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淨長湖碧玉流 맑은 가을 호수에 옥같은 물 흐르는데
추정장호벽옥류
蓮花深處繫蘭舟 연꽃 무성한 깊은 곳에 목란 배 매어두고
연화심처계란주
逢郞隔水投蓮子 님을 만나 물 건너로 연밥을 던졌는데
봉랑격수투련자
或被人知半日羞 혹여 남의 눈에 띄었을까 반나절을 무안했네
혹피인지반일수
허난설헌 [許蘭雪軒] 의 채련곡(采蓮曲)이다. 옷고름 입에 물고 수줍음을 표시하는 우리네 여인의 모습을 이렇게 아름답게 묘사한 작품을 찾아 보기도 쉽지 않다. 가사문학의 천재라고 할 수 있는 허난설헌의 재능이 엿보이는 시다
허난설헌(본명;허초희)은 글을 읽고 가르치는 것은 남자가 할 일이고 여자가 이에 힘쓰면 그 해로움이 끝이 없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던 조선시대(1563년)에 태어났으나 오빠들 사이에서 글을 익혀 어릴 적부터 놀라운 글재주로 찬사를 받아왔으며 당대의 대학자였던 오빠 허봉에게 '두보의 소리를 네게서 들을 수 있으리라'라는 극찬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조혼한 지아비로 부터의 버림받음 두 아이의 죽음 그리고 아버지와 오라버니들의 잇단 불행한 죽음으로 그녀 자신도 27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한다
허난설헌은 드높은 자기애와 자존심으로 바탕으로 사회비판적 이면서 한편으로는 선녀처럼 자유로운 도가적 초현실을 꿈꾸며 많은 시를 지었으니 칠거지악의 계율로 굴종과 희생을 강요하는 유교적 윤리와 맞을 리 없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의 시집들을 모두 불태우라고 유언을 하였고. 그 유언대로 주옥같은 시들이 대부분 불태워졌으나 동생 허균이 누나의 작품 일부를 명나라 시인 주지번(朱之蕃)에게 주어 중국에서 시집 《난설헌집》이 간행되어 격찬을 받았고 일본에서도 간행되어 애송되자 일본에서 출판된 시편들이 조선으로 역수입되어 출판 됨으로써 그녀가 죽은지 103년만에 비로서 동양 3국에 우뚝 선 여류 시인으로 추앙받게 되었다한다.
그러나 그녀 사후에도 비판적 분위기는 여전하였다 훗날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채련곡’과 ‘강남에서 독서하는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寄其夫江含讀書) 두 작품을 가르켜 ‘그 뜻이 음탕한데 가까우므로 시집에 싣지 않았다‘고 평했다. 사부곡(思夫曲)까지 음탕으로 몰아붙이는 조선 선비들의 편협성이 오늘날 우리 시각으로 보면 측은하기까지 하다 따라서 위 두편의 시는 문집외로 전한다
그런데 허난설헌의 작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다음의 시를 살펴보기로 하자 제목부터가 예사롭지가 않다
가 위
有意相胸合 뜻이 있어 서로 가슴이 맞았으니
유의상흉합
多情約各開 다정한 마음 서로 열기로 했더라
다정약각개
開閉於我在 열고 닫음은 내가 할 바이지만
개폐어아재
深淺臨君在 깊고 얕음이야 님이 할 일이지
심천임군재
나는 이 시를 접하고도 한동안은 시어(詩語)가 의미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날 고문을 연구하고 있는 학형(學兄)이 넌지시 귀띔을 해 주었다
개 開.. 열다, 벌리다.
폐 閉.. 닫다. 오무리다.
조선시대에 남녀의 성행위를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이러한 시를 황진이라면 몰라도 과연 허난설헌이 썼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만약에 진실로 허난설헌의 작품이라면 조선조 유교 선비들의 위선과 가식에 대한 통렬한 조롱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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