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일 오후 3시 창원지방법원 119호 소년 법정. 고교 반장인 조병철(18·가명)군이 동급생 8명과 함께 법정에 들어섰다. 조군은 친구를 때리고 욕하는 등 ‘왕따’를 주동한 혐의였다. 부모들도 손을 모은 채 자식들 뒤에 섰다. 조군은 학교 선생님이 써준 탄원서를 재판부에 냈다. 탄원서를 읽던 재판장 천종호(48) 부장판사의 얼굴이 굳어졌다.
“친구를 이렇게 못살게 굴었는데 ‘우수학생’이라니…. 선생님은 병철이 같은 학생을 꾸짖지 못할지 모르지만 법정에선 봐줄 수 없다. 모두 무릎 꿇어!”

“부모가 어찌 그리 무책임합니까! 두 분이 방치한 사이 민수가 얼마나 망가졌는지 아십니까. ‘제가 데려가겠다’고 왜 말 못합니까!”
김군에게는 9호 처분(소년원 6개월 입소)이 내려졌다. 제 역할을 못하는 부모에게 자식을 맡길 수 없다는 이유였다.
이날 하루에만 소년범 97명이 재판을 받았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성매매를 하는 걸 알고 충격을 받았다는 한 소년은 성폭행 혐의로 법정에 섰고, 골프 특기생인 아들의 폭행사건을 합의금으로 막으려던 부모는 정신교육 14시간을 명령받았다. 재판장은 3, 4건의 재판에서 소년들에게 ‘어머님 은혜’를 부르라고 했다. 부모님을 생각하며 뉘우치라는 취지에서였지만 어느 누구도 제대로 부르지 못했다. 천 부장판사는 “학교교육이 그만큼 엉망이라는 방증”이라며 “소년법정은 가정과 학교의 붕괴로 병든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진단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소년범 재범률은 2008년 25.8%에서 2009년 32.4%, 2010년 35.5%, 2011년 36.9%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가정의 붕괴, 가정교육의 실종, 학교폭력, 학교의 무관심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가장 절실한 건 소년범을 품어줄 가정이다. 하지만 소년범에게 소년원 이외에 다른 보호시설이 없다. 대안으로 꼽히는 전국 92곳의 ‘청소년 쉼터’는 연간 가출 청소년이 10만 명인 데 비해 수용인원이 1000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천 부장판사의 제안으로 2010년 10월부터 창원지법이 운영 중인 이른바 대안가정(청소년회복센터)이 있을 따름이다. 김은경(51) 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만성적인 소년범과 잠깐 비행을 저지른 소년을 구분해야 한다”며 “더 큰 범죄를 막으려면 회복센터를 비롯해 가정·학교·사회 전반의 보육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