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문학 강의실 '징'

[스크랩] 창작 교실 6월 13일 강의 요점 정리

맑은물56 2009. 6. 22. 10:17

징 창작 교실 제 6 강 (2009.6.13)

 

@ 습작시 강평

 

   - 무덤에 갇힌 그리움 / 정윤호


     갈대밭을 흔드는
     밤바람의 흐느낌은
   
     부서지는 모래무덤처럼
     흩어져 사라지고

 

     안을 수 없는 다한 열정이
     내 삶을 뒤흔들고 간다

 

     하늘을 돌며 자유로운 저 새들은
     날 위해 곡조라도 읊으려 하는가

 

     죽어가듯 힘겨움으로 전하는
     무덤 속 같은 싸늘한 몇 마디가

 

     이 밤을 아픔으로 꼬박 세워
     목메임으로 온밤을 지새운다

 

     무덤을 뒤덮은 어둠은 지나 한낮이 되어도
     애절한 당신에게 달려갈 수 없는 현실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밤바람에 몸을 실어
     하늘을 맴돌며 울어대는 새들처럼

 

     풀벌레와 합창하며 울어대는
     죽어버린 그리움 때문에

 

     바위에 부딪혀 사라지는 거품인양
     바람에 젖고 파도에 떠밀려
     부서지는 무덤 앞에 울고 간다


 ===> # 강평 : 시의 주제가 제목에 들어 있다.
                    전체적으로 들어나 있어 보인다. 시는 사실 감추는 방식인데!

                    첫연의 '흐느낌'  6연의 '목메임' 같은 감상적인 부분의 대상은 사실 무덤이다.
                     5연의 '무덤 속 같은 싸늘한 몇마디가' 이 부분은 표현은 강렬한것 같으나 
                     느낌이 전달되기엔 부족하다. 보여주는 표현이 되어야 한다.
                     6연의 '애절한 당신에게 ~ 현실에' 이 부분은 산문이다.

                     전체를 흐르는 '갈대, 하늘, 새, 밤, 어둠, 한낮, 풀벌레' 같은 시어는
                     무덤 주변에서 취할 수 있는 사물이다.
                    이런걸 통해 서로 연결해서 무덤을 표현 하는건 어떨까!
                    화자가 얘기 않더라도 이런 사물로 죽음을 보여줄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무덤에 오기 전 부터 갈대는 흔들리고 있었고,
                    새는 비석에 똥을 누었다는 식으로 간접적으로 무덤을 드러내면 좋지 않을까...

                    [이정록]의 시에 보면 '유가족은 무덤에 잇어 가장 큰 단골이다'란 구절이 있다.
                    이런 식으로 무덤을 의인화 시키는게 낫겠다.
                    가령, '무덤이 외로워서 풀벌레를 키웠다' 는 식으로...

 

                    시는 사실 대단히 객관적인 것을 요구한다.

                    사람의 주검을 흙 속에다 흩어버린 생각을 해야한다.
                    무덤은 가장 분별심을 가지지 않는걸 사실 끌어 안는다.
                    사람은 벌초하고 잡초도 뽑지만, 무덤도 살아가는 존재가 아닐까?
                    이것이 무덤의 마음일 것이다.
                    이런 형태로 생각을 해 보면 좋지 않을까 !

 

                    무덤은 소멸이 아니다 라고 사유하는게 시의 자세다.
                    무덤이 뱀이나 쥐를 가지지 않듯,무덤 구멍은 무덤이 숨 쉬는 것이라 표현한 시인도 있다.

                    무덤지기(관리인)의 죽음은 어떤 것일까?
                    그 사람은 일상이 죽음인데, 죽음을 관리하는데, 죽음을 통해 살아가는 직업의 아니러니 !

                    무덤에 대해 참 다양하게 생각 해 볼 여지가 많다.
                    화자의 무덤 속에 망자에 대한 생각 이전에 무덤에 대한 느낌을 보여주자.
                    예를 들면 봉분에 술을 붓는다는 것은 그리움을 담은 정황이 된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보면, 참으로 여러가지 정황이 잘 나타나 있다.
                    무덤으로 향하는 과정 등이 필요하다.
                    시는 "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하면 시가 되지 않는다.
                    산이 나인걸 통해 산을 얘기해야 한다.

                    어느 시를 보면 장마로 비석과 시신등 모든것이 흘러내려 산 아래로 떠내려 와서 있는데
                    주변 돼지 막사의 돼지가 나와서 시신이나 비석 주위를 돌아다니는걸 표현한 시가 있다.
                     죽음의 아이러니인데, 죽음은 현실이라는 뜻이다.

                     황동규 시인의 "風葬"(문학과 지성사)을 추천한다.
                     죽음에 대한, 일상에 편재해 있는 죽음을 풍장이란 시집에서 보았다. 
                     죽음을 너무 권위적으로 엄혹하게 보면 안 된다.

 

               우리는 어떤 감정을 느끼고 생각을 하여 쓰는 시 이지만 거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야 한다.
             물고 늘어져서 없는 생각, 안 된 생각, 덜 떨어진 생각이라도 자꾸 하다 보면
             나중엔 실제의 생각이 된다.
             버릴게 없는게 사유다. 사유는 자기 고유한 생각을 심는것이다.
             청설모가 요즘 산에 가면 많다. 이는 귀화종(외래종)인데 토종인 다람쥐를 
             외려 청설모가 내쫒고 텃새 노릇을 한다.그런 이치다.
             당연한 것은 죽어있는 것이다. 당연하지 않아야 살아있는 것이다.

 

 


              

    - 사람이 제일 두렵다 / 대덕 산인


       태고의 기억 켜켜이 간직하며 감춘 몸도
       살과 뼈 후벼 파져 해와 달 앞에 꿇리니
       화석의 침묵 안거는 해제 되었다
    
       몸은 바람구멍 뚫려 어디든 끌려가는 신세에
       날 태워 죽일 때 마다 수행 공덕 없이 독기 피워
       명줄 여럿 끊게 해도 소용없었다

       산 턱밑 동네로 질통에 업혀가
       아궁이 두른 젖은 운동화에 내 목숨이 말랐고
       냉기 품은 구들장에 내 외로움이 같이 했으며
       석쇠 살 사이로 고등어의 영혼이 나를 면회 했다
       담벼락 한 모퉁이에 놓인 희멀건 내 시체는
       취객들 오줌발에 적셔져 소릴 죽이며
       담 너머 집주인 기분 상할 일을 덜어줬다
       빙판길엔 갈가리 찢어진 내 시신이 뿌려졌고
       화풀이 발길질에도 묵묵히 채였다.

       싼 몸값에 덤으로 추억이 붙어 찾는 이들 여전한데
       더는 사람 보지 않고 온전히 삼매에 들 날 언제런지
       참선의 잠 깨우는 사람이 세상에 제일 두렵다.

 

 

 ===> # 강평 : 너무 어렵다. 쉽게 쓰는게 좋겠다.
                    연탄이 소재라고 하니 부제를 다는게 좋겠다.

                    1연  첫 머리 '태고의 기억' 은 굳어있는 말이다.그래서 구체성이 적다.
                    2,3행도 구체어들이 아니라 막연하다. 자연스럽게 풀어 쓰는게 좋다.
                    2연도 '독기 피워' 는 딱딱한 표현이다. 연탄 고유의 묘사가 좋다.
                    3연은 구체적인 표현이 나온다. 달리 고치면
                    '빗길을 달려온 운동화가 내 옆에 잠든 동안에 내가 말려 주었다'
                     나름대로 좋은데 좀 더 활유화 해서 의인화를 더 좀 했으면 좋겠다. 
                    '운동화의 발을 기다린다'거나 '구들장에 주인이 오기전에 내가 덮혀 주었다'거나

                    '고등어의 영혼을 하늘로 날려줬다'거나
                    '빙판길엔~ 채였다' 이 부분은 표현이 너무 강렬하여 연탄이란 생각이 안 든다.
                     부셔져야 걸음이 사람에게 자유롭다.


                     예전엔 눈사람 만들 때 굴리기 좋도록 안에 다 탄 연탄을 넣었었는데 
                     환생한다는 표현이라든가 하는게 좋겠다.
                     마지막 연은 말이 어렵다. 큰 단어를 써서 그렇다 구체어를 쓰는게 좋겠다.
                     '삼매' 나 '참선'은 구체적인 단어 아닌 큰 개념이다.좀 고치자면
                     '참선에 들어 뜨겁게 몸을 사르고 하얗게 세었다'는 식으로 하면 어떨까?
                     화덕 밖에 나와야 되는 연탄(군밤 장수의)과 화덕안에 있는 연탄의 대비도 생각해 보자.

                     단어가 크다고 좋은건 아니다.구체적 과정이 있은 후에 '태고' '화석' 이런 걸 쓸 수 있다.

 

 


        - 옷걸이 항변 / 박미림

]

 

          지난번 주인이 예고없이 재활용하는 날
          동거동락 하던 친구는 알몸으로 쫒겨 났다
          그날 이후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목에 바짝 힘을 주고 산 긴장감이
          안도의 한숨으로 내려앉는 날
          주인은 오랜만에
          내 옷을 벗겨 놓고
          질펀하게 구석에서 쉬게 하더니
          조금 전 그 무게보다 더한 옷을 입혀 놓고
          흐뭇한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한동안 빛 들지 않는 침침한 장롱에서
          켜켜이 쌓여가는 어둠과 타협하며 지내는
          일상은 이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게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는 것도
          내 어깨 누르는 무게 감당하는 것도
          이미 익숙한 경험이기에,

 

 

 

 ===> # 강평 : 이 시도 문제점이 비슷하다.구체성이 많이 떨어진다.
                    외부 사물로서 옷걸이는 사람도 옷걸이가 될 수 있다.
                    옷걸이에게 전생이 생길 수 있다. 어제 입었던 양복 윗도리는 전생이 되어 버린다.
                    수 많은 전생이 옷걸이에게 있엇다.
                    행거에 그냥 걸렸을 땐 바람은 입엇고 걸쳤다고 할 수 있다.
                    주창윤 시인의 '옷걸이에 걸린 양(羊)'(문지사) 를 비교해 보라.

 

                    김수영의 시를 보면, 1960년대는 혁명을 걸치고 있던 옷걸이가 있고
                    어제는 사랑을 걸쳤지만, 내일은 미움을 걸칠 수 있고...
                    옷걸이를 확산시키면 개념이 무수히 많다.

                    옷걸이에 걸어준다란 동사 시어를 주면 의미가 크게 확산된다.
                    산이란 옷걸이는 겨울의 눈을 걸치고,초록의 잎을 걸치고...
                    옷걸이는 원형의 개념으로만 두고 여러가지 개념의 옷걸이를 만들 수 잇다.
                    가을엔 과수원이 홍옥을 걸어둔다든가,걸어둔다의 개념을 확대할 수 있다.
                    그래서 사유하라는 것이다.

                   시 쓰는 사람에겐 보이는 걸어두는 것은 일상적이라 시어가 아니된다.
                    안 보이는 걸어두는 것을 사유하고 쓰는 것이 시가 된다.
                    "허공은 비를 걸어둔다"

 

 


          - 함께 부르는 비의 노래 / 정윤호


            시간은 여지없이 째깍 거리고
            어제와 다른 오늘을
            이른 아침 눈을 뜨면
            기도하는 하루로 문을 연다.
            메여지는 오늘의 현실 앞에서
            가슴을 조아려 마음을 적시여
            조이는 목마름 마져도
            저들의 음률에 녹아 내린다.
            거리를 적시며 튕겨대는 비들의
            칭얼거림의 몸부림도 외면한 채
            거침없이 내리쏘는 비들의 사이로
            받쳐들은 우산들의 등을 두드리며
            망각이 춤을 춘다
            한 줄기 또 다른 비의
            젖은 영혼이 뛰어 간다.

 

 

 ===> # 강평 : 1행~ 8행 까지는 생각하는 것이기에 다 지워야 한다.
               9행은 '거리는 비들을 튕겨내고 있다' 는 식으로 활유화가 필요하다.
               12행 '받쳐들은~'은 활유화 된 표현이다.
               13행의 '망각'이란 단어는 큰 단어 이므로 지양하는게 좋다.
               15행 '젖은 영혼들이 뛰어간다' 는 아주 좋은 표현이다.

               포인트는 비들이 튕기는 것이고, 튕겨져서 젖는 부분이다.
               젖는다의 젖는게 무엇일까? 우산, 옷은 1차적인 것일 뿐!
               예를 들어 '영등포 장의사 간판이 젖는다' 하면 죽음을 얘기하는 젖는다의 표현이 된다.
               젖음에 대한 여러 구체화가 비의 노래가 된다.
               비 오는 날의 인상적인 장면들을 사유하자.

 

 

 

 @ 좋은 시 감상 & 평가 

 

 

         - 무럭무럭 구덩이 / 이우성 (2009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이곳은 내가 파 놓은 구덩이입니다

           너 또 방 안에 무슨 짓이니

           저녁밥을 먹다 말고 엄마가 꾸짖으러 옵니다

           구덩이에 발이 걸려 넘어 집니다

           숟가락이 구덩이 옆에 꽂힙니다.

           잘 뒤집으면 모자가 되겠습니다

           오랜 만에 집에 온 형이

           내가 한 눈 파는 사이 구덩이를 들고 나갑니다

           달리며 떨어지는 잎사귀를 구덩이에  담습니다

           숟가락을 뽑아 들고 퍼 먹습니다

           잘 마른 잎들이라 숟가락이 필요 없습니다

           형은 벌써 싫증을 내고 구덩이를 던집니다

           아버지가 설거지를 하러 옵니다

           반짝 반짝 구덩이

           외출하기 위해 나는 부엌으로 갑니다

           중력과 월요일의 외투가 걱정입니다

           그릇 사이에서 구덩이를 꺼내 머리에 씁니다

           나는 쏙 들어갑니다

           강아지 눈에는 내가 안 보일 수도 있습니다

           친구에게 전화가 옵니다 
           학교에서 나를 본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나는 구덩이를 다시 땅에 묻습니다

           저 구덩이가 빨리 자라야 새들이 집을 지을 텐데

           엄마가 숟가락이 없어져서 큰일이라고 한숨을 쉽니다

 

 


 ===> # 강평 : 화자의 '구덩이' 란 키워드는 미정형(未定形)이다.
                   2행의 '무슨 짓'인지 모르는게 미정형이다.
                   1차적인게 아니다.
                   궂이 어떤 개념 .사물이다 가 아니라 무엇이든 될 수있는 부정형의 개념.
                   화자는 정해지지 않는 것의 자유 속에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구덩이의 원 관념은 여러 보조관념(모자,투명인간)으로 분화(대체)시켰다.
                   예를 들어 돈은 갑에겐 원수이고 을에겐 행운이며 병에겐 인연, 정에겐 뭐
                   식으로 구덩이도 그런 개념이다.

 

 

 


         - 똥구멍으로 시를 읽다 / 고영민
 

 

           겨울산을 오르다 갑자기 똥이 마려워
           배낭 속 휴지를 찾으니 없다
           휴지가 될만한 종이라곤
           들고 온 신작시집 한권이 전부
           다른 계절 같으면 잎새가 지천의 휴지이련만
           그런 궁여지책도 이 계절의 산은
           허락치 않는다
           할 수 없이 들려 온 시집의 낱장을
           무례하게도 찢는다
           무릎까지 바지를 내리고 산중턱에 걸터앉아
           그분의 시를 정성껏 읽는다
           읽은 시를 천천히 손아귀로 구긴다
           구기고, 구기고, 구긴다
           이 낱장의 종이가 한 시인을 버리고,
           한권 시집을 버리고, 자신이 시였음을 버리고
           머물던 자신의 페이지마저 버려
           온전히 한 장 휴지일 때까지
           무참히 구기고, 구기고, 구긴다
           펼쳐보니 나를 훑고 지나가도 아프지 않을 만큼
           결이 부들부들해져 있다
           한 장 종이가 내 밑을 천천히 지나간다
           아, 부드럽게 읽힌다
           다시 반으로 접어 읽고,
           또다시 반으로 접어 읽는다


                - 시집 악어 2005 실천문학사 -

 

 

  ===># 강평 : 이 시의 포인트는 1차적인 개념에서 벗어나면 이런 것이 된다는 것이다.
                      "읽는다"가 여러가지로 전이 된다.(젖는다 식으로)
                     일반적인 생각은 똥구멍으로 시를 어찌 읽을런가 이지만,
                     생각을 확대하면 읽는것도 차원을 달리해 넘어간다.

                      이 시의 키는 14~18행의 '이 낱장의 종이가~ 구긴다'이다.
                      거치는 것을 보여 준 구절들이다.
                     서정주 시인은 '내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곳 그곳이 고향이다'고 했다.
                     그런 보여주는 구절이다.


 

출처 : 현실참여 문인ㆍ시민 연대
글쓴이 : 대덕산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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