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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Re: 시조

맑은물56 2011. 9. 22. 18:40
  • 시조
  • 시조 >> 시조 --> 작품/자료명 : 시조 지정여부 : 임산본 외 구분 : 정악 흐름 시조라는 명칭의 원뜻은 시절가조(時節歌調), 즉 당시에 유행하던 노래라는 뜻이었으므로, 엄격히 말하면 시조는 문학부류의 명칭이라기보다는 음악곡조의 명칭이다. 따라서, 조선 후기에 있어서도 그 명칭의 사용은 통일되지 않아서, 단가(短歌)·시여(詩餘)·신번·장단가(長短歌)·신조(新調) 등의 명칭이 시조라는 명칭과 함께 두루 혼용되었다. 근대에 들어오면서 서구문학의 영향을 입어 과거에 없었던 문학부류, 즉 창가·신체시·자유시 등이 나타났기 때문에, 그들과 이 시형을 구분하기 위하여 음악곡조의 명칭인 시조를 문학부류의 명칭으로 차용하게 된 것이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시조라는 명칭이 문학적으로는 시조시형이라는 개념으로, 음악적으로는 시조창이라는 개념으로 알려져 있는 것은 이러한 까닭에서이다. 문학적 측면에서의 시조의 흐름 시조는 고려 조 말기에 그 형태가 완성되었다고 하나, 그 기원에 대하여는 의견이 일정하지 않다. 민요, 무당의 노랫가락, 향가, 별곡 등 심지어는 한시에서 연유되었다는 서로 다른 입장에서 서로 다르게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시조의 형태가 완성된 시기는 고려 말엽이라 해도 그것이 본격적으로 융성하게 된 것은 조선시대에 와서 이다. 시조는 고려 말 이래의 새로운 지도이념인 성리학을 신봉하는 유학자들에 의하여 이루어진 새로운 시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시조의 간결한 정형성은 유학자의 미의식에 알맞은 시형으로 그들은 한시만으로는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내면을 이에 담아 단아한 기품으로 노래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시조집에서 비교적 초기에 속하는 작가들을 들어보면 고려 충숙왕 때의 우탁(禹倬), 충혜왕 때의 이조년(李兆年), 공민왕 때의 이존오(李存吾)·길재(吉再)·원천석(元天錫)·이색(李穡)·정몽주(鄭夢周), 조선 초기의 정도전(鄭道傳)·변계량(卞季良)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모두 고려 말 조선 초의 유학자들이다.이러한 의미에서 유교주의의 구현은 분명 조선시대 시조 중의 대표적인 주제 내지 제재론의 대상이다. 말하자면 시조에 있어서 동일한 주제가 그 모티프를 어떻게 달...더보기
출처 : Daum 지식
글쓴이 : 무리야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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