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사 일주문 앞에 차려 놓은 불단엔 진귀한 음식과 꽃들이 가득하고 새로 조성한 금불상이 가운데 모셔져 있었다. 일반 백성의 출입이 통제되는 경내가 아니라 일주문 바깥에 화려한 불단을 임시로 차린 속내가 번연히 드러나는 예불이었으나, 격식은 장엄하고 염불소리는 드높았다.

젊은 비구 스무 명 남짓이 올리는 염불에 맞춰 한껏 차려입은 귀족부인들이 합장 기도를 하고, 단청을 벗겨낸 일주문 대들보 밑에서는 도편수의 지휘아래 일주문 전체를 개금하기 위한 엄청난 양의 금분을 아교에 개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일주문 앞에 모여든 백성들의 모습이 원효의 눈에 아프게 들어왔다. 슬픔의 힘으로 “단아, 단아.” 노래하며 물결쳐 왔으나 정작 황룡사 일주문에 이르자 백성들은 어딘지 주눅 든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은 임시로 조성된 화려한 불단 앞에서 자신들의 비루한 입성을 부끄러워하며 미천한 소망 한 자락이라도 그 고귀해 보이는 불단에 얹어 부처님 전에 빌어볼 수 있을까 눈치보고 있었다. 염불소리가 경직되고도 드높은 위엄을 과시하며 군중을 압도하고 장악하는 순간이었다.

“부처 앞에 빌지 마시오.” 원효가 다시 한 번 소리쳤다. 그리고 뒤따르는 흰새와 수파현에게 나지막이 말하였다. “안되겠구나, 놀아야겠다!” 원효가 인파를 헤치며 불단 바로 앞에 펼쳐진 왕골돗자리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그러고는 신발을 벗어 탁탁 털어 가지런히 놓은 다음 돗자리 위에 성큼 올라앉았다. 잠시 후 버선을 마저 벗어 맨발이 되더니 이내 길게 드러눕고 말았다. “무… 무례하다… 무슨 짓을 하는 게야!”

   
 
“어떤 삶이 바른 삶인지 길을 제시해주시고 진리를 보여주셨으며 자비로써 일체중생을 보호하고자 하신 분이 부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공양을 올리는 행위는 부처님처럼 진리의 길을 가고자 하는 발원입니다. 부처님과 같은 길을 걸어 부처의 공덕을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 공양을 올리는 이유이니, 굶주리고 병들고 가난하고 고독한 사람들을 위해 공양을 올려야 할 일입니다.”

젊은 비구들 중 좌장 격인 듯한 이가 격노하며 고함쳤으나, 원효는 한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맨발을 드러낸 채 비스듬히 누워 눈을 지그시 감고는 미동이 없었다. 황룡사 젊은 비구들이 원효를 끌어내려고 다가오자 흰새와 수파현이 각각 돗자리의 양 끝에 자리를 잡고 앉으며 비구들을 향해 공손히 합장을 하고 “쉬이~!” 만류하는 신호를 보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다가오던 황룡사 비구들은 일단 멈추어 이 기이한 사태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불단 앞에 드러누운 원효의 침묵과 얼굴에 밴 미소. 원효가 온몸으로 발하는 기이한 광휘는 금시초문의 것이어서 동요하던 귀족 부인들 역시 원효를 경외의 눈빛으로 바라보기에 이르렀다.

황룡사 일주문 앞 좌우대로는 모여든 백성들로 이미 빼곡하였고 그들은 불단 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해 하며 웅성거렸다. 그 사이를 뚫고 한 부대의 군병들이 불단 가까이 다가오며 소리쳤다.

“무슨 일이냐? 흩어져라! 저 자는 무엇을 하는 것이냐? 백성을 선동하는 자는 신분여하를 막론하고 잡아넣어라!” 지휘관의 명령으로 군병들이 원효를 포박하러 다가드는 참이었다. 그때. 백성의 무리 속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황룡사 고명하신 스님들께서 백성을 달래고자 특별한 연희를 펼치고 계시니 병사들은 멈추세요!”

일순, 험악해지던 분위기가 가라앉으면서 주위엔 잔잔한 물결처럼 파동이 일었다. 군중 속에서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공은 요석이었다. 이어 바유의 모습이 보이고, 흰새와 수파현이 “옳거니!” 맞장구를 치며 그제야 자신만만한 태도로 너스레를 떨기 시작했다.

“자자, 앞사람은 뒷사람 위해 좀 앉고! 그래야 저 뒤까지 골고루 연희를 감상하잖소. 자아, 조금씩 붙어 앉으면 서로 좋고오! 서라벌은 날마다 부처님 나라 염원하는 잔칫날이지요. 자, 어여 앉아요, 앉아.”

그때 바유의 손짓에 따라 모여든 아미타림의 광대패들이 순식간에 불단 옆에 멍석을 펼치고 앉자 가야금, 거문고, 향비파의 삼현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하고 젓대 소리가 높고 길게 퍼져 나왔다.

젓대 소리의 끝자락에 화답하듯 징소리가 울리면서 어느새 향비파를 건네받은 수파현이 회소곡을 타며 노래하기 시작했다. 회소… 회소… 모이시오… 모이시오… 삽시간에 펼쳐진 그 모든 일들을 꼼짝 않고 모로 누운 채 보고 있던 원효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요석의 목소리가 이어서 울렸다.

“지금 펼쳐질 연희는 부처님께서 열반하실 때라 아룁니다.” 오오, 백성들 사이에서 탄성이 지나갔다. 징이 울렸다. 요석이 방향을 잡아준 말을 받아 수파현이 다음 대사를 이어 갔다.

“에…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쿠시나가라 성 밖 사라나무 숲에서 열반에 드실 무렵이었습죠. 부처님께서는 여러 대중 스님들과 함께 사라나무 숲에 들어오셔서 북쪽으로 머리를 향하고 오른쪽 옆구리를 바닥에 붙이시고 잠자는 사자처럼 발을 포개고 누우셨지요.”

백성들의 시선은 어느새 돗자리 위에 부처의 열반 자세로 누운 원효에게 가 붙박였다. “그리고 말씀하시되, ‘여래는 오늘밤 이곳에서 열반에 들리라’ 선언을 하시자 많은 제자들이 슬픔을 느꼈습니다. 그중 아난다라는 제자가 깊은 밤중까지 방황하며 별별 걱정을 다 하였는지라.” 수파현과 시선을 주고받으며 흰새가 다음 말을 받았다.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우리 출가 수행자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무엇을 의지해 살아가야 할까?” 그러자 “그렇지, 그러게.” 백성들 사이에서 화답하는 답변들이 터져 나왔다. 수파현이 말을 이었다. “하여 아난다가 부처님께 여쭈었다합니다.”

다시 흰새가 말을 받았다. “세존이시여, 지금까지는 모든 사람이 부처님을 따르고 공양을 올림으로써 복을 얻었습니다. 이제 부처님께서 세상을 떠나시면 누구를 따르고 공양을 올려야 복을 얻겠나이까?” 말을 마치고 흰새는 스스로의 말에 울컥한 얼굴이 되었다. 이어서 백성들이 말했다. “한 말씀 하소서!” 이제 백성들은 연희에 완전히 동화되어 간절한 얼굴로 원효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원효가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 광휘가 그윽하게 배어나는 얼굴이었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비록 떠나지만 진리의 가르침은 남아있을 것이다.” 가만히 눈을 감은 채 원효가 말하는 동안 백성들은 안타까워하며 한숨을 쉬기도 했다. 본래 원효의 음성은 한번 입을 떼면 마치 귀에다 입을 대고 말하는 듯한 울림을 주기로 유명했으니 황룡사 비구들과 창검을 찬 군병들도 백성들과 더불어 넋이 빠진 듯 원효에 집중할 뿐이었다. 원효가 천천히 눈을 들어 좌중을 보며 말을 이었다.

“아난다야, 또한 걱정하지 말아라. 여래가 없는 세상에서 여래에게 올린 공양의 공덕과 꼭 같은 공덕에 네 가지가 있느니라.”

오호! 탄성과 함께 백성들이 잠시 술렁였고, 어느 귀족부인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옆 사람의 손을 꼭 쥔 채 원효의 말을 들으려 숨을 죽였다.

“첫째,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는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어 살리면 그것은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의 공덕과 같다.” 무리 가운데서 고요하고도 뜨거운 물결이 일었다. “둘째는 병들어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들을 보살펴 살리고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다. 이 또한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의 공덕과 같다.” 원효의 말이 떨어질 때마다 따뜻한 물결은 점점 더 넓게 퍼지고 사람들은 손에 손을 잡았다.

“셋째는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을 돕고 위로하는 것이다. 이 또한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의 공덕과 같다” 잔물결들이 종소리처럼 번져나갔다. “네 번째는 청정하게 수행하는 수행자를 잘 외호하는 일이다. 부처님 법에 따라 바르게 수행하는 수행자를 잘 외호한다면 그 또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공덕과 같다.” 황룡사 승려들의 얼굴이 붉어지며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모습을 드러낸 황룡사 주지도 근처에 서 있었으며 그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말이 없었다.

“이것은 열반에 드시기 전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원효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버선과 신발을 신은 후 불단에 차려놓은 공양물들과 금분을 개고 있는 일주문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어떤 삶이 바른 삶인지 길을 제시해주시고 진리를 보여주셨으며 자비로써 일체중생을 보호하고자 하신 분이 부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공양을 올리는 행위는 부처님처럼 진리의 길을 가고자 하는 발원입니다. 부처님과 같은 길을 걸어 부처의 공덕을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 공양을 올리는 이유이니, 굶주리고 병들고 가난하고 고독한 사람들을 위해 공양을 올려야 할 일입니다.”

원효는 불단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예불하던 귀족부인들 사이로 걸어 나오며 마주 선 사람들과 하나하나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부처님이 계시지 않으니 부처님을 기리며 상을 만들어 부처님인 듯 여기고 공양 올리며 공덕 있기를 바라지만, 우리가 빌어야 할 곳은 부처의 상이 아닙니다. 부처님 상 앞에 음식을 차려놓고 자기에게 복이 오길 비는 것은 정작 부처님께서 슬퍼하실 일입니다. 멀쩡한 일주문을 벗겨내고 여기에 칠할 금으로 먹을 것을 바꾸어 굶주린 백성들과 나누십시오. 그것이 부처님께서 알려주신 바른 공양의 길입니다. 부처님의 바른 제자 되기를 소원하는 미욱한 소승 이렇게 전합니다.”

몇몇 귀족부인들은 원효와 눈 마주치기를 거부하며 몸을 사렸으나 많은 귀족부인들이 원효의 말에 공명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합장하였다. 그중 몇은 불단의 음식을 내려 백성과 나누고 몇은 그 자리에서 금은보화나 가락지를 빼 부처님 일에 쓰이길 바라며 공양했다. 그중 목걸이, 귀걸이, 팔찌, 반지 등 몸에 두른 모든 금붙이를 공양하고자 하는 귀부인이 있었다. “이 패물들을 단이와 같은 처지의 아이들을 위해 쓰겠습니다.”

귀부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깊이 합장했다. 곧이어 몸을 돌리는 원효의 발 앞에 그녀가 급히 엎드리며 읍소하였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크게 부끄러운 바 있어 참회하고자 합니다. 이 자리에서 불법에 귀의하고자 하온데 절차를 알려주시옵소서.”

눈물이 그렁하게 맺힌 귀부인의 얼굴을 바라보며 원효가 합장하며 말했다. “지금 이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불법에 깃들어 계신 것입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고, 원효는 미소 지었다. 그녀는 비담공의 셋째 부인인 가희였다.

“단이를 살려내시오! 비담공은 책임을 지시오!”

“황룡사 주지는 단이를 살려내시오!”

해가 중천을 지나자 드문드문 터져 나오기 시작한 백성들의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지고, 구슬픈 노래가 점점 더 커지면서 회오리처럼 거세어지고 있었다. 그런 군중의 술렁임과 노래 속에서 “이랴, 처처! 이랴랴!” 소달구지 한 대가 인파를 헤치며 오고 있었다. 황소가 끄는 달구지에는 꽃들이 수북하였다.

황룡사 담장 밑에 백성들이 바쳤던 구절초, 개미취, 황국 등이었다. 자루에 담겨 쓸려간 꽃들을 되찾아 싣고 인파를 가르며 오고 있는 소달구지의 맨 앞에 선 이들이 원효의 눈에 익었다. 혜공의 뒤로 서라벌의 평민들, 혼혈인들, 광대패와 걸인들이 뒤따르고, 서라벌 외곽에서 단을 추모하러 온 향촌 사람들과 푸른 눈의 서역인들까지 뒤섞인 행렬은 축제의 행렬처럼 들뜬 채 움직이고 있었다.

수십 명의 병력으로는 인파를 해산시키는 것이 역부족임을 깨달은 군병들은 지원 병력이 도착할 때를 기다리며 맥없이 인파의 뒤를 쫓을 뿐이었다. 단이 앞으로 불려가는 듯 황룡사 일주문으로부터 서쪽으로 길을 잡은 행렬은 계림 쪽으로 서서히 움직여갔다. 이 행렬의 목적지는 비두골이 될 것이다, 생각하며 원효도 행렬 속에 끼어들었다. 서서히 해가 저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