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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문학:;국문시가 아름다운 송강의 노래

맑은물56 2007. 12. 17. 17:25
  • 국문시가 아름다움 한껏 높인 ‘송강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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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강‘성산별곡’,‘관동별곡’,‘사미인곡’,‘속미인곡’
  • 성낙수 한국교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 우리나라의 고유의 시가 형태로서 고려 말에 나타난 가사는, 시조와 함께 조선조 시가문학의 주류를 형성했다. 가사는 현재까지 알려진 것만도 수 천 편에 달하며, 내용도 다채롭기 그지없다. 또한 시조에 비해서 장형이며, 3·4조나 4·4조의 음절이 많고, 행수에는 제한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가사문학을 최고로 승화시킨 이는 조선 선조 때의 정치가이며 문학가인 정철(鄭澈:1536~1593)이었다. 그는 인종의 후궁이었던 큰누이와 계림군(桂林君) 유(瑠)의 부인이 된 둘째 누이로 인하여 어려서부터 궁중 출입이 잦아, 같은 나이의 경원대군(慶源大君:나중에 명종(明宗))과 친숙했으나, 아버지대부터 정변에 연루되어 유배를 가는 등 정치적으로는 영욕이 점철되었다.

      송강은 1580년 이후 ‘관동별곡(關東別曲)’ ‘훈민가(訓民歌)’ 등의 작품을 썼으며, 1585년 벼슬을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사미인곡(思美人曲)’ ‘속미인곡(續美人曲)’ 등 수많은 가사와 단가를 지었다. 그는 정치인이면서도 당대 가사문학의 대가로서,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와 더불어 한국 시가사상 쌍벽으로 일컬어진다. 그의 작품은 4편의 가사와 시조 107수가 전해지는데, 여기서는 주로 가사를 살펴보기로 한다.
    • ▲ 송강이 '관동별곡'에서 예찬한 내금강 만폭동 계곡. /조선일보DB

    • ‘성산별곡’은 ‘성산’ 풍류를 읊은 것으로서, 성산은 지금의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에 있다. 1560년(명종 15)에 송강이 처가의 친척인 김성원(金成遠)을 위해 지은 작품이라고 한다. 김성원은 성산에 서하당(棲霞堂), 식영정(息影亭)을 세우고 풍류를 즐겨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 하는데, 이 작품은 이곳을 중심으로 계절에 따라 변하는 경치와 김성원의 풍류를 예찬하고 있다.

      ‘관동별곡’은 송강이 1580년(선조 13) 1월 강원도 관찰사로 제수되어 원주에 부임했는데, 그 해 3월에 관동팔경과 내금강·외금강·해금강을 유람하고 이 작품을 지었다고 한다. 내용은 4단으로 나뉘는데, 1단은 부임하여 원주로 가는 길, 2단은 만폭동(萬瀑洞)·금강대(金剛臺) 등 내금강의 풍치, 3단은 외금강·해금강과 동해안을 읊었고, 4단은 작가가 신선이 된 것으로 비유하여 자신의 풍류를 노래했다. 대구법과 감탄사를 적절히 구사했으며, 박력 있고 화려한 문체로써 국토를 예찬했다. 작가의 풍류와 애국심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사미인곡’은 송강이 1588년(선조 21) 고향인 창평에서 지은 것이다. 구성은 서사(序詞)·춘원(春怨)·하원(夏怨)·추원(秋怨)·동원(冬怨)·결사(結詞)의 6단락으로 되어 있는데, 춘원부터 동원까지가 본사(本詞)가 된다. 전체 구성은 계절의 변화를 축으로 하는 사시가(四時歌) 형태인데, 4계절의 변화에 따라 ‘님’생각의 간절함과 짙은 외로움을 토로했다. 선조 임금을 사모하는 간절한 연군(戀君)의 정을 ‘님’을 생이별하고 연모하는 여인의 마음으로 표현하였다. 여성적인 정조나 어투로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다. 사용된 시어나 정경의 묘사가 탁월하다. 애절하면서도 속되지 않은 간결한 문체로 국문시가의 장점을 잘 드러낸 작품이다.

      ‘속미인곡’은 임금을 그리는 심정을 여인의 대화를 빌려 은유적으로 노래한 것이다. 1585년(선조 18) 정철이 50세 때 당쟁으로 조정에서 물러나 창평에서 머무르는 동안 지은 것이다. 이 가사의 첫머리는 ‘어떤 여인’이 ‘다른 여인’에게 “천상 백옥경을 어찌하여 이별하고 해가 저무는데 누구를 보러 가느냐”고 묻는 것으로 시작된다. ‘다른 여인’은 “님이 예쁘지도 않은 나를 사랑했는데, 내가 너무 버릇없이 굴다가 미움을 사게 되었다”면서, 그것은 조물주의 탓이라며 한탄한다. ‘어떤 여인’은 그게 아니라 “님에게 맺힌 일이 있다”고 말해주나, ‘다른 여인’은 “님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며, 독수공방하는 자기 신세도 처량하다”면서 “차라리 낙월(落月)이나 되어 님의 창밖을 비추고 싶다”고 한다. 그러자 ‘어떤 여인’은 “달빛도 좋지만 궂은 비나 되십시오”라고 한다. 여기서 두 여인은 작가의 의도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등장시킨 인물로 자신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사미인곡’과 함께 연군의 정을 그린 다른 가사의 본보기가 되었으며, 한역도 많이 전해지고, 오랜 시간에 걸쳐 불려왔다. 그리고 송강의 대표적인 가사 작품으로서만이 아니라, 조선 전기 가사의 최고봉으로 인정 받는다. 또한 탁월한 조어력과 시어의 구사력을 엿볼 수 있어, 국문시가의 아름다움을 한껏 높여 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 성낙수 한국교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 송강의 가사는 문학적 방면으로만 훌륭한 것이 아니라, 임진왜란 전후로부터 숙종조 이전까지의 우리 국어의 변천을 연구하는 데에 귀중한 자료로 이용되고 있다. 또한 한문 사용을 자제하고, 되도록 우리의 고유어만을 쓰려고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와 같이 그가 우리말로 시가를 창작하고 노래함으로써, 후진들이 우리의 국어를 갈고 다듬어 국어·국문학의 깊이를 한층 더할 수 있게 해준 점은 높이 평가해야 마땅하다. 
  • 070924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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