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물의 이야기/꽃 속에서 놀다

빈랑나무

맑은물56 2011. 11. 17. 21:29



허준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이어지는 선조와 광해군 시대때의 사람입니다.
그는 조선의 강토에서 자라는 모든 식물과 약재, 그리고 치료법을 정리하여
하나의 책으로 저술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동의보감' 입니다.

이 동의보감은 지금 한국인의 유일무이한 한의학 서적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현재에도 한의학계에서 무겁게 다루고 있는 의학서적입니다.

그런데, 이 동의보감에서도 이상한 점이 발견되었습니다.
바로 동의보감의 허준이 조선의 약재로 야자나무를 처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빈랑(檳榔 Betelnut) 입니다.

빈랑은 아열대지방에서 자라는 식물로써 언뜻보면 야자수 처럼 생겼습니다.
위의그림은 빈랑나무의 모습입니다.
이 빈랑이라는 야자수를 동의보감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 영남지방에서 나는데 과실대신 먹는다. 남방은 더워 이것을 먹지 않으면
  장기와 역려를 막아낼 수 없다. 그 열매는 봄에 열리며, 여름에 익는다.

그러나 그 살은 썩기 쉽기 때문에, 먼저 잿물에다 삶아 익혀서
약한 불기운에 말려야 오래 보관할 수 있다. "

동의보감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 야자수 형태의 식물이
영남 즉, 지금의 경상도 지방에서 많이 생산되며, 그곳은 더워서 장기와 역려라는
병을 막아낼 수 없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 식물은 경상도에서 잘 자라는 토산물일까요?
빈랑은 아열대지방의 식물로써 말레이반도가 원산지라고 합니다.

특히 동인도, 필리핀, 대만, 광동성 등지의 아열대지방 기후에서 잘 자란다고 합니다.
대만은 2001년, '아름다운 빈랑나무' 라는 영화를 제작했습니다.
이 영화는 빈랑에 얽혀진 사회풍속을 아주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빈랑은 환각성분의 중독성 식물이며, 구강암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 때문에
대만정부는 오래전부터 빈랑규제정책을 시행해오고 있지만,

빈랑은 전통적으로 담배이상의 기호식품으로 대만에서 자리잡아 통제가
안되고 있는것이 대만의 현실이지요.
빈랑나무는 폭력배나 트럭운전사, 택시기사들을 통해서 암암리에 거래된다고
전해지며, 심지어 미니스커트와 비키니를 입은 빈랑판매 호객행위를 하는
빈랑미인(Betelnut Beauty)이 성행한다고 하니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영화에서는 이러한 사회부조리와 얽혀진 결코 아름다울 수 없는 사랑이야기를
역설적으로 '아름다운 빈랑나무' 라는 제목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빈랑나무 한 그루면 아이 하나 대학 뒷바라지한다는 옛말까지 있으니
대만사회와 빈랑나무는 역사뿐만 아니라 생활 깊숙히 대만사회에 자리잡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같은 빈랑나무가 지금의 경상도(영남)에서 나는 토산물이라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인 것이지요.
빈랑은 광동과 대만의 아열대지방 기후 사람들의 삶과 문화에 베여있는
그런 식물입니다.
한반도의 경상도와는 전혀 무관한 이야기지요.

그것은 동의보감의 기록의 오류가 아닌 조선을 한반도로 비정할 때
발생하는 오류인 것입니다.

백제말기 부흥운동을 일으켰던 흑치상지 장군의 묘비가 1929년 낙양 북망산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묘지명에서는 그의 행적이 자세히 기록되어있는데, 백제의 봉지인 흑치땅에
봉해짐으로써 성을 흑치로 바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최근 중국학자들은 흑치라는 곳은 중국남부의 광동성과 필리핀 등지의
아열대지방으로 인정하였습니다.
곧, 흑치상지 장군이 봉해진 곳은 지금의 광동, 필리핀, 대만이라는 이야기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빈랑과 얽힌 흑치라는 성입니다.
지나대륙 남부 광동성 주민들은 빈랑나무를 기호식품으로 주기적으로 씹고 있으며,
이 때문에 이빨이 검하게 그을린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흑치상지 장군은 그 주민들의 모습을 본따 성을 흑치라고 명한 것이라고
역사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