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원효사상연구소

2009.08.01 강의 내용 정리

맑은물56 2009. 8. 10. 19:27

2009.08.01 강의 내용 정리


(疏)

次明淨熏 於中有二 先問後答 答中亦二 略明廣顯 다음으로 정법의 훈습을 밝히니 두 가지가 있다. 먼저 묻는 것과 뒤에 답하는 것. 답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간략하게 설명하는 것과 자세히 나타낸 것이다.

略中先明眞如熏習 次明妄心熏習 간략하게 설명하는 데에서 먼저 진여훈습을 밝히고 다음에 망심훈습을 밝힌다.

此中有五 初言以此妄心乃至自信己性者 是明十信位中信也 여기에는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처음에 말한 ‘이 망심 때문에’부터 ‘스스로 자기의 본성을 믿어’까지는 십신위의 믿음을 말한 것이며,

次言知心妄動無前境界修遠離法者 是顯三賢位中修也 다음에 ‘마음의 망녕된 움직임과 앞의 경계가 없음을 알아 원리법을 닦는다’고 말한 것은 삼현위의 수행을 말한 것이며,

以如實知無前境界故者 是明初地見道唯識觀之成也 ‘앞의 경계가 없다는 것을 여실하게 아는 까닭에’라고 한 것은 초지의 견도1)에서 유식관이 이루어짐을 말한 것이며,

種種以下乃至久遠熏習力故 是顯十地修道位中修萬行也 ‘종종’ 이하에서 ‘오래도록 훈습한 때문에’라고 한 것은 십지의 수도위2)에서 만행을 닦는 것을 말한 것이며,

無明卽滅以下 第五顯於果地證涅槃也 ‘무명이 곧 멸하면’ 이하는 다섯 번째로 과지에서 열반을 증득했음을 말한 것이다.


(論)

妄心熏習義有二種 云何爲二 망심훈습의 뜻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一者分別事識熏習 依諸凡夫二乘人等 厭生死苦 隨力所能 以漸趣向 無上道故 첫째, 분별사식훈습으로 모든 범부와 이승인 등이 생사의 고통을 싫어하여 능력에 따라 점차적으로 무상도에 나아가게 하며,

二者意識熏 謂諸菩薩發心勇猛 速趣涅槃故 둘째, 의훈습이니 이른바 모든 보살들이 발심용맹하여 열반에 속히 나아가게 하는 것을 말한다.


(疏)

次廣說中 先明妄心熏 다음의 자세히 설명하는 가운데 먼저 망심훈습을 밝힌다.

於中分別事識者 通而言之 七識皆名分別事識 就强而說 但取意識 以分別用强 通緣諸事故 그(망심훈습) 가운데 분별사식이란 통째로 말한 것으로 칠식 모두 분별사식이라고 이름하지만 강한 쪽으로 말한다면 의식만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분별의 작용이 강력해서 모든 일에 모두 연이 되기 때문이다.

今此文中 就强而說 此識不知諸塵唯識 故執心外實有境界 이제 이 글(기신론)에서는 강력한 쪽으로 말해서, 이 식은 모든 번뇌염이 오직 마음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 밖에 객관대상이 실로 있다라고 집착한 것으로,

凡夫二乘 雖有趣向 而猶計有生死可厭涅槃可欣 不異分別事識之念 故名分別事識熏習 범부와 이승인은 비록 나아가는 바가 있지만 아직은 생사를 싫어하고 열반을 좋아하는 헤아림이 있기 때문에 분별사식의 망념과 다르지 않으며, 그래서 분별사식훈습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意熏習者 亦名業識熏習 通而言之 五種之識皆名爲意 義如上說 就本而言 但取業識 以最微細 作諸識本 故於此中業識名意 如是業識見相未分 의훈습이란 또한 업식훈습이라고도 하는데 통째로는 다섯 가지 식 모두 다 의라고 이름하며 그 뜻은 위에서 말한 것과 같으며, 근본적인 것으로 말해서 단지 업식만을 가리키는 것은 가장 미세하여 모든 식의 근원이 되기 때문에 그 중에서 업식을 의라고 이름한 것이며 이 같은 업식은 견분과 상분이 아직 나누어지지 않은 것이다.

然 諸菩薩知心妄動無別境界 解一切法唯是識量 捨前外執 順業識義 故名業識熏習 亦名意熏習 非謂無明所起業識 卽能發心修諸行也 그러나 모든 보살들은 마음의 망녕된 움직임과 객관대상이 따로 없다는 것을 알아서 일체의 법이 오직 마음의 헤아림임을 이해하고 앞과 바깥으로의 집착을 버려 업식의 뜻을 따르는 까닭에 업식훈습이라고 이름한 것이며 또한 의훈습이라고 이름한 것이니 이것은 무명이 일으킨 업식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곧 능히 발심하여 모든 수행을 닦을 수 있는 것이다.


(論)

眞如熏習義有二種 云何爲二 一者自體相熏習 二者用熏習 진여훈습의 뜻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 자체상훈습이고 둘째, 용훈습이다.

自體相熏習者 從無始世來 具無漏法 備不思議業 作境界之性 자체상훈습이란 무시세래로 무루법과 부사의업을 갖추고 경계성3)을 짓는 것을 말하며,

依此二義 恒常熏習 以有力故 能令衆生 厭生死苦 樂求涅槃 自信己身 有眞如法 發心修行 이러한 두 가지 뜻(무루법과 부사의업을 갖추고, 경계성을 짓는 것)에 의해 항상 훈습하는 힘이 있는 까닭에 중생으로 하여금 능히 생사의 고통을 싫어하게 하고 열반을 즐겨 구하게 하며 스스로 자신에게 진여법이 있음을 믿고 발심하여 수행하게 한다.

問曰 若如是義者 一切衆生 悉有眞如 等皆熏習 云何有信無信 無量前後差別 물어 말하길 만약 이와 같은 뜻이 있다면 일체중생은 실로 모두 다 진여훈습이 있을 것인데 어찌하여 믿음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전후차별이 한량이 없습니까?

皆應一時自知有眞如法 勤修方便 等入涅槃 (그리고)모두 마땅히 일시에 스스로 진여법이 있음을 알고 부지런히 방편을 닦아 모두 열반에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答曰 眞如本一 而有無量無邊無明 從本已來 自性差別 厚薄不同故 대답하기를 진여법은 본래 하나이나 무량무변한 무명이 있어서 본래부터 자성차별의 두텁고 얇은 것이 같지 않는 까닭에,

過恒沙等上煩惱 依無明起差別 我見愛染煩惱 依無明起差別 항하의 모래보다 더 많은 근본번뇌가 무명에 의해 차별을 일으키고 아견애염번뇌4)가 무명에 의해 차별을 일으키는 것이다.

如是一切煩惱 依於無明所起 前後無量差別 唯如來能知故 이와 같은 일체의 번뇌는 무명에 의해 일어난 것으로 전후 무량한 차별로 오직 여래만이 능히 알 수 있으며,

又諸佛法有因有緣 因緣具足 乃得成辨 또 모든 불법에는 인과 연이 있으니 인연이 구족되어야 잘 분변할 수 있다.

如木中火性 是火正因 若無人知 不假方便 能自燒木 無有是處 마치 나무에 있는 불의 성품이 바로 그 원인이지만, 만약 사람이 알지 못한다면 방편을 빌리지 못해 능히 나무를 불사를 수 없는 것처럼,

衆生亦爾 雖有正因 熏習之力 若不遇諸佛菩薩善知識等 以之爲緣 能自斷煩惱 入涅槃者 則無是處 중생도 역시 그러하여, 비록 바로 그 인이 되는 훈습의 힘이 있지만 만약 여러 부처님과 선지식 등을 만나는 연이 없다면, 스스로 번뇌를 끊고 열반에 들어가는 것은 있을 수 없고,

若雖有外緣之力 而內淨法未有熏習力者 亦不能究竟 厭生死苦 樂求涅槃 (또)만약 비록 바깥인연의 힘은 있으나 안의 정법이 아직 훈습력이 없다면, 역시 구경에는 생사의 고통을 싫어하고 열반을 즐겨 구할 수 없으니,

若因緣具足者 所謂自有熏習之力 又爲諸佛菩薩等慈悲願護故 能起厭苦之心 信有涅槃 修習善根 만약 인연이 구족된다면, 이른바 스스로 훈습의 힘이 있고 또 여러 부처님과 보살들의 자비와 원호가 있게 된다면, 능히 고통을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열반을 있음을 믿어 선근을 수습하고,

以修善根成熟故 則値諸佛菩薩 示敎利喜 乃能進趣向涅槃道 이러한 선근을 닦아 성숙케 하면, 곧 여러 부처님과 보살이 (열반의)이로움과 좋음을 보이고 가르쳐 주어 이에 능히 열반의 길로 향하게 한다.


(疏)

眞如熏習中有三 一者擧數總標 二者依數列名 三者辨相 진여훈습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 수를 들어 총체적으로 나타냈고 둘째, 수에 의해 이름을 열거했고 셋째, (진여훈습의)모습을 구분했다.

辨相中有二 一者別明 二者合釋 初別明中 先明自體熏習 於中有二 一者直明 二者遣疑 (진여훈습의)모습을 구분하는 데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 따로 설명한 것과 둘째, 합하여 해석한 것이다. 처음의 따로 설명하는 중에 먼저 자체훈습의 설명으로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 곧바로 설명하는 것과 둘째, 의심을 없애는 것이다.

初中言具無漏法備有不思議業者 是在本覺不空門也 처음에 말한 무루법과 부사의업을 갖추었다고 한 것은, 본각에 있는 불공문을 가리키며,

作境界之性者 是就如實空門境說也 경계의 성품을 짓는다는 것은, 여실한 공의 문에 의거한 경계를 말한 것이다.

依此本有境智之力 冥熏妄心 令起厭樂等也 이러한 본래 있는 경계와 지혜의 힘에 의해, 망심을 훈습하여 (고통을)싫어하고 (열반을)즐겨하는 등의 마음을 일어나게 한다.

問曰以下 往復除疑 問意可知 물어 말하길 이하는 물음과 대답으로 의심을 없앤 것이니, 물음의 뜻은 알 수 있을 것이다.

答中有二 初約煩惱厚薄 明其不等 後擧遇緣參差 顯其不等 답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에는 번뇌의 두터움과 얇음으로 (진여훈습이) 같지 않음을 밝혔고, 뒤에서는 만나는 인연의 다름으로써 같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初中言過恒沙等上煩惱者 迷諸法門 事中無知 此是所知障所攝也 처음에 말한 항하의 모래보다 더 많은 근본번뇌라는 것은, 모든 법을 미혹하여 일의 중심을 알지 못하는 것이니, 이것은 소지장에 포섭된 것이며,

我見愛染煩惱者 此是煩惱障所攝也 答意可知 아견애염번뇌라는 것은, 번뇌장에 포섭된 것을 가리키는 것이니, 답의 뜻은 알 수 있을 것이다.

又諸佛以下 明緣參差 有法有合 文相可知 또 ‘여러 부처님과’ 이하는, 인연의 차이를 보여준 것으로 정의와 종합이 있었으니 글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論)  

用熏習者 卽是衆生外緣之力 如是外緣有無量義 용훈습이란, 중생의 외연력으로 이 외연에는 무량한 뜻이 있다.

略說二種 云何爲二 一者差別緣 二者平等緣 간략히 말하면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 차별연이요 둘째, 평등연이다.

差別緣者 此人依於諸佛菩薩等 從初發意 始求道時 乃至得佛 차별연이란, 중생이 여러 부처님과 보살들에 의지해서 처음으로 뜻을 내서 도를 비로소 구하는 때로부터 부처에 이를 때까지,

於中若見若念 惑爲眷屬父母諸親 惑爲給使 惑爲知友 惑爲怨家 惑起四攝 乃至一切所作無量行緣 그 도중에 (부처를)보기도 하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혹은 권속과 부모와 여러 친지로, 혹은 급사로, 혹은 친구로, 혹은 원수의 집안으로, 혹은 사섭을 일으키는 것으로 일체의 무량한 행의 연을 지으니,

以起大悲熏習之力 能令衆生增長善根 若見若聞得利益故 이것은 대비의 훈습의 힘을 일으켜 중생으로 하여금 선근을 증장케 하여 혹은 보고 혹은 들음으로써 이익을 얻게 하는 것이다.

此緣有二種 云何爲二 一者近緣 速得道故 二者遠緣 久遠得道故 이 연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 근연으로 속히 도에 도달하기 때문이며 둘째, 원연으로 오랜 시간이 지나 도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是近遠二緣 分別復有二種 云何爲二 一者增長行緣 二者受道緣 이 근과 원의 두 가지 연도 분별하여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 증장행연이요 둘째, 수도연이다.

平等緣者 一切諸佛菩薩 皆願度脫一切衆生 自然熏習 恒常不捨 평등연이란, 일체의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이 일체 중생이 모두 해탈에 이르기를 발원하여 그대로 훈습하여 항상 잊지 않는 것이니,

以同體智力故 隨應見聞 而現作業 所謂衆生依於三昧 乃得平等見諸佛故 동체지력으로써 마땅히 보고 들은 것에 따라 업을 나타내고 지으니, 이른바 중생이 삼매에서 평등하게 모든 부처님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을 말한다.


(疏)

用熏習中 文亦有三 所謂總標列名辨相 용훈습에 세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총표, 열명, 변상이다.

第二列名中差別緣者 爲彼凡夫二乘分別事識熏習而作緣也 두 번째 이름을 열거하는 중에 차별의 연이란, 저 범부와 이승의 분별사식훈습이 짓는 연으로,

能作緣者 十信以上乃至諸佛皆得作緣也 연을 짓는 것은 십신위 이상에서 모든 부처님이 모두 짓는 연이다.

平等緣者 爲諸菩薩業識熏習而作緣也 평등의 연이란, 모든 보살의 업식훈습이 짓는 연으로,

能作緣者 初地以上乃至諸佛 연을 짓는 것은 초지 이상에서 모든 부처님까지이다.

要依同體智力 方作平等緣故 요컨대 동체지의 힘에 의해 비로소 평등의 연을 짓는 것이다.

第三辨相中 先明差別緣 於中有二 合明開釋 세 번째 상을 변별하는 가운데 먼저 차별의 연을 설명하는데, 종합해서 밝히는 것과 펼쳐 해석하는 두 가지가 있다.

開釋中亦有二 先開近遠二緣 後開行解二緣 펼쳐 해석하는 중에 또 두 가지가 있으니, 먼저는 근과 원의 두 가지 인연을 보여준 것이요, 뒤에서는 행과 해의 두 가지 인연을 보여준 것이다.

增長行緣者 能起施戒等諸行故 受道緣者 起聞思修5)而入道故 행의 연을 증장한다는 것은 보시.지계등의 모든 수행을 일으키는 때문이요, 수도의 연을 받는다는 것은 듣고 생각하고 수행하는 것을 일으켜 도에 들어가는 때문이다.

平等緣中有二 先明能作緣者 所謂以下 釋平等義 평등연에 두 가지가 있으니, 먼저 연을 짓는 것은 밝혔으며, 소위이하에서는 평등의 뜻을 해석했다.

依於三昧平等見者 十解以上諸菩薩等 見佛報身無量相好 皆無有邊 離分齊相 故言平等見諸佛也 삼매에 의해 평등하게 본다는 것은, 십해위 이상의 모든 보살들이 불보신의 무량한 상호를 보고 모두 가없는 분제상을 여위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을 평등하게(무분별?) 본다라고 말한 것이다.

若在散心 不能得見如是相好離分齊相 以是故 言依於三昧也 (그러나)만약 마음이 산란하게 되면 이처럼 상호와 분제를 여윈 상을 볼 수 없게 되니, 이런 까닭에 삼매에 의해서라고 말한 것이다.

上來列明體用熏習竟 체와 용의 훈습을 열거해서 설명하는 것을 마친다.


(論)

此體用熏習 分別復有二種 云何爲二 이 체와 용의 훈습에는 구분해서 다시 두 가지가 있으니 무엇인가?

一者未相應 謂凡夫二乘初發意菩薩等 以意意識熏習 依信力故 而能修行 未得無分別心 與心體相應故 未得自在業修行 與用相應故 첫째, 미상응으로, 이른바 범부와 이승 그리고 초발의 보살들이 의와 의식을 훈습함으로써 믿음의 힘에 의해 수행은 능히 하지만, 아직은 무분별심으로써 마음의 체와 상응하지 못하고, 자재한 업의 수행으로써 용과 상응하지 못하는 것을 이른다.

二者 已相應 謂法身菩薩 得無分別心 與諸佛智用相應 唯依法力 自然修行 熏習眞如 滅無明故

둘째, 기상응으로, 법신보살이 무분별심을 증득하여 모든 부처님의 지혜와 작용과 상응하는 것을 가리키니, 오직 법의 힘에 의해서만 자연수행하여 진여를 훈습하고 무명을 멸하게 되는 때문이다.


(疏)

第二合釋體用 於中有二 總標別釋 두 번째, 체와 용을 종합해서 해석하는 중에 총표와 별석이 있으니,

別釋中 先明未相應中 言意意識熏習者 凡夫二乘名意意識熏習 卽是分別事識熏習 별석중 먼저 미상응을 설명하는 중에 의와 의식의 훈습이라고 말한 것은, 범부와 이승을 이름하여 의와 의식의 훈습이라고 한 것이며, 이것은 곧 분별사식훈습을 말한다.

初發意菩薩等者 十解以上名意熏習 卽是業識熏習之義 如前說也 초발의 보살 등이라고 한 것은, 십해위 이상을 이름하여 의훈습이라고 한 것이며, 이것은 곧 업식훈습의 뜻으로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別記)

此中對彼法身菩薩 證法身時 離能見相 故說也地前菩薩名意熏習 以依業識 有能見相故 이 가운데 저 법신보살을 상대로 법신을 증득할 때 능견상을 여위기 때문에 지전보살을 이름하여 의훈습이라고 말한 것이니, 업식에 의해 능견상이 있기 때문이다.

若依俗智見報佛義 則金剛已還 皆有見相 通名業識熏習 如下說也 (그런데)만약 세속지(후득지)에 의해 보신불을 본다면, 금강삼매 이전에는 모두 견상이 있기 때문에 통히 업식훈습이라고 이름한 것이니, 아래서 말한 것과 같다.


(疏)

未得無分別心與體相應者 未得與諸佛法身之體相應故 무분별지로서 심체와 상응하지 못한다는 것은, 모든 부처님의 법신이 심체와 상응하지 못함을 말한 것이며,

未得自在業與用相應故者 未得與佛應化二身之用相應故 자재업으로써 마음의 작용과 상응하지 못한다는 것은, 부처님의 응신, 화신의 두 신이 마음의 작용과 상응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已相應中 法身菩薩者 十地菩薩 得無分別心者 與體相應故 이상응 가운데 법신보살이란 십지보살이며, 무분별심 증득했다는 것은 마음의 체와 상응했다는 것이며,

與諸佛智用相應者 以有如量智故 自然修行者 八地以上無功用也 모든 부처님의 지혜와 작용과 상응한다는 것은 여량지가 있기 때문이며, 자연수행이란 팔지 이상의 무공용을 말하는 것이다.

因言重顯有五分中 第四別明二種熏習 竟在於前 말로써 거듭 밝히는 다섯 가지 부문중에 네 번째 두 가지 훈습을 각각 설명하는 것을 마친다.


(論)

復次染法 從無始已來 熏習不斷 乃至得佛 後則有斷 淨法熏習 則無有斷 盡於未來 此義云何 다시 염법은 무시이래로 훈습이 끊이지 않아서 부처를 증득할 수 있으니 나중에는 끊음이 있게 되며, 정법훈습은 곧 끊임이 없는 것이니 미래에까지 다함이 없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以眞如法常熏習故 妄心則滅 法身顯現 起用熏習 故無有斷 진여법은 항상 훈습을 하는 까닭에, 망심이 곧 멸하고 법신을 나타내 보여 그 작용의 훈습을 일으키므로 끊임이 없는 것이다.


(疏)

此下第五明二種熏盡不盡義 欲明染熏違理而起 故有滅盡 이 아래는 다섯 번째 두 가지 훈습의 다함과 다하지 않음의 뜻을 설명한 것으로, 염법훈습이 그 (염)법의 이치를 위반함으로써 다하여 없어짐이 있음을,

淨法之熏順理而生 與理相應故 無滅盡 文相可知 정법의 훈습은 이치에 따라 생하여 그 이치에 상응하는 까닭에 멸하여 없어짐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니, 글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顯示正義分內正釋之中 大有二分 第一釋法章門 竟在於前 현시정의분 안에 정석 중 크게 두 부문이 있는데 첫 번째 법장문을 해석하는 것을 마친다.


 



1) 견도(見道)-온갖 지식으로 잘못 아는 소견을 여윈 자리. 십지(十地) 중 환희지.  

2) 수도위(修道位)-견도위에서 온갖 지적인 미혹을 벗어난 후 정(情) 의(意)로부터 일어나는 온갖 번뇌의 속박을 벗어나려는 수행을 쌓는 기간. 초지(初地)에서 십지(十地)까지의 기간.

3) 경계성(境界性)-여실히 공한 성품의 경계.

4) 아견애염번뇌(我見愛染煩惱)-견애번뇌(見愛煩惱)로 견혹(見惑)과 사혹(思惑)을 말함. 견혹에는 탐(貪).진(瞋).치(痴).만(慢).의(疑).오견(五見:身.邊.邪.見取.戒禁取) 등 열 가지가 있으며, 사혹은 수혹(修惑)이라고도 하는데 개개 사물의 진상을 알지 못해서 일어나는 번뇌.

5) 문사수(聞思修)-삼혜(三慧)로 문혜(聞慧)는 보고 듣고서 얻는 지혜, 사혜(思慧)는 고찰하여 얻는 지혜, 수혜(修慧)는 고찰을 마치고 입정(入定)한 뒤에 수행하여 얻는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