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욕 호르몬 어떻게 조절되나..
데메테르는 불경한 에리직톤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감히 인간이 대지의 여신에게 모욕을 준 것이다. 에리직톤은 벌을 받아 마땅했다. 그러나 데메테르가 그에게 내린 벌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그 대상이 흉악무도한 죄인이라도 해도 동정심을 가질 수 밖에 없을 만큼 잔인한 것이었다. 데메테르가 선택한 형벌은 에리직톤을 기아의 여신 리모스의 손에 넘기는 것이었다. 데메테르의 전갈을 받은 리모스는 에리직톤을 찾아가 그의 혈관에 독을 불어넣었다.
이후 에리직톤에게는 참을 수 없는 허기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는 허기를 달래기 위해 계속해서 먹고 또 먹었다.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리고도 연료를 탐내는 불처럼, 그의 위장은 끝도 없이 먹을 것을 요구했다. 그는 팔 수 있는 것은 모조리 팔아서 먹을 것을 충당했는데, 그의 단 하나뿐인 외동딸 역시도 몇 그릇의 음식과 맞바꿔 팔아버릴 정도였다.
하지만 데메테르의 저주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결국 에리직톤은 바다와 같은 허기를 메우지 못해 스스로의 몸을 먹어서 죽음에 이른 뒤에야 겨우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 그리스 신화 중, 에리직톤의 저주
신화 속 에리직톤은 감히 대지의 여신을 모독하는 죄를 짓습니다. 신에게 불경을 저지른 인간이 분노한 신에 의해 벌을 받는 것은 결코 낯선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지만 에리직톤의 이야기가 눈길을 끄는 것은 그가 받은 벌이 '끝없는 배고픔'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화를 옮긴 이는 이를 '마음을 가진 이라면 누구라도 동정할 수 밖에 없는' 끔찍한 형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는 당시의 사람들이 굶주림에 대해 느낀 공포가 반영된 모습으로 보여집니다. 적어도 21세기를 살아가는 몇몇 선진국의 국민들은 허기로 인한 공포를 더 이상 느끼지 못하지만, 아직도 지구상에는 당장의 끼니거리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아마도 이 신화가 쓰여질 당시에는 이러한 문제가 훨씬 더 심각했을 테고, 어떤 이들에게는 사는 동안 내내 먹어야 살 수 있는 인간의 운명이 일종의 저주로 느껴졌을 터입니다. 그렇기에 이런 신화가 만들어진 것일테지요.
인간은 식물처럼 스스로 에너지를 합성하지 못하기 때문에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음식을 먹고 싶다는 욕구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어떤 이유로 인해서 먹고 싶은 욕구가 사라진 사람이 있다면, 그는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적당한 식욕은 있어야 하지만, 이것이 과해도 문제가 됩니다. 에리직톤처럼 제 몸을 먹어치우지는 않겠지만, 과도한 식욕으로 인한 과식은 비만의 원인이 되고, 심각한 비만은 다시 여러 가지 질환의 발생률을 높여 생명을 위협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며 식욕은 어떤 과정을 통해 조절되는 것일까요?
일단 우리가 일시적으로 느끼는 배고픔은 인슐린과 글루카곤의 합동 작용에 의해 조절됩니다. 인슐린과 글루카곤은 둘다 췌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들이지만, 인슐린은 혈당을 낮추는 작용을, 글루카곤은 혈당을 높이는 작용을 하는 물질입니다. 이 둘의 절묘한 길항작용에 의해서 혈액 내 포도당, 즉 혈당이 조절되지요. 세포들이 미토콘드리아라는 세포내 에너지 생산 공장을 돌려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얻습니다. 이 때 미토콘드리아를 가동시키는 연료로 사용되는 것이 포도당입니다. 따라서 포도당은 세포가 에너지를 얻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물질이므로, 가능하면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것이 좋습니다. 따라서 세포 하나하나 포도당을 안정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혈당 역시 일정한 수준에서 균형을 이루는 것이 좋지요.
식사를 하게 되면 소화 과정을 통해 포도당이 몸 안으로 유입되면서 혈당이 높아지게 됩니다. 그러면 췌장에서는 인슐린을 분비해 남는 혈당들을 모으게 합니다. 인슐린은 이들을 모아서 일차적으로는 간에 가져가 글리코겐 형태로 저장하거나 지방세포에 축적하는 일을 돕습니다. 혈당이 떨어질 때를 대비해 미리미리 비축해놓는 것이죠. 그러다가 한동안 음식을 먹지 않아 혈당이 떨어지게 되면 이젠 글루카곤이 췌장에서 분비됩니다. 글루카곤은 간으로 가서 아까 인슐린이 저장해두었던 글리코겐을 다시 포도당 형태로 바꾸어 혈액 속으로 내보냅니다. 인슐린과 글루카곤의 적절한 길항작용은 매우 절묘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세포들은 항상 안정적인 혈당을 공급받을 수 있는 것이지요. 만약 어떤 이유로든 이 균형상태가 깨지게 되면 혈당을 조절할 수 없게 되므로 신체에 이상이 오게 됩니다. 이런 현상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당뇨병이지요.
인슐린과 글루카곤의 길항작용이 혈당을 조절한다면, 렙틴과 그렐린은 근본적인 식욕 자체를 조절하는 물질입니다. 먼저 발견된 것은 렙틴(leptin)입니다. 렙틴은 지방세포에서 만들어져 분비되는 물질로, 식욕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는 물질입니다.
렙틴에 대한 관심은 한 때 엄청났습니다. 동물실험에서는 유전적으로 렙틴을 만들지 못하는 생쥐는 예외 없이 비만이 되는 현상이 관찰되었고, 인간에게서도 렙틴이 분비된다는 사실이 알려졌으니까요. 그래서 인간 역시 비만이 되는 원인이 렙틴이 부족해서라고 여겨졌습니다.
실제 동물 실험에서 비만 쥐에게 렙틴을 투여하면 살이 빠지는 현상도 관찰되었으니까요. 하지만 렙틴이 인간의 비만을 해소하는데는 그다지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곧 밝혀지면서 렙틴에 대한 열기도 식었지요. 실제 비만인 사람들 중에 렙틴이 효과를 발휘하는 경우는 5~10%에 불과했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전혀 효과가 없었거든요. 그 원인은 보통 비만인 사람들의 경우, 체내 렙틴 농도가 이미 높아져 있는 상태여서 추가적으로 렙틴을 주입해도 반응하지 않는 ‘렙틴 저항성’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렙틴이 비만의 치료에 큰 효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해서 렙틴 자체가 인간의 식욕 조절에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렙틴은 그렐린과 함께 식욕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물질입니다. 혈당이 떨어지면 일단 글루카곤이 1차적으로 혈당을 높이는 작용을 하지만, 글루카곤의 양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혈당을 계속 유지하고 싶다면 외부에서 열량을 보충해주어야 합니다. 그렐린이 작용하는 것이 바로 이 시점이지요. 그렐린은 주로 위장에서 분비되는데, 식사 전 그러니까 위장이 비어 있는 경우 그렐린의 분비량은 올라갑니다.
그렐린의 분비량이 늘어남과 동시에 뇌의 시상하부에 존재하는 뉴로펩타이드 Y(NPY)라는 물질이 활성화되어 역시 시상하부에 존재하는 섭식중추를 건드리게 됩니다.
이렇게 이어지는 일련의 신호를 통해 우리는 식욕을 느끼게 되고,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무언가 먹을 것을 찾게 됩니다. 이 때 음식을 먹어 위장이 차고 혈당이 다시 높아지게 되면 그렐린의 분비는 줄어들게 됩니다.
바로 이 시점에서 렙틴의 분비량은 늘어나는데 늘어난 렙틴은 다시 CART(Coccain amphetamine regulated transcript)를 증가시켜 시상하부의 포만중추를 자극해 ‘배가 부르다’는 느낌을 들게 만듭니다. 이런 조절과정을 통해 인간은 적당한 식욕을 가지게 되고 적당한 범위 내에서 체중을 유지하게 되지요.
인간의 식욕은 한 가지로만 조절되는 것이 아닙니다. 즉, 인슐린과 글루카곤, 렙틴과 그렐린처럼 서로 반대 작용을 하는 물질들이 길항작용을 이루어 조절되지요. 이 때 중요한 것은 두 물질의 절대량보다는 이들의 조화에 있습니다. 이들이 얼마나 조화롭게 분비되느냐에 따라서 식욕이 조절되고, 혈당이 조절되며 나아가 건강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욕구인 식욕 조절에 한 가지가 아닌 두 가지 물질이 작용하며, 그 작용 방식이 서로가 서로를 조절하는 길항 시스템으로 되어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입니다. 식욕이라는 근본적인 욕구부터 조화와 균형이 어우러져야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존재로 진화되어 왔다는 사실은, 마치 인간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나타내주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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