.
'벙거지 쓴 할머니가 햇볕 등지고 보자기를 펼쳤다' 정도로 정리하면 된다.
또 일반적인 정황으로 할머니가 지장보살로 보일까?
2연 3행 "전구"는 불빛과 겹치니 제외 하는게 맞고,
4행 " 수염 낀 가지런한 이빨들이 " 는 간추림이 필요하다.
마지막 행 불심이여는 빼고 여운을 남기는게 좋겠다.
활유화를 시켜보자.
언뜻 봤던 '웃고있는 옥수수를 보니 연꽃으로 비춰진다'
순간적으로 본 것들이 동시적으로 환생하는 것!
'방금 개들도...'
연꽃, 할머니, 마트 옥수수, 개가 경계 없이 서로 드러나는 방식.
익사한 시체의 마지막 정리는 새우가 하는데, 새우를 먹는다면 경계가 없다.
경계 없는 사유를 널어본다.
서로의 후생을 살아주는 것이다.서로의 전생을 들여다 보는 관점이 중요하다.
바위는 모래의 전생이고, 연꽃은 식물성 만이 전생이 아니니 뱀도 된다.
내 안에는 웃음같은 꽃만 피는게 아니라 욕망의 짐승이 될 수도 있다.
전생이 스며들었으나 망울이 터지지 않는...
@ 좋은시(비교시) 감상 & 평가
- 주산지 왕버들 / 반칠환
누군들 젖지 않은 생이 있으랴마는
150년 동안 무릎 밑이 말라본 적이 없습니다
피안은 바로 몇 걸음 밖에서 손짓하는데
나는 평생을 건너도 내 슬픔을
다 건널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신은 왜 낙타로 하여금
평생 마른 사막을 걷도록 하시고,
저로 하여금 물의 감옥에 들게 하신 걸까요
젊은 날, 분노는 나의 우듬지를 썩게 했고
절망은 발가락이 문드러지게 했지만,
이제 겨우 사막과 물이 둘이 아님을 압니다
이곳에도 봄이 오면 나는 꽃을 피우고
물새들이 내 어깨에 날아와 앉습니다
이제 피안을 지척에 두고도 오르지 않는 것은
나의 슬픔이 나의 꽃인 걸 어렴풋이
알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 # 강평 : "슬픔", "분노", "절망" 같은 표현이 큰 말이긴 하지만 구체적으로 연결했다.
삶이란 해탈 보다, 겪어서 살아 가는 것이다.
- 죽은 사람도 늙어간다 / 송재학
울 어머니 매년 사진관에 다녀오신다
그곳에서 아버지 늙어가시니
어머니 미간의 지층을 뜯어내면
지척지간 아버지 주름이다
굵은 연필이라면 머리카락 몇 올 아버지 살쩍에 옮겨
늙은 목탄풍으로 바꾸는 게 어렵지 않다지
그때마다 깃 넓은 신사복은 찡그리면서
아버지, 어머니 그림자처럼 늙으신다
하, 두 분은 인중 닮은 이복남매 같기도 하고
오누이 같기도 하고
어머니의 고민은 할미의 얼굴로
어떻게 젊은 남편을 만나느냐는 것이지만
하, 이별의 눈과 입도 한 사십 년쯤 되면
다정다감하거나
닳아버리고
걱정하면서도
설렌다,
라고 되묻는 식솔들이 생기나 보다
집이 생긴 별의 식솔들도 따라오나 보다
===> # 강평 : 이 시를 인용한 이유는 죽으면 늙지 않는다를 엎고 있다는 점.
시는 사실을 뛰어 넘은 것이다.
사실에서 뛰어 넘는것을 발견!
- 씨눈 / 이정록
민달팽이는
촉수가 눈이다
멀리
천천히
내다보려고
허공에다
두 눈망울을 올려놓았다
제 몸을 布施해야할
피치 못할 경우, 민달팽이는
두 눈을 몸 안으로 들여놓는다
순간, 민달팽이의 몸은
눈꺼풀이 된다
벙어리장갑이 된다
껍데기는 말고
이 알맹이를 드시라고,
허공에 내다놓았던 두 눈을
씨앗인 양 들여놓는다
===> # 강평 : 이정록 시인 만큼 관찰을 통해 진술적 결론에 도달하는 시인도 드물다.
생각과 관찰이 동시 진행이고 안과 밖이 따로따로가 아니다.
'양파는 껍질로 채운 속이다'
고정관념으로 시 쓰는 사람은 사고를 유연하게 가져야 한다.
5연은 비유다.활유화는 수사의 기법이 아니라 시의 본질적 수단이다.
- 월훈 / 박용래
첩첩 산중에도 없는 마을이 여긴 있습니다. 잎 진 사잇길, 저 모래 둑, 그 너머 강기슭에서도 보이진 않습니다. 허방다리 들어내면 보이는 마을.
갱(坑) 속 같은 마을. 꼴깍, 해가, 노루꼬리 해가 지면 집집마다 봉당에 불을 켜지요. 꽁깍지, 꽁깍지처럼 후미진 외딴집, 외딴집에도 불빛은 앉아 이슥토록 창문은 모과(木瓜) 빛입니다.
기인 밤입니다. 외딴집 노인은 홀로 잠이 깨어 출출한 나머지 무를 깎기도 하고 고구마를 깎다, 문득 바람도 없는데 시나브로 풀려 풀려 내리는 짚단, 짚오라기의 설레임을 듣습니다. 귀를 모으고 듣지요. 후루룩 후루룩 처마깃에 나래 묻는 이름 모를 새, 새들의 온기를 생각합니다. 숨을 죽이고 생각하지요.
참 오래오래, 노인의 자리맡에 밭은 기침 소리도 없을 양이면 벽 속에서 겨울 귀뚜라미는 울지요. 떼를 지어 옵니다. 벽이 무너지라고 옵니다. 어느덧 밖에는 눈발이라도 치는지, 펄펄 함박눈이라도 흩날리는지, 창호지 문살에 돋는 월훈(月暈).
* 문학사상(1976)
===> # 강평 : 월훈(月暈)은 달무리를 말한다.
눈물의 시인 이라는 박용래 시인의 전통적 서정시의 맥락을 잇는 시다.
" 외딴집에도 불빛은 앉아 "에서
'앉아' 라는 동사 서술어를 '비춰' 라는 식으로 표현하면 시는 절단난다.
" 시나브로 풀려 풀려 내리는 짚단, 짚오라기의 설레임을 듣습니다. 귀를 모으고 듣지요.
후루룩 후루룩 처마깃에 나래 묻는 이름 모를 새, 새들의 온기를 생각합니다. 숨을 죽이고 생각하지요. "
활유화가 일어나는 구절이다. 죽은 사물에게도 유연성이 있다.
" 노인의 자리맡에 밭은 기침 소리도 없을 양이면 벽 속에서 겨울 귀뚜라미는
울지요. " 는 표현은 벽속과 귀뚜라미는 인과관계가 없으나 시 속에서는 인과 관계가 된다.
" 떼를 지어 옵니다. 벽이 무너지라고 옵니다. " 이 부분은 표현이 절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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