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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우 감독의 '생로병사의 비밀'보다 충격적인 '은교'(인터뷰)

맑은물56 2012. 4. 25. 16:19

 

정지우 감독의 '생로병사의 비밀'보다 충격적인 '은교'(인터뷰)
 

[마이데일리 = 배선영 기자] 다큐멘터리 '생로병사의 비밀'보다 더 큰 충격이 전해졌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영화 '은교'를 본 느낌이 그랬다. 내 몸에도 언젠가 검버섯이 피고, 주름이 깊게 패이며 기력이 쇠할 것이라는 것을 절감한 것이 이 영화에 대한 인상이었다.

영화를 보기 전 그토록 회자됐던 파격적인 노출신과 정사신은 물론 센세이션했지만, 마음에 깊이 박힌 것은 '늙어가는 것에 대한 처절한 아픔'이었다.

영화 '은교'를 연출한 정지우 감독을 24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에게 '생로병사의 비밀'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하니 껄껄 웃으며 만족해했다. "영광입니다. 정말 그러고 싶었습니다. 그것만 된다면야. 만들면서 (박)해일 씨와 느낀 것도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은교'는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박범신 작가의 힘이 있으면서도 섬세한 필력의 소설은 정지우 작가의 감각으로 스크린에 옮겨졌다.

"저 역시도 나이가 들어간다는 기분이 들던 차였어요. 지인이 소설을 권해줘 읽기 시작했는데 너무 지나치게 솔직한거죠. 어떤 면으로는 뻔뻔하기까지 했어요. 그런 솔직함이 좋아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박범신 선생님을 찾아�죠."

국민시인으로 추앙받는 이적요는 박해일이 캐스팅 됐다. 극중 적요의 나이는 69세. 이제 36이된 박해일이 30년의 세월을 뛰어넘을 것을 결심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을텐데. '모던보이'에서 한 차례 박해일과 호흡을 맞춘 정지우 감독은 그를 설득했다.

"젊은 배우가 노인 분장을 해 영화를 찍는다면 늙음에 관한 것이 명료하게 구분돼질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일정 부분 성취가 됐다고 생각하고요. 왜 꼭 박해일이냐고 물으신다면, 그가 근본적으로 호감의 배우라는 점 때문이었죠. 박해일 씨 싫어하는 사람 잘 못보잖아요. 이적요 캐릭터는 바로 그런 호감을 밑바탕에다 두고 만들지 않으면 곤란해지니깐요. 그의 욕망, 그의 괴팍함의 일면에는 호감이 베이스가 돼야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지 않으면 어느 한 방향으로 힘이 생겨 조절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봤죠."

서른 중반의 배우가 노인을 연기하게 되면서 생기는 단점도 물론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장점이 극대화되고 단점은 최소화됐다. 목소리 연기도 그 중 한 부분이다. 박해일은 이적요를 연기하면서 억지로 노인의 목소리를 만들지 않고 그의 목소리를 그대로 가져다썼는데, 초반에는 다소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나 마지막 부분에서는 그의 목소리가 주는 울림의 진폭이 꽤 크다.

"극단적으로는 해일씨가 연기를 하고 성우가 목소리를 더빙하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그 방법은 너무 낯설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더 노인스러울 수 있을지 모르나 낯설어지는 것은 부정적이었죠. 결국은 박해일씨의 연기에 관한 결정을 따르기로 했죠."

'은교' 뿐만이 아니라, '해피엔드'도 그렇고 그의 전작들은 주로 배우의 연기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정지우 감독은 "저는 일단 좋은 배우가 나오는 영화가 좋고요. 좋은 연기만큼 영화를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 없다고 봐요. 텍스트를 정리하는 것은 제 임무이고 제가 노력하면 되는 것이지만 좋은 연기는 제가 노력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좋은 배우와 작업하면서 얻어지는 것이죠. 그래서 늘 좋은 배우와 작업하기를 열망하고 방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죠"라고 말했다.

'은교'에는 박해일의 69세 노인 연기만큼이나 주목을 받은 이가 있었는데 바로 이 작품으로 데뷔하게 된 신인 김고은이다. 현장에서 주눅들기는 커녕, 활보했다는 소문의 김고은은 신인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결과물을 내놓았다.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느껴졌어요. 일상적이고 편안한 모습을 가진 이인데, 감정을 담는 순간 굉장히 강렬한 형태의 표정과 눈빛이 나왓죠. 그것이 바로 배우의 얼굴이죠. 은교 역에 참 적절하다고 생각했어요. 같이 오랜 시간 오디션을 본 친구들한테는 미안했지만, 순식간에 결정이 나게 됐죠."

그렇게 좋은 배우들과의 버무려진 작업을 마친 정지우 감독의 표정은 밝았다. 세간의 평가도 호평 일색이다. 과거 신문들을 도배한 '해피엔드'부터 오늘의 '은교'까지 어쩌면 민감할 수 있는 소재들을 대중 앞에 내놓는 동시에 긍정적인 반응을 얻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행운이라면 행운이 여러차례 찾아왔다. 아무래도 숨겨진 인간의 욕망이 기형적으로 분출되는 것을 꽤 설득력있게 그렸기 때문이리라.

"그런 생각은 안 드세요?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할 것에 대한 금 긋기와 강요의 영역이 워낙 많아요. 우리 사회는.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방식의 삶을 사는 것은 있을 수 없죠. 이 작품에도 그런 대사가 나와요. '고등학생이 왜 남자랑 자는 지 알아요?'라는. '왜 고등학생이 남자랑 자면 안되죠? 누가 언제 그것이 범죄적이라고 정했나요?'라는 질문을 해볼 수 있죠. 억압이 많기에 억눌려진 것들이 드러나는 것이 드라마에 많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만약 우리가 조금 더 공개적이고도 일상적으로 이야기 되거나 나눌 수 있는 문제라면 덜 그러지 않을까요?"

노시인의 젊음에 향한 지나치게 솔직한 갈망 임에도 불구하고 변태적기보다 애잔한 이 작품은 정지우 감독의 이같은 지론에서 탄생했다. 영화 '은교'는 25일 개봉됐다.

[정지우 감독. 사진 = 송일섭 기자 andlyu@mydaily.co.kr]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pres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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